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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16. 2021

가자, 대전으로(2)

휴직 473일째, 민성이 D+722

'언제 먹어도 맛있는 치크 케이크, 내 거는 내 거. 엄마 것도 내 거!' / 2021.8.15. 집 앞 카페


민성이와 달리 나는 잘 못 잤다. 무엇보다 술이 문제였다. 술은 언제나 숙면을 방해한다. 새벽 1시에 깨서 브런치를 좀 끄적이다 3시쯤 다시 누웠는데, 눈이 말똥말똥했다.


그러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에 휴직 전 내가 무서워했던 회사 상사가 나왔다. 내가 당직을 펑크 냈는데, 그에게 걸려 정말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 복직할 때가 되긴 됐나 보다. 눈을 떴을 땐 민성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 식사를 못하셔서 어떻게 해요." 숙모는 아침을 준비하시면서 말했다. 장어구이를 비롯해 그제 밤 내가 먹은 메인 메뉴만 대여섯 개인데, 그럼 내가 먹은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간단하게 차렸다는 아침상엔 LA 갈비가 떡하니 올려져 있었고, 전날 밤 어른 못지않게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었던 민성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밥 한 그릇을 쓱싹 해치웠다.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민성이가 삼촌에게 용돈을 받았다. 요즘 휴지 찢기에 푹 빠진 그는 5만 원 권을 받자마자 지폐를 세로로 들더니 손가락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말 그대로 돈이 휴짓조각이 될 뻔했다.


군산에 돌아와 부모님을 데려다 드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집 앞 카페에 있다고 데리러 오라고 했다. 카페에 갔더니 정작 커피는 거의 마시지도 못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느냐고 물으니 늦잠을 잤단다.


그제 민성이와 내가 대전으로 떠나고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갔는데, 뭔가 억울한 생각에 (늦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마실을 나왔다고 했다. 워킹맘에게 1박 2일의 휴식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오후엔 민성이도 자고 나도 잤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았다. 우리 부자가 자고 있을 때 아내 혼자 마트를 다녀왔다던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틀 동안 아들을 보지 못했던 아내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스토커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온종일 민성이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었다. 역시 아이는 가끔 보면 더 예쁘다. 서울에 가서도 아내에게 종종 시간을 줘야겠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더 좋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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