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72일째, 민성이 D+721
새벽 1시, 입 안이 텁텁하다. 어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복기를 포기하고, 낯선 침대에서 노트북을 펼친다. 민성이는 내 옆에서 만세를 부르며 곤히 자고 있다. 여기는 대전에 있는 외삼촌 집이다.
어제(14일) 우리 부자는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 왔다. 지난달 밀양에 다녀왔을 때처럼 아내는 데리고 오지 않았다. 이유 역시 그때와 같다.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싶었다.
군산에서 대전은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그런 점에서 지난번 '밀양 기행' 때보다 훨씬 부담이 적었다. 민성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고, 그가 깼을 땐 이미 대전이었다.
삼촌 집에 도착했을 때, 민성이는 계속 엄마를 찾았다. 밀양에 갔을 때보다 심했다. 엄마는 집에서 청소를 하다가 코 자고 있다고 아이에게 말해주었지만, 그는 별로 수긍하는 것 같지 않았다.
민성이가 몸을 심하게 꼬아 감당이 안될 때쯤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내가 대충 기억하는 것만 메인 요리가 대여섯 개 나왔는데, 숙모는 계속 차린 게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내 기억은 거기까지다. 나는 배가 고팠고 술도 고팠다. 사실상 할머니에게 아들을 맡겨놓고 허겁지겁 입 안에 음식을, 술을 욱여넣었다.
엄마는 천천히 먹으라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러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면서 생긴 식습관이다. 어쨌든 그렇게 밥을 입 안에 때려 넣고, 민성이를 씻긴 것까지는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민성이는 왼쪽에 토끼를, 오른쪽엔 곰돌이를 둔 채 세상모르게 잠들어있다. 자는 아기가 천사인 건 불문율이다. 엄마 없이 이곳까지 나를 따라와 준 아이가 기특하고 고맙다.
새벽에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칼 답장이 돌아왔다. 그녀도 이 시간이 아쉬운가 보다. 자유부인은 계속 대전에서 찍은 사진을 내놓으라며 협박했다. 우리 부자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