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28일째, 민성이 D+677
몇 달 전, 한 아이의 아빠이자 정신과 의사가 쓴 육아서를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아이의 수면교육을 설명하면서 '존 B. 왓슨'이라는 학자를 소개한다.
왓슨은 마치 파블로프가 그의 개를 훈련시켰던 것처럼 아기 역시 적절한 보상과 강화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를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에게 열두 명의 아기를 주면 어떠한 종류의 전문가로도 길러낼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의사든 변호사든 상인이든, 아니면 거지나 도둑으로든 심지어 아기의 특성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자식 넷 중 셋은 자살을 시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근래 민성이를 보면서 이 이야기가 많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나는 왓슨 못지않게 오만했다(심지어 나는 학자도 아닌데!).
아내와 조리원에 있으면서부터 아이 목욕시키는 걸 배웠고, 돈 내고 조리하러 온 곳에서 굳이 모자동실까지 해가며 일찌감치 육아의 세계에 돌입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수면교육을 시작했고, (중간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아이의 수면 패턴은 비교적 자리를 잘 잡았다. 밤낮이 바뀌지도 않았고, 8시 전후로 늘 잠이 들었다. 군산에 와선 분리수면에도 성공했다.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성이는 지난해 돌이 되자마자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너무나도 적응을 잘해주었다. 사실 말은 안 했지만, 나는 이 모든 게 내가 잘나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육아휴직을 쓰고 일찍이 아이 8개월 때부터 주양육자가 된 데다 조리원 때부터 틈틈이 육아서를 탐닉했다. 육아에 대한 나의 자신감은, 아이를 모두 자기 뜻대로 기를 수 있다고 믿었던 왓슨 못지않았다.
요 며칠 민성이는 갑자기 짜증을 내다 제 분을 못 참고 아내와 나를 때리는가 하면, 어린이집 문 앞에선 안 들어가겠다고 떼를 쓴다. 수면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고, 새벽엔 우리 방으로 넘어와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잔다.
개와 인간은 다르다. 이 조그마한 만물의 영장을 자기 뜻대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얼마나 오만한 일인지,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바로 잡아야 할 것은 민성이가 아니라, 민성이를 대하는 내 마음일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