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39일째, 민성이 D+688
이달 초, 아이를 데리고 대형마트에 갔다가 커다란 벽보를 하나 사 왔다. 자동차를 비롯한 각종 탈것이 즐비한 벽보다. 민성이는 마트에서 그걸 발견한 뒤 손에서 놓지 않았다.
벽보엔 QR 코드가 있었다. 핸드폰 카메라를 갖다 대니 곧바로 유튜브로 연결된다. 영상에선 음악과 함께 벽보에 있는 것과 똑같은 탈것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아내가 처음 그 동영상을 보여줬을 때, 민성이 동공이 확장되는 게 눈에 보였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방방 뛰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벽보의 소방차와 영상의 소방차, 아내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민성이는 툭하면 벽보의 QR 코드를 가리켰다. 영상을 보고 싶단 얘기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22개월 민성이는 말은 못 하지만, 원하는 걸 얻는 방법은 알고 있다.
식당에 가면 엄마 아빠가 밥을 먹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고있는 아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난 그 광경에 거부감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물론 나는 심리학도, 아동학도 전공하지 않았고 그게 아이에게 유해한 지 무해한 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그렇다는 거다. 내 아이는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미루겠다고 오래전부터 다짐했다.
우리 집에 TV가 없는 이유 중 하나도 그거다. 물론 매일 TV에 둘러싸인 곳에서 일을 하고, 집에서까지 TV를 보고 싶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민성이를 TV 앞에서 키우고 싶지 않은 이유도 컸다.
그래서인지 민성이는 TV에 별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 집에서 민성이를 얌전히 있게 할 요량으로 만화 채널을 틀어준 적이 몇 번 있다. 로봇이건 자동차건 공룡이건, 그는 1도 관심이 없었다.
탈 것 유튜브 영상에 심취해있는 아이를 보며, 민성이도 조금씩 영상에 관심을 갖겠구나 싶었다. 버스건 지하철이건 그곳의 모든 사람이 핸드폰에 코를 박고 사는 요즘, 우리 아이라고 영상을 아예 안 보여줄 순 없다.
또 그게 좋다고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내의 말대로, 아이에게 유익한 영상 콘텐츠도 분명 있다. 결국은 아이에게 양질의 영상을 적정하게 제공하는 것이 핵심일 테다. 미디어 전쟁, 그 서막이 열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