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54일째, 민성이 D+703
난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엄청 싫어한 건 아닌데, 뭐랄까, 별로 귀여워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아이를 보며 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할 때가 많았다. "저 아기 못 생기지 않았어?"
그럴 때마다 난 아내에게 혼이 났다. 그녀는 예쁘고 귀엽기만 한데 뭐가 못 생겼느냐고 내게 늘 핀잔을 줬다. 하지만 난 진심이었다. 아기도 어른처럼 못난 이도 있고, 잘난 이도 있는 거라고 난 항변했다.
회사 동료나 친구들이 아이 얘기를 할 때도 듣는 둥 마는 둥 할 때가 많았다. 아이가 없을 때였으니 공감이 될 리 없었고, 당연히 재미도 없었다. 회식 때 누군가 아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게도 아이가 생겼고 1년 5개월째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컸다.
어제(27일) 민성이 어린이집 일일 도우미로 부름(?)을 받았다. 어린이집 앞마당에서 물놀이를 계획 중인데, 혹시 도우미로 참석 가능하냐고 원장님이 물어보시기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남는 게 시간인 나다.
다른 도우미 학부모들과 풀장에 물풍선을 채워 넣고 있으니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이 선생님 손을 잡고 천천히 우리에게로 왔다. 정말 귀여웠다. 저 또래 아이들을 괜히 병아리 떼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민성이보다 한 살 어린 0세 반 아이들은 물이 낯설었는지 단체로 울음을 터트렸고, 그 와중에 어떤 아기는 튜브에 둥둥 떠다니는 채로 잠이 들었다. 아, 그 풍경의 살인적인 귀여움은 정말 형언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스스로 놀란 건, 어느새 내가 처음 본 아이들과 아주 잘 놀고 있었다는 거다. 나는 1시간 넘게 풀장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들과 바구니에 물풍선을 넣었다 뺐다 하며 놀았다. 심지어 그들과 대화까지 해가면서!
민성이를 돌보며 알게 된 것들, 예컨대 아이와의 놀이는 늘 무한 반복이고, 아이는 전혀 엉뚱한 데서 재미를 느낀다는 점,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놀라며 칭찬해주면 그들은 진정 기뻐한다는 것 등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통했다.
물놀이장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육아휴직을 오래 하긴 했구나, 그리고 그게 날 많이 변하게 했구나 생각했다. 지난 1년 3개월을 회사에 있었다면, 평생 겪지 못했을 변화란 생각에 기분이 더욱 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