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5일째, 민성이 D+294
그제(12일) 민성이 아빠의 아빠, 엄마가 손자를 보러 상경했다. 두 달만이다. 엄마는 민성이를 한번 보고 가면 더 보고 싶어 진다며, 또 보러 오겠다는 말을 두 달 내내 했었다.
다음날 아침, 민성이는 여느 때처럼 아침 6시쯤 기상했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따라 일어났다. 9개월 손자를 보겠다며 금요일 저녁의 교통대란을 뚫고 200km를 달려온 두 분이다. 본전을 뽑아야 했다.
민성이는 오전 내내 가족의 중심에 있었다. 그 역시 관심을 즐기는 듯했다. 평소 2시간 안팎으로 자던 낮잠도 30분만 자고 일어나더니, 코피 터지기 직전까지 그의 열성팬들과 신나게 놀았다.
민성이는 시종일관 웃으며, 그를 보러 먼 길을 달려온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쁘게 해 주었다. 낯을 가리지도 않고, 울거나 떼쓰지도 않았다. 내가 보기엔 엄마 아빠는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엄마는 애가 어떻게 저렇게 순하냐면서, 민성이가 아빠를 보느라 고생한다고 했다. 내가 거꾸로 받아친 게 아니라, 실제로 저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민성이라면 당신은 10명도 키우겠다는 말도 했다.
이게 다 내가 민성이를 잘 키워서라고 반박했지만,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민성이는 나중에 커서 집안일도 분담시킬 거라고 하니, 우리 민성이 불쌍해서 어떡하느냐고 했다. 외로움이 밀려왔다.
민성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봐서 좋았겠지만, 제일 득을 본 건 나였다. 부모님이 아이를 볼 때 잠시 눈을 붙였고, 모처럼 엄마가 해 준 밥을 편히 먹었다. 역시 밥은 다른 사람이 해 준 게 최고다.
아내의 지역 발령지는 다음 달 초 결정되고, 우리는 중순이면 그곳으로 이사를 한다. 우리는 부모님이 계신 전북 군산을 지원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부부와 부모님, 그리고 민성이에게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제 아침, 온 가족이 민성이를 둘러싼 풍경에서 그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내 아이가 그를 사랑해마지 않는 가족의 따뜻한 품에서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