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67일째, 민성이 D+716
오전 8시 반, 오랜만에 민성이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어린이집 방학에 선생님들 백신 접종까지, 이래저래 사실상 2주 만의 등원이다.
바람이 꽤 선선하다. 더위가 한층 꺾인 느낌, 기분이 산뜻하다. 사실 이 기분이 날씨 덕인지, 민성이 방학이 끝났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역시 2주 만에 만난 중국어 선생님과 중국어 공부를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늘 그렇듯 혼밥을 한 뒤 운동을, 샤워를 한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민성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민성아, 밖에서 놀고 들어갈까?" 어린이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에게 묻는다. 그냥 집에 들어가긴 아까운 날씨다. 그는 이리저리 조금 돌아다니는 것 같더니, 나를 향해 팔을 벌리며 말한다. "집!"
못해도 1시간씩은 밖에서 놀다 들어가던 아이였는데, 금세 집돌이가 되어버렸다. 코로나에, 폭염에 매일 집에만 틀어박혀있어서 그런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가 또 안쓰럽다.
민성이랑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 보니 저녁 6시, 평소 같았으면 아내로부터 퇴근했다는 메시지가 와야 하는데, 어째 연락이 없다.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하며 슬슬 민성이 저녁밥을 준비한다.
민성이가 아무리 집돌이라지만 내리 두 시간을 집에만 있다 보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는 나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오더니 냉장고와 싱크대를 오가는 내 발 아래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성이는 주방 수납장에서 새 케첩통을 꺼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뚜껑을 만지작대고 있길래, 그냥 놔뒀다. 너 같은 아기들을 위해서 밀봉 장치가 되어있는 거란다, 라고 비웃으면서.
하지만 웬걸, 어느 순간 민성이는 케첩을 바닥에 뿌려대고 있었다. 내가 믿었던 밀봉 장치는 주방 구석에 처참히 나뒹굴고 있었다. 이제 민성이도 곧 두 돌이다. 그를 무시해선 안 됐다. 이렇게 난 또 한 가지를 배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