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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12. 2020

의자에서 공존을 읽다

휴직 43일째, 민성이 D+292

민성이도 이제 우리 부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눈높이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 2020.06.11. 우리 집


지난달 주문한 민성이 새 의자가 도착했다. 유아용으로, 내가 쓰는 식탁 의자와 높이가 비슷하다. 의자의 앉는 부분과 발판을 위아래로 조정할 수 있어, 아이가 커서도 쓸 수 있다고 한다.


전에는 민성이 앉은키만 한 아기 의자를 썼다. 이유식을 먹일 때면 아이를 그 의자에 앉히고, 나도 같이 바닥에 앉아야 했다. 매끼 허리를 굽혀 아이를 먹이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민성이도 잘 적응했다. 시야가 식탁 위 세계까지 닿으면서 주변을 더 많이 두리번거리게 됐지만, 밥은 똑같이 잘 먹었다. 다만 예전처럼 별생각 없이 아이에게 그릇을 하나 쥐어주는 바람에, 그릇을 하나 잃어야 했다.


내 몸이 편해지기도 했지만, 아이가 우리와 같은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였다. 우리 부부도 이제, 우리 밥을 먹으면서 아이 밥을 챙길 수 있게 됐다. 감개무량하다.


육아의 '육'자도 모르던 시절, 이 의자를 파는 매장 앞을 지나면서 별걸 다 판다고 생각했다. 유모차 필요한 건 알겠는데, 굳이 유아용 의자까지 (저 돈을 주고) 사는 건 유난을 부리는 것 같았다.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부모와 같은 눈높이의 의자는 아이의 삶을 일찍이 가족의 삶에 융화시키는 걸 도와준다. 아이와 부모 둘 다 더 빨리 행복할 수 있도록.


아이의 식사 시간과 공간이(그게 바로 식탁 아래라 하더라도) 부모와 다르면, 부모는 아이를 먹이는데 더 많은 공력을 들여야 한다. 아이 한 명은 편할지 몰라도, 가족 행복의 총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집에서 평생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수면, 그리고 식사 시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저 두 가지 교육을 잘해두는 게 가족의 삶의 질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매번 즐거울 것인가, 매번 고통스러울 것인가.  


이 의자를 만든 북유럽의 철학도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공존.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한쪽의 삶을 지나치게 희생시키지 않는, 양쪽 모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기. 내가 지향하는 삶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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