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56일째, 민성이 D+305
요즘 부쩍 짜증이 늘었다. 물론 그 짜증을 민성이한테 내진 않는다. 아이를 씻기고 욕실 정리를 할 때, 욕조 물마개가 안 보이면 입을 삐죽 내밀고는 '아씨, 어디 갔어!'라고 투덜거리는 식이다.
그런 현상은 이상하게 아내가 퇴근하면 심해진다. 아내가 돌아오면 해방감 같은, 긍정적인 기분에 사로잡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민성이를 아내에게 넘겨주고, 나는 우울감에 젖은 채 아이 목욕 준비를 하러 간다.
짜증, 혹은 우울감이라 했지만 그 감정은 복합적이다. 서운함 같기도, 무력감 같기도 하다. 단순히 피곤한 걸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즐겁진 않다는 거다. 웃고 싶지도 않고, 말도 잘 안 하게 된다(말할 사람도 없지만).
이유가 뭘까. 육아휴직 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으니, 휴직과 관련이 있는 건 분명하다. 계속 이러는 건 가족 모두에게 안 좋을 것 같아, 그제(23일) 아내에게 이런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남편이 육아 우울증에 걸릴까, 진심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퇴근하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그녀에게 서운한 게 있는 거라고, 다만 말을 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했다.
진짜 그런 걸까? 탄력근무를 하는 아내는 5시면 퇴근해, 집에 6시쯤 들어온다.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민성이랑 조금 놀아주다가 나랑 같이 아이를 씻긴다. 동화책을 읽어주고, 아이를 재우는 것까지도 그녀가 한다.
그동안 나는 아이 장난감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저녁을 차린다. 일은 완벽하게 분화돼있어, 민성이가 자고 난 뒤 부부가 대화를 나누며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7시다. 육아서에나 나올법한 시간이다.
내가 일할 때는 그러지 못했다. 9시 넘어 퇴근하는 게 다반사였다. 지금의 나로 따지면, 내가 민성이를 재우고 집 정리를 다해놓은 뒤 '도둑고양이'처럼 쓰윽 들어오는 것이다. 아내는 거의 야근을 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 집의 또 다른 사람, 10개월짜리 민성이 때문인가? 아이도 내가 낳아달라고 했다. 민성이는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10명이라도 키울 모범생 유아다. 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민성이는 잘해주고 있다.
결국 103호의 마지막 사람, 내 문제로 좁혀진다. 하지만 힘들지 않을 상황이라도 힘든 걸 어쩌겠나. 나도 유약한 인간인 것을. 난 성장통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 통증이 지나면, 아빠로서 더 성장해있을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