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79일째, 민성이 D+728
어제(21일) 오전 7시, 아내와 나는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하루 동안 인테리어 업체 네 곳을 방문해야 한다. 과연 미팅을 잘 끝낼 수 있을까.
민성이는 할머니 품에 안긴 채 순순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4개월 전, 집을 알아보러 갈 때도 그는 우리를 얌전히 보내주었다. 자신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아내와 나는 추측하고 있다.
오전 10시, 첫 미팅이 시작됐다. 다음 약속이 오후 1시였는데, 12시가 훌쩍 넘어서 미팅이 끝났다. 우리는 5년 전 신혼집을 인테리어 한 적 있는, 나름 유경험자인데도 논의는 쉽지 않았다.
그때보다 집이 커졌고, 공사 범위도 넓어졌으며, 따라서 이번엔 돈이 훠얼씬 많이 들어간다. 업체는 친절했지만, 우리의 주머니 사정은 불친절했다. 돈이 많으면 논의는 어렵지 않다. 우리의 예산과 우리가 원하는 품질의 접점을 찾는 게 문제였다.
첫 번째 미팅이 끝나자마자 두 번째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 택시를 잡아야 하는데, 하늘에선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이번 주 내내 쨍쨍하더니, 갑자기 가을장마라나.
두 번째 미팅도 매우 유익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다시 사무실을 빠져나와 한강을 건너 세 번째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다. 아내와 나는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했다.
예정됐던 미팅 하나를 취소했는데도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6시였다. 아내와 나는 부랴부랴 그날의 첫끼이자 마지막 식사를 해결하고 45분 차를 탔다. 군산에서 출발한 지 딱 12시간 만이다.
"엄마!" 부모님 집 앞에 도착하니 위층에서 민성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아파트 현관을 향해 돌진했다. 그 말 한마디에 (나와 달리) 아내는 피로가 싹 가신 듯 보였다.
금방이라도 몸이 녹아내릴 것처럼 피곤해도 아이의 목소리에 다시 기운을 차린다. 어디 인테리어뿐이랴. 민성이에게 더 좋은 걸 먹이고 입히려 삶의 의지를, 의욕을 다시 불태운다. 여느 아이들처럼, 그 역시 우리 삶의 원동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