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76일째, 민성이 D+725
매주 목요일은 호락호락팀이 주관하는 육아 대화방이 열리는 날이다. 근래 들어 내가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다. 이번 주 주제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부부 관계'다.
마침 바로 사흘 전이 내가 처음 아내와 연애를 시작한 날이었다. 11년 전 그때 우리는 둘 다 대학생이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6년을 사귀었고, 3년간 신혼이었으며, 이후 3년째 민성이 엄마 아빠로 지내고 있다.
이번 주 대화방의 부제는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법'인데, 사실 나는 아내와 잘 화해하는 법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아내와 잘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둘도 없는 잉꼬부부란 얘기가 아니다. 맞붙어 싸우지 않을 뿐, 일방적으로 혼이 난 적은 많다. 점점 그 빈도가 줄긴 했지만, 난 연애 초기부터 육아휴직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아내에게 혼이 난다.
대부분 혼날 만한 일이었지만 내 입장에서 충분히 항변할 수 있는 문제도 있었다. 때로는 서운했다. 하지만 나는 가끔 입을 삐죽거렸을지언정 입을 열진 않았다. 그러니 싸움 자체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육아휴직을 쓴 뒤에도 우린 싸우지 않았다. 다만, 내가 전보다 입을 삐죽거리는 날이 많아졌고, 그 기간엔 대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 내 속이 곪을지언정, 부부간의 표면적인 충돌은 없었다.
힘들 때 입을 열면 말이 예쁘게 나갈 수가 없다. 애한테도 그렇고, 배우자한테도 그렇다. 힘들 땐 늘 감정이 이성을 앞서고, 상대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독한 말을 쏟아내게 된다.
그래서 난 침묵을 선택했다. 나한테는 그나마 가장 나은 방법이었지만, 그게 아이를 둔 부부 관계에 그리 좋은, 또 건강한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필요한 싸움도 그냥 피해버린 건지도 모른다.
다만 그게 마음 그릇이 작은, 그래서 조금만 물이 넘쳐도 표독스러운 말을 내뱉고, 그로 인해 갈등을 더 키울 수 있는 내게 맞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어찌 됐건 휴직기간이 끝나가고 있는 지금까지 난 아내와 크게 다투지 않았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애를 키우면서 웃음을 잃지 않고 이 정도로 지내고 있는 것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건 사실, 아내의 바다와 같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