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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16. 2020

돌잔치, 그리고 결혼식

휴직 47일째, 민성이 D+296

엄마의 품에 안겨 흐뭇하게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강민성 어린이 / 2020.06.14. 용산가족공원


어제(15일) 내게는 큰 미션이 하나 주어졌다.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민성이 돌잔치를 예약하는 일이었다. 아내는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 있는 내가 해내야 했다. 95번째 시도 끝에 마침내 전화가 연결됐다.


아내는 아이 돌잔치를 고급 호텔에서 열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 호텔에 예약하려면 석 달 전, 정확히 15일에 전화를 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지난달 한 차례 실패를 맛보았다. 둘이 합쳐 300통 넘게 전화를 걸었나 그랬다.


아내는 결혼식은 조촐하게 했으니 아이 돌잔치는 좋은 곳에서 해주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었다. 우리는 4년 전 서울 종로의 한 결혼식장에서 식을 올렸다. 실제로 아내는 결혼식에 큰돈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이른바 '스.드.메' 공식부터 과감히 깨트렸다. 식장부터 웨딩드레스까지, 거의 공짜에 가까운 걸 골랐다. 스튜디오 촬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때 우리에겐 더 크고 화려한 결혼식이라는 선택지도 없지는 않았다. 


아내는 결혼식에 쓸 돈을 아껴 집을 구하는데 보탰다. 가끔, 그래도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너무 초라하지 않았나 싶을 때가 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결혼식 비용을 아껴 아들의 첫 생일파티를 더 성대히 열어주는 셈이다.


오전 9시가 되자마자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 통화 중이었다. 누군가는 천 통을 걸어 연결이 됐다고, 아내가 말해줬었다. 귀에 에어팟을 꽂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쉴 새 없이 전화를 했다.


10시 조금 넘어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생각보다 일찍 연결됐다. 100번 조금 안 걸었으니 선방이었다. 주말은 예약이 모두 찼다고 해 금요일 점심으로 예약을 잡았다. 괜찮은 날짜였다. 아내도 좋아했다.


돌잔치엔 가족들과, 가족에 준하는 지인들만 초대하기로 했다. 결혼식 땐 아내와 스튜디오 사진을 못 찍었으니, 그땐 우리 셋이 예쁜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남겨두려고 한다. 벌써 설렌다.


4년 전엔, 아내가 출근한 뒤 날 닮은 9개월짜리 아이와 둘이서 집을 지키게 될지 몰랐다. 돌잔치 예약을 하러 전화를 백 통씩 하게 될 줄도 몰랐다. 그땐 예상 못한 일이지만, 지금 나는 꽤 괜찮은 곳에 서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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