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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Sep 11. 2022

사회의 목적은 인간이다.
그 반대가 아니라.

'장애의 사회적 모델' 철학으로 바라본 노인 문제의 올바른 접근

오늘날 장애에 대한 모델 가운데서 가장 널리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장애의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이다. 장애의 원인을 신체적 손상(impairment)에 집중하는 의학적 모델(medical model)에서는 장애인에게 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을 신체의 손상 또는 결함으로 판단하지만, 사회적 모델에서는 장애의 원인을 사회가 불편을 가진 사람에게 필요한 적절한 맞춤형 조치의 부족·자원 분배의 부족· 몰이해·차별·혐오·배제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취급한다. 


대표적으로, 격리반대지체장애인연합(UPIAS)는 다음과 같이 장애를 정의한다: “손상은 사지의 전부 혹은 일부의 상실 또는 사지나 신체 기관 혹은 기제의 결함”이며, “장애는 신체적 손상을 가진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따라서 그들을 사회활동의 주류에의 참여로부터 배제하는 오늘날의 사회구조로부터 유래하는 활동의 제약 및 불이익”이다. 1982년 세계장애인연맹(DPI)은 이 개념을 더욱 정교화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남찬섭, 2009)


손상신체나 정신 또는 감각의 손상에서 유래하는 개인의 기능적 제약

장애물리적·사회적 장벽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과 동등한 수준으로 공동체의 정상적인 삶에 참여할 기회가 상실되거나 제한되는 것


장애를 정의하는 이러한 진보된 모델의 핵심 정신은, 인간이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인간이 사회의 주류에 맞추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가 개별 인간의 특성을 배려하고 사회의 제반 사물을 불편함이 없게끔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결단은 인간을 생산력 창출을 위한 최소투자 최대수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몰인간(沒人間)적 관점을 거절한다. 그에 맞서, 사회가 존재하는 최종 목표가 인간의 복지라는 측면을 강조하며, 장애를 가진 마지막 단 한 사람의 불편을 없앨 수 있다면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적합 조치를 제공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버 세대(이하 ‘노인’)에 대하여서는 어떤 관점을 가져왔는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노인은 이른바 ‘박정희 시대’로 상징되는 몰인간적 산업사회가 노동자 계급을 바라보는 태도의 연장선상에서 취급되었다. 몰인간적 산업사회가 노동계급을 바라보는 태도는 인간존재가 자원을 창출할 수 있는 시기에 한하여 그 자원을 창출하는 역할에 의하여서만 그 사람을 대우하며, 장애 또는 노령으로 유의미한 자원 창출이 불가능해지면 쓸모없이 돈만 소비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을 골조로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 하에서 예컨대 한 사람의 인간존재는 앞날이 창창한 학생이었다가(그러나 실패한 학생은 비행청소년이 되어 배제된다), 군인이었다가(그러나 군인 역할을 거부하면 투옥되거나 살해된다), 노동자였다가(그러나 노동자 되기를 거부하면 가난과 낙인을 얻는다), 재생산 가능한 생식인구였다가(그러나 이성애·결혼·출산을 거부하면 배제와 낙인을 얻는다 – 참고: 여성은 이성애·결혼·출산을 해도 배제와 낙인을 얻음 –), 자력 생활이 가능한 건강한 시민으로 취급된다(그러나 건강하지 않아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면 가난·배제·낙인을 얻는다). 


이러한 생산성 숭배 및 공공지출 절감주의 사고방식은 단지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에 본질적으로 결합된 것이 아니다. 물론 기업 성장을 숭배하고 공공부조의 필요성을 폄훼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 자본주의 하의 기업본위적 사고방식에서 이러한 태도는 당연히 강해진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채택하지 않은 북한 등의 국가에서도, 힘과 생산성을 숭배하고 인간존재를 사회의 최종 봉사대상으로 존중하지 않는 한 장애인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인간을 사회적 생산성의 봉사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생산성을 인간이 봉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이러한 태도를 만드는 본질인 것이다.


이 사고방식 하에서, 노인은 생산이 불가능하고 생산물을 소비하기만 하는 사회의 짐으로 취급된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한 인간의 자아실현과 사회참여 욕구를 존중하고 연령에 맞춤화된 경력증진 프로그램 개발은 지체된다. 프로그램이 제공되지 않는 한, 노인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가난과 고립에 노출된다. 장애의 현대적인 규정이 ‘사회적 장벽으로 인해 공동체의 정상적인 삶에 참여할 기회가 박탈된 상태’였던 것과 같이, 노인을 무력하고 짐이 되는 존재로 만드는 원인 역시 고령자의 신체·정신적 조건이라기보다는 사회가 그들을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행위에 있다. 따라서 노인에게 역할과 자리를 제안하고, HRD하고, 임파워링하고, 다시 사회의 주무대로 불러오는 것은, 장애인에게 적절한 조치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절실한 우리 사회의 책무인 것이다.




Photo by Chang Duo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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