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 Jan 25. 2023

플라네타리움의 방

나루시선, 58

플라네타리움의 방 


                                서나루



사랑이 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는 사람과

사랑이 귀한 것이었음을 배우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외로울까요

그 사람도 사랑이 귀한 것임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외롭겠지요


해야 되는데 받을 사람은 없고

받아야 되는데 줄 사람이 없으니까

인간의 제반 원리가 팽이처럼 돌고 있지요

우로보로스


평형

아무런 좋은 일도, 슬픈 일도 일어나지 않고

힘은 시뻘건 간 속에 갇혀서 익어터질 때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닫힌 마음이 있고

사랑이 필요없는 사람에게 시간이 있어요 많이 남는 시간이

승승장구하죠


내가 사랑하지 않은 친구는

자취방 벽에 비춘 플라네타리움 사진을 보내주었어요

옥색과 선홍색의 오리온 성운

색감 따듯하죠


그 친구 옥빛 선홍빛 쬐며 얼어죽어 가고

나는 역사가가 되었어요

부담없죠 


뒷걸음치며 기록하다가

질질 흘리며 기어왔던 내 힘줄을 밟아요

미끄러지죠


잘린 모든 운동

잠긴 대낮처럼 각방에 버둥거리고

토한 뱃속 쥐어잡고 역사라는 방법까지 집어들기 전

내 모든 바람이

짓이겨졌음을 확인할 때까지 찧은 자취방 벽

옥수수 알 씹듯 핏발 터트려내면서, 조명의 열 속에서

얼어죽었을 친구 나처럼 무슨 눈을 떴을까요


걘 나랑은 또 다른 방식으로 몸부림치던데

사각거리는 냉동 혈흔

역사란, 경우의 챔버들에서 찌고 어는 파도의 시뮬라리움

세상에 사랑받은 사람이라는 게 있긴 있었을까요

그렇게 느낀 게 다 진짜였을까요


돌고 휘몰아치고 다 씻겨나가는 회전 은하의 방

왜 눈물은 투명할까요?

아무리 많이 흘려도 씻기는 모습 보이지 않아요

그만 울고 나가라는 뜻인데 세탁기 깊죠







Photo by thestroll.galler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