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75일째, 민성이 D+724
올여름 들어 처음 에어컨을 껐다. 그만큼 선선한 하루였다. 온종일 집 안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은 기필코 민성이를 꼬셔서 밖에서 놀다 와야지, 어제(17일) 민성이를 데리러 가며 다짐했다.
그러나 또 실패했다. "민성아, 놀이터 갈까?" 그는 양손을 힘차게 내저었다. 놀이터에서 몇 분이고 그네를 타고, 길가의 나뭇잎을 줍던 내 아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민성아, 밖에서 놀기 싫어? 왜?"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한다. "해삐, 해삐." 추측컨대, 햇빛이 따갑다는 얘기다. 참나. 전혀 그렇게 안 생겼으면서, 꽤나 까탈스럽다.
손을 잡고 걷자고 해도 품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얼굴에 부서지는 바람이 너무도 청량해서 아이를 안은 채 집 앞 벤치에 앉아있었다. 밖에서 놀다 가자고 귓가에 속삭여보지만 그는 계속 묵묵부답이다.
멀찍이서 위층에 사는, 민성이보다 한참 어린 여자아기가 엄마 손을 잡고 뒤뚱뒤뚱 걸어온다. "민성아, 저것 봐. 동생도 잘 걸어 다니네. 민성이 아가야?" 그랬더니 또 아기는 아니란다. 물론 여전히 그는 내 품에 안겨있다.
결국 민성이를 꼭 끌어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예전보다 무거워지긴 했지만 아직은 얼마든지 안아줄 수 있다. 이렇게 매일 어린이집 하원길에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집에 들어온 민성이는 장난감 투어를 시작했다. 자동차 줄 세우기부터 시작해 아이스크림 카트 뒤에 앉아 내게 아이스크림을 팔았고, 인형과 레슬링을 했다. 책도 몇 권 읽어줬다.
6시에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그는 평소처럼 버선발로 엄마를 맞으러 나갔고, 나는 곧장 저녁밥을 차려 셋이서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 민성이도 배가 고팠는지 그의 식판엔 쌀 한 톨 남아있지 않았다.
휴직 1년 4개월 차, 이젠 이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 큰 고민도, 걱정도 없다. 일상은 소소하지만, 그 소소함이 주는 즐거움은 크다. 이 시간의 끝이 보여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