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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pr 26. 2021

방전되셨습니다

휴직 361일째, 민성이 D+610

'크. 그래, 바로 이 맛이지! (딸기 우유 먹는 중)' / 2021.4.25. 카페 정담


"오빠, 나 배터리 5% 남았다." 어제(25일) 저녁,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가 말했다. 그녀는 그 마지막 5%를 민성이 씻기는데 쓰고, 얼마 뒤 그의 옆에서 장렬히 곯아떨어졌다. 그때가 8시가 조금 넘었나 그랬다.


손에 꼽을 만큼 피곤했던 주말이었다. 아마 나보다 아내가 더 그랬을 것이다. 피로는 사흘 전, 지난주 금요일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그 날은 우리 부부의 결혼 5주년 기념일이었다. 


우리는 부모님 집에서 민성이를 재우고 저녁 9시쯤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각자 소고기 한 접시를 깔끔히 해치우고, 카프레제 샐러드를 추가해 와인 한 병을 비웠다.


그리고 민성이가 자고 있는 부모님 집까지 30분을 걸었다. 방해받지 않은 아내와의 온전한 대화가, 서늘한 밤공기가, 알싸한 취기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침은 잔인하리만큼 정확한 시간에 우리를 찾아왔다. 민성이는 요즘 또 기상시간이 빨라져서 6시면 눈을 뜬다. 아내와 나는 그날 (심지어 우리 집 침대도 아닌 곳에서) 여섯 시간을 채 못 잤다.


다음 날, 아내와 나는 낮 12시쯤 서울행 버스에 올라 집을 계약하고, 밤 10시쯤 역시 민성이가 자고 있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왔다(민성이의 두 번째 집). 그날 저녁은 휴게소 핫도그로 때웠다.


5시간은 버스에, 나머지 5시간은 부동산에 갇혀있었다. 버스에선 몸이, 부동산에선 머리가 고단했다. 터미널에 내려 늦은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했지만, 둘 다 숟가락을 들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주말의 마지막이었던 어제(25일), 피로는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아내는 엄마였다. 전날 민성이와 못 놀아줬다며, 남은 기력을 쥐어짜 오전엔 놀이터에서, 오후엔 카페에서 아이와 온몸으로 놀아주었다.


육아는 체력 싸움이라는 걸, 육아를 하면 할수록 느낀다. 우리는 부부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그래서 육아 가사 분담이 잘 되고, 괜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렇다.


민성이를 잘 챙기면서 아내와 내 건강(몸과 마음 둘 다!)도 관리해야 한다. 부모님도 중요하고, 부부 관계도 좋아야 한다. 직장 생활도, 가계도 신경 써야 하지만 배터리는 유한하다. 까딱하면 방전이다. 기본은 체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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