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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Aug 12. 2022

성폭력 사건기록에서 배운,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법들

윤중천 집단성폭행 사건 review하며 남긴 메모

나는 직업상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에 대하여 자주 팔로업한다. 피해자의 행동, 정신적 여파의 패턴들을 구체적인 사례 속에서 파악하는 것은 외상사건 발발 시에 피해자의 역기능적 행동을 이해하고 1차/2차/3차 예방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기 때문에, 나는 정신 다소 피폐해지는 것을 감수하고 외상사건에 대한 사건 사례들을 찾아본다.


오늘은 윤중천 집단성폭행 사건 R/V하면서 다시 한 번 강렬한 분노와 안타까움에 사로잡혔는데, 같은 글을 십수 번은 읽었음에도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 그런 동시에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여러 예방 가능한 지점이 보였는데(이래서 반복 학습이 중요함), 그 부분을 글로 남겨 본다. 


나는 이수정 교수와 같은 범죄심리학 전문가가 아니므로, 아마추어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고, 유사시에 가급적이면 이런 방향으로 행동하면 좋을 듯하다는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결코 이 말만 듣지 마시고 단지 성폭력 피해, 강간 피해, 성폭행 피해에 대한 대처에 이런 접근방식도 있음을 참고해주시기만을 바란다.


말머리 기호는 따로 달지 않고, 모든 문장은 줄바꿈만을 하겠다.





범죄 피해의 대상이 되었을 경우에 일반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의견들 - 


가해자의 회유에 당하지 말아야 한다. 가해자는 갖가지 방식으로 회유한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그 제안 자체에 절대 걸려들면 안 된다.


법원에서는 그것을 거래 또는 화해행위의 일종으로 판단한다. 피해자가 손상/손실을 조금이라도 더 벌충하고자 한 최선의 결정이라는 사실을 존중하지 않는다. 가해자에게 어떤 것도 받지 말라. 


자신의 피해를 가해자에게 어떤 것을 얻어내서 회복하려는 마음이 들 수 있다. 행동에 옮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한국처럼 여성을 의심만 하는 법원에서는 피해사실 전체가 불인정 될 수 있다. 가해자에게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고 가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가해자에게 배상을 받으려면 가능하다면 민사소송(손배소)을 통하거나 처벌이 끝난 이후에 받아내야 한다.


가급적이면 가해자에게 가해사실을 확인하는 대화 이외에는 어떤 연락도 추가로 취하지 말라. 연락을 하면 할수록 적대적인 검사/변호사/판사가 그 내용을 꼬투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성폭행 사건에서 영상을 퍼트리겠다는 협박이 있을 수 있는데, 그 협박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당하는 사건이 매우 많았다. 또한, 지금까지 적지 않은 사건들을 review해본 결과,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고 협박이나 보복을 위해 촬영된 영상은 결국에는 유포된다.


예를 들면, n번방 사건에서 영상 유포 협박을 위해 촬영된 영상들은 결국 유포되었다. '50대 악마 사건' 마찬가지. 윤중천 집단성폭행 사건 마찬가지. 주로 남자들을 노리는 '몸캠 피싱'사건 역시 결국에는 유포된다. 협박을 위한 몰카 촬영은 곧 유포이다. 그래서 애초에 비현실적인 희망 없이 바로 전쟁 모드에 돌입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비동의 촬영을 당했을 경우 유포 피해까지 당했다는 가정 하에 움직여야, 그 영상을 지워주겠다는 협박에 속아서 치명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 


이 매커니즘이 작동한 가장 유명한 사건이 내가 여러 집필에서 수차례 언급한 '50대 악마 사건'이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비극적이고 매우 강력한 '이렇게 하면 큰일나요' 사례이다.


가해자의 협박에 겁을 먹지 마라. 가해자의 협박이 사실이든 아니든, 결과는 똑같다. 

가해자의 협박이 그럴듯하다면? 이것은 전쟁이고 당신은 군인이다. 전쟁대비를 해야 한다. 

가해자의 협박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면? 상관없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 협박에 끌려다닌다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특히 살해 협박이 있었을 경우에는 경찰(믿음직스럽지 못하겠지만)과 지역사회 자원을 모조리 긁어모아서 방어해야 한다. 


살해 협박 때문에 끌려다니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차라리 자신을 물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자원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저렴한 대가를 요구한다. 


살해 협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협박을 통해 원하는 것을 다 얻고도 여전히 살해할 수 있다. 결국 위험성은 똑같은 것이다. 협박에 당하지 말라. 


극단적으로 말하면, 똑같이 살해당하더라도, 협박을 통해 산골로 유인당해서 살해당한 사람은 범인도 시신도 증거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자신의 지역사회에서 살해당한 사람은 가해자의 구속만큼은 반드시 이끌어낸다.


가해자와 친분이 있을 수 있다. 친분이 있는 사람과의 성범죄가 통계상 훨씬 더 많다. 그럴 때에도, 어렵겠지만, 친분에 영향 받아서 호의를 주거나 관계를 지속해서는 안 된다. 법원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면서 왜 친하게 지냈어요?" 취지로 공격받을 가능성이 크다. 즉시 끊어야 한다.


가해자를 사법처리할 생각이 있다면, 범죄 피해를 당한 순간부터, 가해자를 어떤 식으로든 만나지도 말고 연락을 받아주지도 말아야 한다. 법정에서 변호사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가장 낫다.


비동의촬영물 등의 기록물은 범죄 자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에 내가 가급적이면 확보하고 백업을 여러 겹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윤중천 집단성폭행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에게 보낸 성폭행 영상이 증거로 활용되었다.


수사기관을 전부 믿지 말아야 한다. 형사든 검사든, 그들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되, 어떤 경우에도 그들이 '선의를 가지고 나를 도울 것이다' 기대하지 마라. 


수사기관 담당자들도 공무원들이며 공무원들은 자기 자신 편이지 민원인의 편이 아니다.


가해자의 변호사는 나에게 악마처럼 굴 것이다. 변호사는 원래 그런 직업이고, 모든 변호사가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법정에서는 사실이냐 아니냐보다, 일관되냐 아느냐가 더 중요하다. 일관된 말이 곧 증거이고, 일관되지 않은 말은 거짓말의 증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자기가 한 말을 가급적 완벽하게 기억하고, 완벽하게 기록해두어야 한다.


성폭행 피해자가 날짜를 헷갈리게 진술하자, 해당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가 그것을 꼬투리 잡아서 '그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발하기도 한다. 그 사건이 내가 여성의전화에서 인턴 할 때 재판지원 나갔던 첫 사례였다. 나는 그 충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힘들겠지만, 가급적이면 일관되게 말해야 한다. 자기 정신적 컨디션을 잘 챙겨야 한다. 모든 자원을 동원하라. 


법원에서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긴다. 전화 통화 할 때 안드로이드 자동녹음 켜야 한다. 아이폰 절대 사용하지 마라. 아이폰은 애플 방침상 통화녹음이 불가능하다.


백업하라. 나의 진술과 증거자료 등 스스로를 변호 · 입증하는 사건자료를 이중로그인 보호된 계정 구글드라이브/이중로그인 보호된 계정 원드라이브/비트로커로 암호화된 USB/비트로커로 암호화된 하드디스크 등에 4중으로 백업하라. 


날짜별로 폴더를 만들어서 계속 업데이트 하라. 중요한 파일을 실수로 삭제하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하라. 오래된 파일이나 쓸모없어진 파일에도 중요한 정보가 남아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한컴오피스 .hwp파일은 비어 있더라도 '문서 정보'(Ctrl+Q, I)에 최초작성날짜, 최종수정날짜, 작성자의 컴퓨터명, 최초 파일명 등이 저장된다. 삭제하기보다는, 사건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날짜별 폴더에 중복 저장하라.


OneNote등 자동저장-자동날짜기록 필기프로그램을 활용하라.


고통스럽지만 살아남아야 한다. 친구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라.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매우 많다.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도 당신을 도울 것이다. 돕지 않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권리이고, 도움 구하는 사람을 도와야 하는 것은 의무다. 폭력피해를 당했다면 당연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남자도, 심지어 여자도,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이유로 안 좋게 보는 사람이 있다. 구 시대의 망령과 같은 사람이므로 죽은 사람 취급해야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범죄피해를 당한 가족을 절대적으로 감싸주는 것이 가족의 기본이다.


도와주는 사람에게 늘 친절히 대해야 하고, 나중에 감사를 표해야겠지만, 지금 도움 요청하기를 절대 망설이지 마라.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살고 가해자를 족칠 수 있다.


검색하라. 다양하게 검색하라. 구글과 네이버는 서로 검색 호환이 안 된다. 구글에서 나오는 자료는 네이버에서 나오지 않고, vice versa. 그러므로 적어도 구글-네이버 교차검색 해야 하며, 네이버 검색창에 잘 나오지 않는 지식IN에서의 검색도 필요하다. 


당신을 도울 기관은 정말로 많다! 민우회, 여성의전화, 해바라기센터, 여성긴급전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성폭력 사건의 여러 힘든 점 가운데 내가 특별히 딜레마라고 느끼는 것은, 범죄는 피해사실을 공개해야 도움받을 수 있는데 성폭력은 각종 문화적인 사유로 피해사실 공개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최초의 성폭력 가해가 일어났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드시 인연을 끊어야 한다.

가해자에게 어떤 보상도 개인적으로 받지 말라. 법정에서 불리할 수 있다.

가해자를 불리하게 하는 연락 이외에는 어떤 연락도 취하지 말라. 법정에서 불리할 수 있다.

가해자의 협박에 굴복하지 말라. 협박당하는 순간 당신은 이제 군인이므로 전쟁을 준비하라.

검색을 생활화 하고 주변에 조언을 폭넓게 구하라.

아는 모든 기관 · 사람에 도움을 요청하라.

클라우드백업 등 기술적 증거 보존에 신경쓰라.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구하라.



이상이다.

이 의견이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께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Photo by SpaceX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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