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젠가 두 벌을 준비한다
나루시선, 62
by
나루
Mar 3. 2023
아래로
젠가 두 벌을 준비한다
서나루
누군가를 무너지게 하려면
가장 깊이 들어가서 일순간 사라지라는데*
그 아이 냉혹 앞에서 나는 지갑을 열고
뒷자석을 접은 SUV에 묘목을 싣고
농약사에서 비료를 사고
나무를 키우고 전기톱을 하나 사서
그라인더와 80방 사포를 사서
블록을 깎는다
내가 소중하지 않지?
깎아
네 머리에 젠가를 겨누고
떠나버릴 거야
너는 이미 떠났지만
사랑이 왜 소중한지 알려줄게
네가 이런 식으로 한다면
너는 이미 그런 식으로 했지만
샷쉘**을 장전하듯이
내 머리 속의 네 머리 속에
추억을 한발 한발 삽탄하면서
당겨버릴 거야 내가 정말로 외로워지면
다 당겨버리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고 너는 오늘도 잘 자고
열심히 살고
그 사람이랑 한잔 하고 문자를 하나 남기고
전화는 받지 않고
자기 전엔 이를 닦듯
찬 이부자리에서 웅크리며 너와 마주누워
젠가 두 벌로 너와 나에게 하나씩 겨누고
사랑없어도 괜찮겠냐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나는 이거 당기면 정말로 죽는데
피식 웃잖아. 머릿속의 너도
* 『젠가』, 박가람
** 산탄총의 크고 두꺼운 탄약
Photo by
Unsplash
Ussama Azam
keyword
젠가
나루
사랑
20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나루
직업
학생
철학, 사회학, 심리학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보잘것없는 지식과 직접 흘려 본 눈물로 글을 씁니다.
구독자
196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탁발
중중무진 카오스에 항복하라 그러나 계속 헤엄치라.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