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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20. 2021

'아프까'의 비밀

휴직 477일째, 민성이 D+726

'선택 2021! 저 민성이의 선택은요, 바로!' / 2021.8.18. 어린이집


곧 말문이 트이려는지, 민성이의 '아무 말 대잔치'가 늘었다. 그중 요즘 부쩍 내 귀에 자주 들리는 게 있다. 바로 '아프까'. 어제(19일)도 그는 집에서 계속 이 말을 외쳐대며 놀았다. "아프까, 아프까!"


아무리 아무 말이어도 민성이가 하는 말의 8할 이상은 다 알아듣는다고 자부하는 나인데, 이건 당최 감이 오질 않았다. 30대 중반의 내가 가장 먼저 떠올렸던 단어는 아프리카 혹은 아프간이었다.


당연히 두 살의 민성이가 아프리카와 아프간을 알 리 없었다. 그래, 너의 깊은 뜻을 세상 풍파에 찌들 대로 찌든 이 아빠가 어찌 알겠니, 하며 포기 상태에 이를 무렵, 민성이가 책을 하나 가지고 왔다.


길고 짧은 오이와 가지, 애호박 등 여러 채소가 등장하는 그림책이었는데, 민성이가 그중 파프리카를 가리키며 외쳤다. "아프까!"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설마 파프리카였어?


이제 막 입을 뗄까 말까 하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얼마 전엔 민성이가 장난감 차를 가지고 놀다가 검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나를 쳐다보았다. 난 당연히 하나, 그러니까 '1'이라는 줄 알았다.


"응, 민성아 차가 한 대 있네? 차 한 대 가지고 노는 거야?" 난 의기양양하게 말을 건넸지만, 웬일인지 그의 표정은 영 개운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가 늘어나도 민성이의 손가락은 계속 검지 하나만 펴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알았다. 그건 '1'이 아니라 '위(上)'였다. 탁자 아래에 있던 장난감 차를 자기가 위에 올려놨다는 뜻이었다. 그때도 어제와 같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이 맘 때의 민성이를 돌보며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거다. 민성이가 주관하는 가족 오락관, 혹은 수수께끼 쇼.  


나는 지금 꽤 고득점자다. 늘 하는 얘기지만, 만일 내게 이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몇 점이었을까. '아프까'가 파프리카일 거라고,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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