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Jul 11. 2020

오후 4시, 남자 둘, 곱창집

휴직 72일째, 민성이 D+321

'크, 그래 바로 이 맛이야' / 2020.07.10. 우리 집


어제(10일), 아빠의 금요일에는 나의 두 '절친' 중 나머지 한 명을 만났다(아이가 있는 삶과 없는 삶). 그는 내 대학 동기다. 1학년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만났으니, 15년이 넘어간다.


내가 군대 가기 전엔 같이 노숙하며 자전거 여행을 했고, 군대 갔다 와서는 함께 취업 준비를 했다. 졸업 후 그는 신문사에, 나는 방송국에 들어갔다. 어제도, 그는 신문사에서 오는 길이었다.


그는 최근까지도 경찰청 출입기자인 '바이스'를 하다, 노조 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바이스일 때 지금 서울시장 사건 같은 큰일이 터졌다면, 애 아빠를, 그것도 오후 4시에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1시간 전쯤 집에서 나와 버스에 올랐다. 버스비는 1,200원, 교통카드를 대니 누적액도 1,200원이 찍힌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선, 교통카드를 쓸 일이 없었다. 집 밖으로 나가질 않았으니까.


곱창집엔 중년 남성 넷이 이미 얼큰하게 취해있었다. '나야 그렇다 쳐도 오후 4시에 여기서 소리치고 있는 저 아저씨들은 뭐지.'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더니 답이 왔다. '나야 그렇다 쳐도 라고 생각하는 아저씨들이지.' 


하기는. 심지어 나는 중년도 아닌데, 오후 4시에 곱창집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도착했고, 나는 마음껏 아빠의 금요일을 즐겼다.


대화는 마르지 않았다. 그와는 15년의 과거를, 아이와 집을 고민하고 있는 현재를, 우리 일, 그러니까 기자의 미래를 얘기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우리는 기꺼이 각자의 사정을 들었다.


어제는 서울에서의 마지막 '아빠의 금요일'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 아내의 발령지가 발표되고, 빠르면 다음 주에 우리는 그곳으로 간다. 당분간 아빠의 금요일은 어려울지 모른다. 거기가 어디든, 아빠의 친구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그곳에서의 아빠의 금요일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내 개인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새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 같은 자리는 있기 어려울 테고, 그게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의 새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