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빛의 재판

나루시선, 50

by 나루

빛의 재판

서나루




세상에 검사가 있으면 변호사도 있어야지


누군가 너를 다그치면

누군가는 네 편도 들어줘야지

그래서 나는 검사가 되기로 했어


억지로 끌려나온 채

감히 절망을 변호하는

네가 가장 믿어온 변호인단을 해임하고

법정 밖으로 다시 끌어내려고


찾지 않아도 네게 찾아오는

가혹한 수사관들을 불러세우고 그것에게

두 번째 영장을 발부하려고


네가 찾지 못한

네게만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방충망 너머의 웅성거림을 움켜쥐고 그것의

입 없는 입을 뜯어버리고

날개가 바삭하게 타버린 모기의 모습으로

눈 내리는 법정에 세우려고


나는 칼을 든 신처럼 눈을 가려

너를 너만큼 자세히 알지 못해 다행이야

부풀려진 내면의 절망을 믿고

네 허구에 맞장구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눈과 귀와 입을 막은 원숭이처럼

네가 자꾸 뒤돌아보는 과거의 길목에 버텨앉아

절망 측 증인들의 웅성거림을 듣지 않고

기억들의 보고서를 인용하지 않고

가망 없다는 탄원들을 끈질기게 기각할 거야


잘못 판결된 절망이야

다시 다시 너를 위한 재심이야


너는 네게 불리한 증언만을 반복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너의 눈부신 장면들을 불러세우며

손을 물들이는

저들에게 쓰지 못했던

날의 번득임들을 설득할 거야


네가 존재를 부인하는

그 희망이 남긴 발자국들을 염색하고

그 자국에 몰래 네 신발을 대어 볼 거야


시간의 막대 끝

이미 아득히 기록된 네가 승소한 판결들

채택된 것으로 드러난 증거들


압류된 너의 반사광들

파티 소품으로 격하된 너의 반짝이들

땅 속의 빛들

광맥의 어둠들

끝내 빛을 이기지 못하는 너의 순한 어둠들











Photo by Kiki Falconer on Unsplash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