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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09. 2021

아들이라는 이름의 날강도

휴직 466일째, 민성이 D+715

'북극, 어디까지 가봤니?' / 2021.8.8. 서천 국립생태원


우리 집에선 주로 내가 살림을 한다. 아내가 일을 하고 나는 육아휴직 중이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휴직 전에도 내가 주방 일을 많이 하긴 했는데, 이렇게 전적으로 도맡아 하진 않았다.


살림을 해보면 하루 세 끼 밥을 해 먹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정확히는 매끼 뭘 먹을지 정하고, 그걸 차린 뒤, 다시 치우는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지를 안다.


그래서 난 이번 주말 엄마 아빠가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잘 안다. 이번 주말 우리 세 가족은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서 잤다. 금요일 저녁부터 어제(8일) 저녁까지, 모두 다섯 끼를 먹고 왔다.


아내와 난 시간이 필요했다. 서울 집 잔금일이 어느새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와서, 인테리어 고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저녁에 민성이를 부모님 집에 맡기고, 아내와 나 둘 다 노트북을 챙겨 근처 카페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단 둘이 카페에 갔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감탄할 시간 따윈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둘 다 노트북에 깊이 코를 박고 평면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두 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부모님 집에 들어가니 저녁 9시가 조금 넘었다. 엄마는 민성이가 조금 전에 겨우 잠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도 우린 엄마 아빠를 믿고(?)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고 아침과 점심, 저녁을 연달아 얻어먹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엔 민성이를 할머니 품에 안겨놓고 둘이 영화도 보고 왔다.


거기에 집에 올 때는 일주일치 식량을 두 손 가득 들고 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날강도가 따로 없다. 이번 주말은 민성이 할머니 할아버지 덕에 날로 먹었다.


민성이가 비교적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거라면, 거기엔 분명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과 헌신이 가득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내리, 그리고 내리내리 사랑 덕에 3살의 민성이도, 37살의 민성이 아빠도 무럭무럭 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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