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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31. 2021

민성이의 첫 여름방학(3)

휴직 457일째, 민성이 D+706

'왼손은 거들뿐. 받아라, 나의 3점 슛!' / 2021.7.20. 어린이집


내가 요즘 즐겨있는 책은 육아의 신(?)이라 불리는 오은영 박사님의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다. 그녀의 책에는 날 뜨끔하게 만드는 구절이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건 이거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지면, 우리 안에 깊숙이 숨겨 둔 미성숙함이 슬슬 고개를 든다. (…) 누구나 인간적인 미성숙함이 있고, 이것은 대체로 육아 초기에 새삼스럽게 발견되는데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당황한다."


사실 좋을 때는 다 좋다. 내가 기분이 좋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체력이 넘치면 친절과 배려가 몸에서 뚝뚝 떨어진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다.


문제는 그렇지 않을 때다. 어렵고 힘들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난 누군가 내게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과 결혼해도 되겠느냐고 물으면 그 사람의 밑바닥을 꼭 한 번 보라고 조언한다.


나는 아내를 대학 때 만나 6년 동안 연애를 했고, 이제 결혼 5년 차다. 도합 10년이 넘었다. 딱 한 번, 상견례 후 크게 다퉜을 때를 빼고는 나는 아내에게 화도 짜증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은영 박사님 말대로, 나의 미성숙함은 육아 초기에 발견됐다. 정확히는 육아 휴직을 하고 나서였다.


민성이가 어렸을 때,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몰랐다. 그때도 나름 아내와 교대를 해가며 밤 수유를 했고, 꽤 힘들었을 법한데 잘 버텼다. 하지만 옆에서 도와주는 것과 주양육자가 되는 건 차원이 달랐다. 휴직을 하고 난 몇 번이나 무너졌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나선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지만, 사정이 생겨 민성이가 어린이집을 못 가면 나의 미성숙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이가 돌발진과 폐렴에 걸렸을 때, 코로나로 강제 휴원 됐을 때, 그리고 지금처럼 방학을 했을 때.


그때마다 난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주변 사람들, 특히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한테 서운함을 느꼈다. 물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실제로도 그렇고), 아내 탓을 하진 않았다.


대신 입을 닫았다. 말을 하면 괜히 비아냥거리거나 독설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덕분에 밖에서 충돌은 없었지만 안에서 울증은 더 심해졌다. 그러다 독박 육아가 끝나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런 날들이 반복됐다.


오 박사님 말대로 누구에게나 미성숙함이 있다. 나도 당연히 있다. 그런 모습이 실망스러울 순 있지만, 문제점을 아예 모르는 것보단 낫다. 이제 고쳐나가면 된다. 민성이 방학인데, 숙제는 내 손에 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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