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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10. 2020

아내의 새 남자

휴직 71일째, 민성이 D+320

빨래통과 함께 춤을. / 2020.07.09. 우리 집 


올해로 아내를 만난 지도 10년이다. 연애 6년, 결혼한 지 4년이다. 우리는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다. 첫 스터디 모임을 하기로 한 날, 도서관 계단 앞에 안경을 쓴, 자그마한 법대생이 나와있었다. 그게 그녀였다.


“요즘 우리 소원해진 것 같아” 그제(8일) 아내가 침대에서 날 껴안으며 말했다. 올 것이 왔구나. 우리는 소원해진 적이 별로 없다. 둘 다 말은 안 했지만, 둘 다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지는 좀 됐다. 곧 있으면 1년이다. 그는 나보다 어리다. 들으면 놀랄 만큼 많이 어리다. 그는 말도 안 되게 뽀얀 피부를 가졌고, 좋은 냄새가 난다. 다만 키는 좀 작다. 1미터가 조금 안되나 그렇다.


그는 날 닮은 것 같기도, 아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내가 더 끌렸나 보다. 남편이 보던 말던, 그 둘은 만나기만 하면 껴안는다. 사실 남자가 아내의 품에 안긴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고목나무에 매미랄까. 


원래 그 자리는 내 자리였다. 삶에 지칠 때면 그녀에게로 달려가 위로를 받으면 됐다. 하지만 이젠 갈 데가 없다. 지치기는 그 어느 때보다 지치는데, 어쩌겠나. 그곳엔 이미 매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아내는 그를 계속 사랑할 것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도 더 사랑해주지 못해 속상해하는 그녀다. 우리는 이제 그를 만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어쩌면 그녀를 그에게 양보해야 할 때가 온 건지 모르겠다.


10년도 더 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그 아내, 주인공 역의 손예진은 또 다른 결혼을 준비하며 이런 얘기를 한다. 자신의 사랑은 둘로 나뉘는 게 아니라 두 배가 되는 거라고. 


사랑은, 마음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아내도, 나도, 예전처럼 배우자를 사랑하는 동시에 아이도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몸은 어떨까. 그럴 수 있을까. 마음은 둘로 나뉠지 몰라도, 몸은 나누기 어렵다. 


아내와 내가 소원해진 건 사실이다. 적어도 전보다는 그렇다. 마지막으로 둘이 영화를 본 게 언제고, 외식을 한 게 언제였더라. 아내가 퇴근하면, 남은 힘을 짜내 함께 애를 재우고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둘 다 곯아떨어진다. 


하지만 이건 예견된 일이었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뿐이다. 아내와 다른 남자의 동거를 받아들이고, 셋이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나는 충분히 그녀에게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는 민성이 차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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