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 문제해결의 핵심은 '시간끌기'에 있다. 어쩌면 당신의 아픔도.
나는 청소년이나 젊은 이들이 겪는 정서적 · 심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꼭 숙고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의논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은 인생의 체험량이 적기 때문에 자아개념으로 삼을 수 있는 재료 자체가 적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젊거나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똑같은 나쁜 일도 훨씬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최근 우리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청소년 자해라든가 리스트컷증후군과 같은 신규 개념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보고가 나오기 전에도 청소년 자해율과 자살률은 원래부터 높았다. 기본적으로 전세계 인구에서도 높고, 한국 전체 인구에 있어서도 매우 높다. 뿐만아니라, 자살이나 자해의 계기도 '왕따', '수험생활 실패', '성폭력 · 가정폭력 피해' 등과 같이 다른 나이대의 인구는 자살의 계기로 비교적 덜 삼는(성인은 비교적 잘 이겨내는 경향이 있는) 사건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에 우리는 유심히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는, 청소년 위기에 있어서 주로 정서나 대인관계에 주목했다. 나는 청소년의 '기억의 양'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물론 청소년의 정서는 발달상의 구조적인 취약기간 중에 있기 때문에 불안정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청소년이슈대응에 있어서 '청소년은 질풍노도의 시기로서 원래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라는 통속적인 관점은, 단지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이 아니라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청소년 대인관계도 마찬가지다. 정서 불안정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당연히 대인관계도 불안정해진다. 이건 결과론이다. 우리는 원인을 저격해야 한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고, 나는 그 가운데 우리가 조명해야 할 핵심 문제가 '기억의 양'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지금의 '이만하면 적당히 안정된 듯한' 성인의 정신을 가지고 청소년기로 돌아간다고 가정할 때, 태어난지는 채 20년도 되지 않았고, 초반 10년은 아동기라서 정신없이 보냈으며,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 일부와 · 별 것 아니지만 거대한 중학교의 경험과 · 혼란스럽고 불안한 고등학교의 경험들로 내 인생 전체가 채워져 있으며, 운 나쁘게도 고작 10년간의 기억 중에 상당한 기간이 나쁜 기억들로 가득차있고, 성인이 된 후의 미래는 두렵기만 하고, 더욱 운이 나쁘게도 우울증이나 조현병을 가지게 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정서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그렇게 된다고 상상하면, 나는 정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어른이 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 "그 때는 내가 어떻게 그걸 한 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두 번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이것이 그 폭풍같은 시기를 빠져나온 사람들의 증언이라면, 그 폭풍 한가운데에서 어디가 출구인지도 모른 채 헤매는 청춘들의 혼돈은 얼마나 막막하고 답답할까.
사람은 10살이 넘어야 제대로 된 자아개념과 자기에 대한 기억을 가지기 시작한다. 20살을 먹은 사람에게는 자기 인생의 기억이 고작 10년밖에 없다. 40살을 먹은 사람에게는 인생의 기억이 그나마 30년은 된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아주 힘든 계절과 시간들을 보낼 때, 그것이 우리 마음에 가하는 타격력은 단지 절댓값이 아니라 비율적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3년동안 아주 나쁜 일로 고생했다고 하자. 그 3년이라는 시간이, 40살에게는 인생의 10%에 불과하지만 20살에게는 인생의 1/3을 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나쁜 일을 희석할 더 다양한 경험이 인간에게는 필요하다. DMN(내정상태회로, Default Mode Network)에 의하여 내 자신에 대한 자동화된 검색행위가 일어날 때, 참조할 수 있는 수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건 많을수록 좋다. 나쁜 기억이 독이라고 할 때, 그걸 희석할 수 있는 맹물이나 신선한 혈액에 해당하는 그것과 무관한 수많은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 체험들의 폭넓은 양이 바로 '내가 누구이고 나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고 내 삶은 앞으로 어떨까?' 를 결정하는 자아개념의 재료이다.
그리고 그 재료의 절대적 양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40살 먹은 사람도, 자기 인생의 1/3이 비극으로 채워져 있다면 삶에 대한 상당한 회의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40살이 가진 30년간의 기억 중에 10년이 상당한 비율을 가진 나쁜 기억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그에게 남은 20년은 그럭저럭 긴 시간이다. 20살을 먹은 사람의 평생을 관찰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사람은 작은 좋은 일, 작은 삶의 의미 하나,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소중한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생존할 수 있다. 그 '생존의 자원'들은 오직 시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산술적인 시간을 넘어서, 주변환경(친구, 가족, 이웃, 학교, 사회복지사 및 정신보건종사자, 동료 체계)과의 꾸준하고 진득한 상호탐색 속에서 누적되는 신뢰관계 속에서 선물받는 것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연도 길어진다. 그렇게 발효의 시간을 거친 인연이 생존에 유용한 정서적 · 물질적 지지 및 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또다른 인연을 초대해주기 때문에, 인간의 고난 극복에 있어서 그 인간관계 발효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극히 중요하다. 그래서 똑같이 1/3에 해당하는 비극을 겪은 20살과 40살이 있다 할지라도, '비극과 무관했던' 20살의 7년과 40살의 20년의 절대적 양은 어마어마한 차이를 낳는 것이다. 20년은 단지 산술적으로도 7년의 3배에 가깝지만, 7년 동안 획득하는 환경과의 상호작용과 좋은 인연들과의 공생은 20년 동안 획득하는 그것과는 질과 양에서 전혀 다르다.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 오직 용량만이 독성을 결정한다.
- 파라켈수스(1493~1541), 현대 약학의 아버지
그것은 좀 더 거시적이고 포괄적으로 보면 경험의 양과 질이기도 하다. 결국 의미깊은 소중한 타인 그 자체든지, 그 타인이 건네는 호의 또는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든지, 아니면 그냥 나 혼자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간다든지, 사색이나 명상 속에서 정리되는 생각이라든지 하는 모든 것, 하다못해 그냥 지나가다가 본 가을 단풍이나 봄의 개나리 같은 것도 결국 우리 두뇌에는 하나의 체험된 경험으로서 입력된다. 그 수많은 경험들은, 우리 머릿속을 더욱 풍부하고 복잡하게 만든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 정신의 노이즈가 된다. 그 노이즈 때문에, 우리가 겪은 안 좋은 기억들은 점점 희멀겋게 희석되고 그 충격은 점점 멀어져 간다.
인지심리학의 노화 연구는 우리에게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이 들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속설과는 달리, 사람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머리가 나빠지거나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기억을 꺼내는 속도는 느려진다. 그리고 단기기억력도 조금 줄어든다. 왜 느려지는가?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시냅스간의 연결이 엄청나게 복잡해지고 신경세포 간 연결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배우고 익혀서 아는 것들이, 우리의 지혜들과 아름다운 기억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에는 다소 방해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절대 슬퍼할 일은 아니다. 수많은 복잡한 기억들이 있기에, 나이 든 사람들은 '지혜'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다각적이고 통합된 이해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젊은 사람들은 젊어질수록 그 반대라는 의미인데, 우리는 이것을 매우 엄격한 경고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젊은 사람들은 경험이 적고, 생각이 빠르고, 흡수가 빠르며, 지혜는 별로 없고, 자기 인생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심지어 그렇게 하는 젊은이들의 태반은 도 닦은 사람 흉내내는 주지화 방어기제임), 그렇게 조망할 인생 경험 자체도 없다. 태어나서 한 것은 초 · 중 · 고 다닌 사람들이 그리는 삶의 복합적인 면이란 사실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힘든 청소년들에게 그놈의 수능 입시 교육 말고, 좀 인생다운 인생을 겪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위기청소년 혹은 위기젊은이 개입의 최우선 과제는 평범하거나 행복한 시간들의 절대적 양을 확보하는 것이다. 충분한 체험과 사유의 양이 주어질 수 있도록, 고난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존재를 획득하고, 안 좋은 기억을 희미하게 희석시키는 평범한 기억과 체험들을 얻을 수 있도록, 위기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그런 '기억 희석용 시간'들을 제공하는 것을 조력자들은 최우선 과제로 잡아야 한다. 위기에 있는 사람이 단순히 불안정하고 정신병적인 상태라는 까닭만으로, 그 사람들의 회복기간을 단지 너무나 단조롭고 지루해서 '끝내 자기 자신을 생각해버리게 되는' 정신병원이나 사회복지시설 수용기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어떤 엄청 나쁜 기억에 시달리는 사람을, 자해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종일 방 안에 가둬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것은 장애인이나 위기청소년 탈시설화의 맥락과도 궤를 같이 하는 이슈이다.
짧은 인생 경험에 비해 고통스러운 경험이 너무 많아서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몸은 바쁘고 정신은 새로운 것을 많이 받아들이는' 정신없는 회복의 기간을 가져야 한다. 주변의 풍부한 보살핌과 함께, 실제 세상 안에서, 먹고 놀면서, 최대한의 새롭고 휘황찬란하고 정신없는 경험을 제공받아야 한다. 나는 이것을 '체험의 양적 완화'라고 부른다. 게임 캐릭터를 만들어서 게임도 하고, 눈물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 가 보고, 자신만의 비싸고 좋은 물건도 가져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당신의 나쁜 기억들이 당신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지금 인생이 끝난 것 같지만 그대 인생은 사실 이제야 시작된 것임을 알게 해 줘야 한다. 새로운 체험이 너무 좋아서 정신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살 것이다. 절망도 삶의 극히 일부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희석하라.
이러한 청소년위기대응의 핵심 원리를 시간 축으로 보면, 그것은 '지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시간 끌기'다. 무엇에 대하여 시간을 끄는가? 청소년이 더 풍부하고 길다란 삶의 체험과 기억들을 얻을 때까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시간을 끄는 것이다. 청소년들이(또는 젊은 사람들이) 좁아터진 기억 안에서 절망하여 자해나 자살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대학교육과 동아리활동 같은 수많은 정신없는 사건을 제공하면서 시간을 끌어주는 것이다. 오직 긴 시간 속에서 젊은이들은 어른이 된다. 오직 기나긴 삶의 경험의 통로를 지나면서, 우리는 평범하거나 행복한 기억 속에 나쁜 기억을 희석시키고, 자신의 경험을 재해석할 수 있는 참조틀을 획득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떠올리고, 과거의 손실이나 나쁜 경험도 일부는 어쩔 수 없었던 과거의 일로 묻고 일부는 더 강한 사람이 된 계기로 재해석하여 딛고 일어설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적게 잡아도 24세, 길게 보면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로 정의되는 '청소년기'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안전한 체험과 인간관계 교류의 서비스-공동체가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본다. 입시교육을 벗어나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시행착오를 체험하면서 자신의 나쁜 기억을 보상하는 성장의 행위를 할 수 있는 물리적이고 행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 공간은, 부모 잘 만나고 좋은 머리 타고난 청년들이 갈 수 있었던 대학이었다. 부모를 잘 만나지 못했거나 머리가 따라주지 않은 사람들은 대학에 갈 수 없었고, 대학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한 운 나쁜 청소년들은 홀로 지적인 면에서 · 대인관계 면에서 · 커리어 면에서 · 자아개념의 면에서 방황하다가 쓰러지기도 했다. 이것은 대학이 주는 학벌이라든가 취업 프리미엄 그 이전의 문제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는 운 좋은 아이들에게 대학이 주는 이익들과 동등한 종류의 이익을 제공하는 전 청소년 인구에 대한 공공서비스를 기획해야 한다. 나는 대학의 평준화 및 의무교육화도 그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 본다. 다만 그것이 너무 먼 미래의 것이라면, 적어도 대학에서 누리는 여러가지 자유와 공동체와 지적 성장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복지 내지는 심리-사회 서비스의 개입이 필요하다.
자 그렇다면 정리해보자. 청소년이 제한된 체험과 공감에서 말미암은, 위험토록 좁은 자아개념을 이제는 드넓게 확장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위기로부터 전적으로 보호되며 유익한 자원들이 무제한적으로 공급되는 안전한 서비스체계와 그 체계가 공급하는 인간관계 공동체가 필요하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존경하는 위기개입 관계자 여러분께서는, 이 부분을 숙고해 주시고 서비스기획과 실무에 반영해주시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기억과 회복의 원리에 있어서 단지 청소년이 시간적으로 취약하기에 오늘은 청소년위기해결을 테마로 놓고 이 원리를 논한 것이지만, 사실은 이 원리는 우리 인간 모두가 평생 적용받는 것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힘든 일이 있을때 우리는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너무 힘든 일에 몰입하지 말고, 가급적 삶의 다른 측면들에 주의집중 하고,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덮어씌우고, 수많은 다른 느낌을 주는 경험들로 희석해주는 전략적인 경험관리를 해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평소에도 힘든 일을 대비해서 평소에 사람들과 넓고 깊게 교류하고 좋은 경험을 많이 만드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고에는 보험을 들 수 있지만 내면에서부터 무너지는 자해나 자살에는 보험을 들 수 없는데, 기분 좋은 경험과 행복한 체험들이 자신의 자해나 자살을 확실하게 예방하는 최고로 강력한 보험이다. '많은 경험' 그 자체가 어떤 고통스러운 일도 별 것 아닌 인생의 한 에피소드로 보이게 하는 거대한 '경험의 양적 완화'이고, 당연히 그것 자체로 인생의 행복이며 행복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니까.
다들 경험을 많이 하시고, 행복한 경험도 많이 하시라. 당신의 행복이 우리 사회의 존재 이유이자 우리가 하는 모든 기획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겪은 안 좋은 기억들도 시간의 거대한 바다에 섞어버린다면, 우리 모두는 성공하는 것이다. 당신이 행복한 모든 순간에 우리 모두의 계획은 성공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함께 성공하자.
Photo by Maria Teneva on Unsplash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