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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15. 2021

부자의 신나는 금요일

휴직 380일째, 민성이 D+629

'선생님, 이것 보세요. 제가 풀 속에서 또 예쁜 꽃을 찾았어요!' / 2021.5.13. 어린이집 앞


나는 추위에 강하고, 아내는 더위에 강하다. 다시 말해, 나는 더위에 약하고, 아내는 추위에 약하다. 끝내 내가 한없이 약해지는 계절이 찾아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에어컨 점검을 미리 받아놓는 건데.


어제(14일)도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민성이를 데리러 나갔다. 신나는 금요일, 발걸음이 가볍다. 아내도 30분 일찍 퇴근한다고 했다. 거의 날로 먹는(?) 하루다.


엄마와 함께 하는 주말을 앞둬선지, 민성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도 한참을 어린이집 앞에서 머물렀다. 


민성이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 가끔은 뒤로 걷고 뜬금없이 옆차기를 하곤 했다. 강아지가 기분이 좋을 때 꼬리를 흔드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친구가 나오면 친구와 엄마에게 싱긋 눈인사를 했다. 참나.


웬일로 그는 놀이터에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 앞에서 만난 친구 엄마가 민성이에게 젤리를 줬는데, 빨리 집에 들어가 그걸 먹고 싶어서가 아닐까라고, 난 추측한다. 


약속대로 집에 돌아와 젤리 봉지를 까줬더니 알록달록 아이 곰들이 그의 입 안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는 장난감 자동차를 좀 가지고 놀다, 나랑 책 몇 권을 읽으니 금방 오후 5시였다.


어제는 내가 민성이를 차에 태우고 아내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아이가 병원 가는 날이라 - 민성이는 사나흘 전부터 조금씩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했다 - 아내가 차를 두고 갔기 때문이다.


"민성아, 엄마 보러 가자." 그의 애마를 테이블에 올리고 내리는데 심취해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민성이는 쏜살같이 현관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는 마스크를 목에 걸고 양말 신는 시늉을 한다.


이럴 땐 정말 귀신같이 말을 알아듣는다. 그렇게도 엄마가 좋을까. 아내 회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민성이를 안은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열리니 퇴근한 아내가 민성이를 보고 환히 웃고, 아이도 웃는다. 이번 주말도 즐거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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