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시선, 64
서나루
방 한복판에 바퀴가 걸어다닌다
어느 구석에 숨어살다가
달콤한 냄새를 따라 나왔나보다
벽으로 몰아 전기파리채를 누른다
언제 죽나. 한참을 눌렀다 떼도
탄력 있는 콩껍질처럼 엉덩이를 쳐들고
다시 앞으로 걷고
또 다시 걷는다
저가 감전되었다는 지식도
기어봤자 소용없다는 의견도
없는 것이다
공포도 절망도 없이 앞으로 가는 저것은
그래 기계다. 기계라 놓고 보니
다닥다닥 털 난 다리가 징그럽지 않다
뭐 설계상 그런 것인데.
아데노신3인산* 배터리로 움직이는 드론
살고 싶어서 앞으로 간 게 아니었어
앞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갔던 거야
아무런 의도 없는 그것은 징그러운 것이 아니었어
깨끗한 기계의 회로를 이제는 그만 꺾어 두기 위해
휴지로 틀어쥐면서도
앞으로, 자꾸 앞으로 가려던 그것의 엉덩이가 생각난다
깨끗한, 유균의, 기계성의
벌떡 벌떡 몸을 일으켜세우던 뒷다리 낯익다
나 역시 엉덩이를 들고 버둥대는구나
그것이 깨끗한 기계였던 만큼이나.
괴롭히려는 악의도, 살아보겠다는 의지도 없이
기어다니게끔 조립된 드론처럼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지 않은 메시지를 찾아 새로고침을 누르는
악의 없는, 유균성의
남에게 먹일 비싼 술을 사모으면서
초밥집을 예약하면서
경매투자 필독서와 강연과 항공권을 사모으면서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고
매일 아침마다 자꾸만 앞으로 가려는
절대 더럽지 않고 절대로 추하지 않은
유균성의
굵은 솜털이 난 기계가
*ATP. 모든 생물체가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