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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09. 2020

부성애 vs. 모성애

휴직 70일째, 민성이 D+319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살며시 미소 짓는 눈, 살짝 벌린 입, 허공에 떠있는 저 손가락까지. 벤치에서, 아빠와 함께. / 2020.07.08. 근처 아파트 단지


319일 전, 그러니까 지난해 8월 26일,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담요에 둘둘 말린 남자 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간호사가 조심스레 담요를 걷어내자, 아이는 목청이 터지도록 울어댔다.


민성이와 달리, 나는 울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부모가 눈물을 터트리곤 하던데, 나는 눈가가 촉촉해지지도 않았다. 분명 감격스러웠지만, 그날의 감정은 신기함에 더 가까웠다. '이 아기가 진짜 내 아들이란 말이야?'


병원에서 돌아온 뒤에도, 감격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아이를 보는 건 그냥 그랬다. 아이가 밉거나 싫은 건 물론 아니었다. 예뻤다. 아이를 안으면 기분도 좋았다. 다만 예뻐 죽~겠다, 가 아니었을 뿐이다.


반면, 아내는 민성이가 예뻐서 몇 번을 죽을 뻔했다. 그녀가 복직을 서두른 이유 중 하나도, 손목을 영영 못쓰게 될까 봐서였다. 아내는 품에서 아이를 내려놓을 줄 몰랐다. 그녀는 진정 민성이 껌딱지였다.


아내는 복직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그제(7일) 회사 동료와 저녁 약속을 갔다 늦게 들어온 아내는, 남편 대신 아들 옆에 딱 붙어 잠을 잤다. 온종일 민성이를 너무 못 봤다나 뭐라나.


아내와 바통터치를 한 지 70일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민성이와 붙어있는데도, 그동안 난 아내 같지 않았다. 아이를 보는 게 너무너무 싫진 않았지만, 너무너무 즐겁지도 않았다. 난 부성애 없는 아빤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요즘 부쩍, 아이에 대한 감정이 커지는 게 느껴진다. 민성이가 막 자고 일어났을 때, 소파에 벌렁 누워 아저씨처럼 웃을 때 특히 그렇다. 민성이 볼에 뺨을 비비고, 품 안의 아이 냄새를 맡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이와 스킨십도 늘었다. 소파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아이는 내 앞과 뒤, 옆에서 계속 달려든다. 그럼 나도 예전과 달리 책을 내려놓고, 아이와 같이 뒹군다. 아이도, 나도 깔깔거린다.


예전엔 싫었지만, 지금은 그러는 게 좋다. 아이는 그대론데, 내가 변한 거다. 무덤덤했던 나도, 부성애가 없진 않았나 보다. 부성애는 모성애보다 발동이 늦었다. 나중엔 아내보다 내가 더, 민성이 껌딱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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