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76일째, 민성이 D+625
아침부터 창 밖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민성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자마자 빗줄기가 떨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옷이 몽땅 젖었다. 하루를, 아니 한 주를 그렇게 눅눅하게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음악 틀고 운치 좀 즐겨. 나라면 커피 마시면서 음악 듣는다." 출근한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과연 오빠라면?" 내 답장에 그녀가 또다시 답했다. "게임. 청소. 늘 먹던 걸로." 역시 내 11년 지기, 무섭다.
게임과 청소를 하고, 늘 먹던 걸로 점심을 때운 뒤 다시 민성이를 데리러 나갔다. 잦아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유모차 바람막이에 맺힌 물방울이 신기했는지, 웬일로 민성이는 유모차에 얌전히 탑승했다. 덕분에 편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오후 4시 반, 늘 그렇듯 그때부턴 민성이와 나, 둘 만의 시간이다.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은 빠른데, 안에서의 시간은 더디다. 우리 집은 민성이에게 너무 좁다. 우리 집이 꼭 20평대라서 그런 게 아니다. 200평이어도 아이는 답답해했을 것이다. 생후 20개월은 그런 나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날씨인 것을. 역시나 민성이는 지루해했다. 노는 데 영 집중을 못하길래 식탁 앞에 일찍 앉혔는데, 밥 먹는 것도 영 시원찮았다. 날씨도, 아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출근길, 어제는 야근을 해야 한다던 아내는 민성이가 보고 싶다며 일찍 퇴근했다. 미끄럼틀 앞에서 아빠와 장난감 자동차를 주거니 받거니 대충(?) 놀고 있던 아이는 문 열리는 소리에 쏜살같이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아내는 옷장에서 겨울 코트를 하나 꺼내, 민성이와 한참을 놀았다. 코트 모자엔 하얀 털이 몽실몽실하게 달려있었는데 아내가 "몽실몽실"하며 민성이의 볼에 코트를 가져다 댈 때마다 그는 집이 떠나가라 깔깔댔다.
민성이는 마치 코트와 술래잡기를 하듯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며 코트를, 정확히는 코트를 든 엄마를 피해 도망 다녔다. 거꾸로 엄마에게 달려와 그녀의 품에 쏙 안기기도 했다. 아이의 목덜미는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집은 금방 놀이터가 되었다. 비가 문제가 아니었다. 휴직 1년을 넘어가면서 아이와 노는데 별 감흥이 없어져버린 내가 문제였다. 인생에 다시없을 휴직기간,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일은 아이와 잘 놀아주는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