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 Mar 03. 2023

젠가 두 벌을 준비한다

나루시선, 62

젠가 두 벌을 준비한다


                                서나루



누군가를 무너지게 하려면

가장 깊이 들어가서 일순간 사라지라는데*


그 아이 냉혹 앞에서 나는 지갑을 열고

뒷자석을 접은 SUV에 묘목을 싣고

농약사에서 비료를 사고

나무를 키우고 전기톱을 하나 사서

그라인더와 80방 사포를 사서

블록을 깎는다


내가 소중하지 않지?


깎아

네 머리에 젠가를 겨누고

떠나버릴 거야

너는 이미 떠났지만


사랑이 왜 소중한지 알려줄게

네가 이런 식으로 한다면

너는 이미 그런 식으로 했지만


샷쉘**을 장전하듯이

내 머리 속의 네 머리 속에

추억을 한발 한발 삽탄하면서

당겨버릴 거야 내가 정말로 외로워지면

다 당겨버리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고 너는 오늘도 잘 자고

열심히 살고

그 사람이랑 한잔 하고 문자를 하나 남기고

전화는 받지 않고


자기 전엔 이를 닦듯

찬 이부자리에서 웅크리며 너와 마주누워

젠가 두 벌로 너와 나에게 하나씩 겨누고

사랑없어도 괜찮겠냐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나는 이거 당기면 정말로 죽는데

피식 웃잖아. 머릿속의 너도






* 『젠가』, 박가람

** 산탄총의 크고 두꺼운 탄약


Photo by Unsplash Ussama Azam

작가의 이전글 탁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