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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11. 2021

아빠의 노동요

휴직 468일째, 민성이 D+717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음식을 싣고 갈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답니다.' / 2021.8.10. 우리 집


민성이는 요즘 이 노래에 꽂혀있다. 제목은 병원차와 소방차. 1절만 옮겨보면 이렇다. '하얀 자동차가 삐뽀삐뽀, 내가 먼저 가야 해요 삐뽀삐뽀, 아픈 사람 탔으니까 삐뽀삐뽀, 병원으로 가야 해요 삐뽀삐뽀삐.'


2절은 하얀 자동차 대신 빨간 자동차가 등장한다. 병원차는 아픈 사람이 타고 있어서, 소방차는 불을 끄러 가야 해서 먼저 가야 한다는, 아주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끔 도로에서 하얀 자동차와 빨간 자동차가 사이렌을 울려도 길을 비켜주지 않는 어른들을 왕왕 볼 수 있는데, 그들에게도 이 노래를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여하튼 민성이는 이 노래에 꽂혀있는데, 부르는 게 아니라 듣는 데 꽂혀있다. 당연하다. 그는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니. 이 동요는 그래서, 근래 민성이의 최애곡이자 나의 노동요다.


아이가 자동차를 가지고 놀다가 나를 쳐다보며 가슴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을 때가 있다. 노래를 불러달라는 신호다. 그럼 그의 차 색깔에 맞춰 입을 뗀다. 노란 자동차가 부릉부릉, 그렇게 노동요가 시작된다.


빨주노초파남보, 집에 있는 자동차란 자동차는 일단 한 바퀴 돌아야 한다. 병원차와 소방차만 있는 건 아니니, 대강 상황에 맞게 개사를 해주면 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파란 자동차는 부릉부릉, 할머니 집을 가야 해요 부릉부릉, 아빠가 탔으니까 부릉부릉. 최대한 말이 되게 개사를 해주고 싶은데, 하루에 노래를 50번 정도 부르다 보면 그게 쉽지 않다.


민성이의 앵콜 요청은 자동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쩔 때는 인형을 가리키고, 어쩔 때는 책상이나 의자를 가리키며 노동요를 강요한다. 그럼 부릉부릉만 깡총깡총이라든지, 상황에 맞게 개사를 하면 된다.


어제(10일) 퇴근한 아내는 그런 민성이를 보며 말했다. "오빠, 민성이 뮤지컬 배우가 되려나 봐." (노동요를 부르느라) 목이 칼칼하다는 생각만 했지, 그런 상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민성아, 혹여 그렇게 되거든 아빠의 노고를 잊으면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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