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88일째, 민성이 D+637
내가 잠자리에 일찍 드나 늦게 드나, 아들의 기상 시간은 비슷하다. 당연하다. 그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잠들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저녁에 놀려면, 그만큼 잠을 줄여야 한다. 공짜는 없다.
그제 친구 부부와 즐거운 금요일을 보내고(민성이는 모르는, 어른들의 시간) 자정이 다 돼서 집에 돌아왔다. 다섯 시간이나 잤을까. 민성이는 어김없이 술에 찌든 나를 흔들어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술값은 역시 후불이다. 술을 마실 땐 즐겁지만 다음날 반드시 비용을 치르게 돼있다.
정신을 가다듬고 집 정리를 했다. 이불 빨래를 하며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세수를 하고 옷을 말끔히 갈아입으니 몰골이 조금 나아졌다.
요즘 얼굴과 몸에 좁쌀만 한 뾰루지가 올라오는 민성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알레르기 같은 이상 반응일까 싶어 걱정했는데 땀띠로 보인다고 했다. 하긴 근래 아이가 땀을 많이 흘리긴 했다.
그때 시간이 10시가 좀 넘었나 그랬다. 그제 술을 마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잠겨있다. 방금 일어났단다. 이 시간에 기상이라니, 나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친구 부부를 만나 점심으로 보리굴비를 먹고 근처 유원지 카페에 갔다. 저수지 옆에 자리한, 손님이 놀러 왔을 때 우리 부부가 종종 찾는 곳이다.
화창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따뜻한 햇볕 사이로 이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다만 민성이가 틈만 나면 우리의 커피를 노렸다. 시간 벌기(?)가 필요했다. 홀로 아들을 데리고 카페 앞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벤치에 앉아 나뭇잎 줍기 삼매경에 빠진 민성이를 빤히 바라본다. 자꾸 고사리 손 사이로 나뭇잎이 삐져나온다. 아이 머리 위로 햇살이 드리운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그래서 두고두고 기억될 토요일 오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