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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22. 2021

민성이는 모르는, 어른들의 시간

휴직 387일째, 민성이 D+636

'흑임자죽을 먹고 어른이 되었어요.' / 2021.5.21. 어린이집


가까운 친구 부부가 군산을 찾았다. 지난해 9월에도 우리를 보기 위해 군산에 내려왔던 둘이다(횟집과 회집). 그때가 8개월 전, 군산이 낯설기는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군산횟집과 회집을 구분하지 못해 밤중에 택시를 몇 번이나 탔고, 겨우 찾은 식당도 돌이켜보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아내와 나는 다음에는 반드시 더 좋은 곳에 데리고 가리라 절치부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설욕(?)의 기회가 찾아왔다. 처음엔 민성이를 재우고 갈까 했는데, 그럼 저녁 9시가 넘어야 한다. 생각해보니 굳이 우리가 재울 필요가 없었다. 민성이는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제법 잘 잔다. 


계획을 바꿔 부모님에게 민성이를 맡긴 뒤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예약해둔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하고 얼마 안 돼 그들이 도착했다.


신나는 금요일, 반가운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민성이를 먹이느라 밥을 코를 먹을 필요도, 그가 뛰어다니다 식당 집기를 깨트릴까 조바심 낼 필요도 없었다. 


제법 술을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은 건 - 물론 나중엔 좀 졸리긴 했지만 -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즐거워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업데이트하고 고민을 나눴다. 대화는 마르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전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금요일 저녁이든 주말이든, 시간을 조율한 뒤 장소를 정해 그냥 만나면 됐다. 사람들은 언제든 누릴 수 있는, 당연한 일에는 잘 감사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랬다. 


어제도 부모님이 민성이를 봐주시니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복직하고 우리 가족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금요일 밤에 어른 넷이 술을 마시긴 쉽지 않을 것이다.


민성이를 낳고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다. 금요일의 술자리도 잃은 것 중의 하나다.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봐도 잃은 것보단 얻은 게 더 많다. 잃은 것보단 얻은 게 더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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