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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의 심리·AI·철학-
2. AI 쇼크 세대의 서막

by 나루
[이 글은 전부 사람이 직접 썼으며, AI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음]


이 글을 쓰고자 새벽 02시 54분부터 모니터 앞에 앉았다. 아침 9시면 등록해놓은 코딩 학원에 등교해야 하는데, 아직도 자러 가지 않고, 무슨 조간신문 연재도 아닌데 글 하나 쓰겠다고 호들갑인가?


그 학교에 갈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AI 쇼크 세대


나는 여름 이맘때에 태어났다. 더 단단하게 자라라는 생일선물이었을까, 작년 8월부터 올해 8월 사이 단 1년 사이에, AI 때문에, 내가 일하던 전도유망한 기술 벤처 스타트업 하나와, 내 미래 직업 하나를 잃었다. 농담이 아니고 과장도 아니다. 나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유한하고 덧없음을 알기에 말을 부풀리면서까지 얻고 싶은 게 없다.


죽을 사람 곁에 와서, 아무 해코지 않되 다만 구슬프게 울기만 한다는 유럽 설화의 밴시(Banshee)처럼, 매일 각도를 점점 더 가파르게 치고 올라오며 레거시(전통적) 산업을 박살내는 AI에게 직장 하나와 비전 하나를 잡아먹힌 내 실제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단 1분이라도 더 빨리, 쓰나미가 온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장난감 취급 당했던 AI


"사귀기도 전에 차였다" 라는 우스개소리를 아는가? (누군가에겐 농담이 아닐 것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0고백, 1차임"이라는 말도 있다. 모두 무언가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개시하기도 전에 무위로 돌아간 상황을 일컫는 일이다. 나는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2025년 8월 8일. GPT-5가 출시되기 이전까지는, 사람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AI도 완벽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AI에게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엔터키 딸깍딸깍만 해가면서 얄밉게 코드 짜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란 용어는 2025년 2월 3일에 안드레 카파시(Andrej Karpathy)가 제안한 신어지만, AI로 코드를 짜는 행위 자체는 2022년 GPT-3 시절부터 얼리어답터들에 의해 쓰여왔다. AI가 대중에게도 폭발적으로 주목받은 것이 요 몇 달이라고 생각하면, 생각보다 꽤 오래전부터 보급된 개발방식인 것이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손수 자판을 두들기면 반드시 생기는 오타를 자동으로 정정해주고, 맥락에 의거하여 예측가능한 다음 코딩을 자동완성해주는 것도 AI 코딩으로 본다면, 그것은 훨씬 더 오래전부터 IDE(통합개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쓰여 왔다. AI 개발은 누구나 어느정도 받아들이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AI개발은 여러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보조도구에 불과했다. 각종 편의 기능과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마술 같은 편의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AI는 여전히 헛소리 같은 코딩을 했고, 그래서 컴퓨터의 전체 얼개와 원리에 대한 근본 이해를 바탕으로 큰 그림을 못 다룬다면, AI로 코딩한다고 설쳐 봐야 찌꺼기 코드(레거시 코드) 덕지덕지 달라붙은 미역줄기 같은 기계를 만들게 될 뿐이라는 비판이 매서웠다. 실제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코딩 강사님들도, 바이브 코딩 시대가 올수록 사람이 코드를 본인 손으로 직접 짜고 컴퓨터공학적 지식을 배우는 것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2025년 8월 8일 이전까지는.




사람이 일하자 해도 AI는 그만두라 하네


나는 AI 서비스 스타트업의 사업개발부 팀장이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천재성을 지니고 있듯, 나 역시도 나름의 천재성을 가진 분야가 있었고, 회사는 그 재능을 원했다. 젊은 나이에다가 심리학을 전공한 (비개발자인) 경력에 비해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고, 기세등등하게 원하는 모든 기능을 설계에 넣으며, 그저 이것을 누구에게 얼마를 받고 팔고 스톡옵션은 얼마를 쥐게 될 지, 즐거운 상상만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내 ChatGPT를 업데이트하자, 우리가 만들던 앱과 똑같은 기능이 추가되어 있었다. 버튼 하나로.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가 만들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매끄럽게.


우리가 서비스의 측면에서 밀린 것은 아니었다. 우리 앱은 디자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예뻤고, 구현하려던 기술과 OpenAI가 구현한 기술도 근본적으로 동등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데이터의 양이 달랐다. 우리는 사용자를 바탕으로 꾸준히 다량의 질 높은 데이터를 모으겠다는 포부를 가진 야망가들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AI 초거대기업 OpenAI는, 그들에게 데이터를 공급하는 Google을 포함한 전세계의 데이터기업들과, 무료 온라인 프로덕트들을 즐기며 그 대가로 영업기밀부터 인간의 극히 내밀한 행동데이터까지 아낌없이 주는 전세계인의 힘으로, 이미 그 야망을 이룬 상태였다.




사다리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걷어차기


야망을 이룬 기업이, 이제 그 첨탑을 더 크고 더 완벽히 바벨탑처럼 솟구치게 하고자 전세계의 모든 컴퓨터 천재들에게 평균 40억원에서 100억원의 연봉을 주고 데려온다. 내가 일하던 회사는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버틸 수 없었다. 회사는 임직원의 다른 특기를 발굴하여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향해 Pivot하면 되지만, 내가 구현하고 싶었던 기술적 절정이 이미 한달에 3만원 내면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초거대 서비스의 기본상차림 밑반찬으로 나왔다는 것은, 혁신하는 개인으로서 더 이상 여기에 달라붙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도 회사는 나와 더 오래 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AI는 내 일의 의미 자체를 무화시켰다. AI회사의 야심찬 미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초거대 AI회사의 밑반찬 같은 서비스에 간단히 격추당한 것은 나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물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랑 하루아침에 내 담당 프로젝트가 공중분해된 것은 직접 겪어봐야만 아는 일이다. 당시 우리 회사야 곧장 다른 서비스로 노선을 변경하여 지금도 잘 나가고 있지만, 어떤 기업에게는, AI가 매달 새로 출시하는 바로 그 서비스가, 그들이 몇 년을 갈아넣어서 만들던 유일한 수익모델이었던 경우도 흔하다.


나는 퇴사하고 나서 정신을 번쩍 차렸다. 거대 공룡기업이 된 메이저 AI 서비스들(ChatGPT, Claude, Gemini)이 이른바 SaaS(Software as a Service)라고 불리는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웹으로 접속해 곧장 사용하는' 디지털 서비스 업계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단순히 AI가 커버할 수 있는, AI에게 대체가능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AI를 이해하고, 소프트웨어를 이해하고, 프로그래밍을 이해해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나는 수십 가지 코딩 스쿨을 비교·분석하고, 여러 입학설명회에, 코딩을 "수업에 입과하기 위한 수업과정" 까지 들으며 개발자가 되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과도기적 들뜲, 마치 해방후처럼.


어리석게 보였을 수도 있다. 인간이 디지털적으로 하는 모든 행동이 AI에게 추월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가장 위태롭다는, 개발자들이 우후죽순 해고당한다는 개발자 공부를 한다? 하지만, 적어도 당시에는, 당시라고 해봤자 불과 며칠 전도 아닌 그 시기까지는, 내 판단은 당시에 조언을 구했던 모든 개발자 멘토님들도 동의하시는 것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컴퓨터 프로그램의 근본을 모른 채로 AI 코딩기능만을 이용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위험하므로.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심리학 · 사회학 · 철학 등의 인문학 · 휴먼서비스 백그라운드를 가진 내가 갑자기 프로그램 개발을 한다고 나선 이유에는, 기사가 검과 방패 양자를 자유자재로 다루듯, 왼손에는 전공지식 · 오른속에는 소프트웨어 빌드 능력을 모두 갖춤으로써 AI 시대에 부응하는 생산물을 창출해보겠다는 구상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 판단은 옳았다…. 2025년 8월 8일 이전까지는.


내가 부푼 꿈을 안고 코딩 스쿨에 등록할 때만 해도,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의 30%는 농담과 냉소가 섞여 있었다. 누가 그런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짓을 하는가? 라는 비웃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불과 지난달 중순(2025년 7월)까지만 했어도, 본인 분야의 전문가가 전공자만큼은 아니지만 그대로 나름대로 정석적인 프로그램을 배워서 뭔가 시스템을 구축해보겠다는 내 판단은, 누가 봐도 괜찮은 아이디어였고 해볼 만한 행동이었다.


여전히 ChatGPT는 다 외우지도 못할 만큼 수많은 메뉴판으로 쪼개져 있었고, Claude는 비싸고 무거웠으며, Gemini는 느려터지고 하나마나한 당연한 소리가 광고처럼 섞여 나오는 Pro 버전의 Deep Research 모드가 아니면 쓸 게 못 되었다. 리서치 전문 인공지능이라던 Perplexity는 자료조사를 개판으로 해주고 있어서 연구자들은 환각지뢰를 밟을까 손도 못 댔고, Liner Pro는 검색성능만 Perplexity보다 살짝 나은데 저거 팩트체크 기능 하나 쓰겠다고 Perplexity 두 배 요금을 내야 했다.


여전히 AI는 비쌌고, 여전히 맥락파악 못 하는 멍청함과 기술적 한계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AI에 의존하며 사고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충분히 문제될 수 있었다. 좀 더 경제적으로 보자면 생산성을 월 구독에 의존하게 되는 문제와(구독 어젠다에 관해서는 구독경제 전문가 전호겸 교수를 참조하라), 정책적으로 보자면 핵심 자동화 기능을 미국에 외주하게 되는 안보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직접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역량을 갖춤으로써 분야별 전문가로서 일종의 자체적 AI안보를 달성하려는 야망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찌됐든 2025년 8월 8일 이전까지는 말이다. 그날, 그리고 9일, 10일, 11일…,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ChatGPT 5의 출시뿐만 아니라 OpenAI사를 의식하여 딱 그 즈음에 우후죽순 소개된 대형 AI 개발사들의 대형 업데이트와 그에 대한 실사용례들이 점차 드러났다.




턱이 벌어지고 맥이 탁 풀리는 외계기술 쇼케이스


8월 6일 출시된 Claude 4.1는 그야말로 뭐가 더 좋아졌다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능을 보여주었다. 사람과 구분할 수 없는 것을 넘어, 아예 내 마음을 읽은 듯이 원하는 결과를 갖다주는 요술봉 같은 답변 정확도와 질문의도파악능력을 보여주었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비싸다는 것인데, Claude 4.1이 주는 효익은 "어떻게 사람이 AI를 구독하는데 한 달에 200달러를 줘야 해" 다음에 "이건 2000달러라도 쓰지" 라고 말하게 만들었다. AI의 엔드유저 파괴력,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서비스 사용을 위해 출혈을 감수할 수 있는 지불의향가격은 문자 그대로 한 달 걸러 한 달씩 로그함수를 그리며 증가하고 있다.


같은날, Google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8월 6일 Google Gemini는 CLI GitHub Actions를 출시했다. 명령줄 인터페이스(CLI) 환경에서 무료로 사용가능하던 Gemini CLI를 GitHub에서 동료 개발자들과 공동작업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확장했다. 바이브코딩의 선두주자인 Cursor는 이틀 후인 (GPT-5출시일과 같은) 8월 8일에 CLI 버전을 출시해서 어떤 IDE나 서버 환경에서도 Cursor AI를 삽입하여 사용할 수 있게 했다.


OpenAI는 vLLM · Ollama 등 로컬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 모델을 2025년 8월 5일 소개했다. GPT-OSS 120B는 o4-mini 급 성능을 H100 GPU 딱 1장으로 로컬 컴퓨터에서 무료로 돌릴 수 있도록 전세계에 배포되었다. 20B 모델은 13~16GB 용량의 그래픽카드 메모리만 충족된다면 어떤 동네 컴퓨터에서도 o3-mini 급 성능을 구동할 수 있다.


그야말로 외계인들이 와서 자기들끼리의 기술 엑스포를 연 것과 같은 8월 첫째주였다. 이정도의 기술발전속도로는, 우리 입장에서는, 적어도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이 외계 거신상들의 경쟁이 어느 방향으로 치닫는지 바위틈에 숨어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무엇을 '도모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조급함과 뒤쳐짐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근거 없이 가설에만 의존하여 달리다보면, 어느순간 그들의 발바닥이 우리 정수리를 무심코 짓밟을 것임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내가 느낀 오직 한 가지 통찰은, 빅데이터와 대규모 고전압 병렬 연산기술로 작동하는 이 거신병들들이, 그 아키텍쳐(설계 원리) 단위에서부터 따라오지 못하고 모사할 수 없는 나의 전문영역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것뿐이었다. 결국, 더 할 것은 없었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나의 판단은,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세상에 대응하는 원칙과 방식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결론으로 점점 수렴하고 있었다.




구독경제의 관점에서, 라하이나의 정오(Lahaina Noon)


물론, 그 어떤 기술도 완벽하지는 않다. GPT-5가 완벽하다거나 GPT-5 출시 자체가 세상을 뒤집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GPT-5는 기울어져가는 구 세계의 이마에 그늘지기 시작한 기운 고개의 그림자였고, 태양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라하이나의 정오에서 땡볕은 담담하고 잔인하게 무엇이 하늘을 향해 솟고 있는지, 무엇이 레거시 산업으로 기울기 시작하는지 알려주는 이진법이었다.


GPT-5는 구질구질한 아마추어같은 하위모델들을 싹 정리하여 자동 선택장치 안에 숨겼다. 이것은 더 이상 ChatGPT의 고객들이 단순 소비자 이상의 '서비스 초기 테스팅 가족'으로서 OpenAI의 발전을 함께 경험하며 다양하게 공개된 베타버전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써볼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ChatGPT사용자들에게는 AI 모델 비용효율성 고려 없이, 윌리 웡카의 기술 낙원에 초대된 아이들처럼 이것저것 입맛대로 골라써볼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호텔 브런치는 엄청나게 비싼 것 딱 한 종류밖에 없듯, 최고로 비싼 레스토랑들은 아예 가격 자체를 메뉴판에서 빼버리듯, OpenAI와 같이 서비스 공급망 구축의 안정기에 다다른 초거대 기술기업은 이제 고개들이 알면 까다로워지고 까탈스러워질 수 있는 정보들을 슬슬 '백단'으로 숨기기 시작한 것이다. 제공하는 것과 지불하는 것 모두를 그들이 비밀스럽게 결정하면서도, 고객 입장에서는 선택이 자동이라서 편리하다는 가치를 얻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제 세월이 가면 ChatGPT의 하위 AI 모델에 종류가 10가지 넘게 있었고, 그걸 고르느라 AI 아키텍쳐에 대한 공부를 심층적으로 해야 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태어날 것이다. 그들은 그냥 AI라고 적힌 AI를 아무런 세부사항 없이 "주어진 그대로" 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 엔진 종류에 몇 가지가 있는지 모르고, 그냥 주는 대로 쓰는 것처럼. 그래서 수리비가 얼마인지, 원가가 얼마인지, 공임비가 얼마인지 오직 동일한 사업자들의 비교견적을 통해서만, 가장 추상화되고 가필되고 첨삭된 정보인 '요금'을 통해서만 알 수 있듯이.




AI 베타테스터에서, 주는 대로 먹는 고객으로


이것이 GPT-5야말로 우리사회가 되돌릴 수 없는 AI 미끄럼틀을 넘어버린 상징인 까닭이다. GPT-5는 그자체로 더욱 코딩에 최적화되고, 더 빠르게 작동하고, 더 경량으로 (전기를 아끼고=원가를 절감하고) 작동하고, 더 통합적으로 (더 의존성 강하게) 작동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술적인 요소들도, GPT-5가 자신들의 구체적인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메뉴판 뒤로 숨겼다는 것보다 의미심장하지는 않다.


모든 폭발물도 아주 많이 모으면 핵폭탄 만큼의 폭발력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폭발물도 핵폭탄 자체는 아니다. 그게 없어도 2차세계대전은 끝났을 것이고, 그것의 개시는 종전을 약간 앞당겼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핵무기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를 근대와 현대의 분기점으로 기억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GPT-5의 출시가 없었더라도 AI의 압도적인 일률과 장악력은 전 세계의 모든 서비스를 침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GPT-5가 투하된 2025년 8월 8일은, 이제 우리가 더는 예전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역사의 래칫 브레이크가 박힌 날이다.


실제 태평양전쟁도, 핵폭격이 있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진작에 패배한 전쟁을 질질 끄는 것을 넘어, 핵폭격을 당하고도 그것에 대한 거짓말 같은 진술들을 믿지 않아 생존한 장교들이 현장에 가보고서야 사태파악이 되었던 일본제국처럼, 나 역시도 GPT-5 당시에 출시를 넋놓고 구경이나 하다가, 그것의 위력을 보고하는 유저들의 사용례들을 속속 접하고 나서야 내가 지금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라 만차의 기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타이탄폴(Titanfall)


정수리 위에서 내리꽂히는 태양만큼이나 정확하게 수직으로 떨어지는 구 시대의 그림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이마에 드리우는 것을 느끼며, 나는 거머쥔 창을 고쳐 잡아야 했다. 없는 것 빼고 다 팔고, 상상하지 못하는 것 이외에는 다 만들 수 있는 만능기계를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돈으로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거대한 AI 종합상사는 창의적인 서비스로 무언가 만들어 팔아보려고 하는 모든 디지털 혁신가들을 줄폐업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그것이 웹서비스이든, 임베디드이든, 장치산업이든, 첨단산업이든….


AI는 막 J커브를 그리며 성장하고 있는 옛 회사를 쫓아와서 핵심 서비스 프로젝트 하나를 격추했고, 그 안에서 더 만들어볼 만한 미래구상에 말문이 막힌 나를 퇴사시켰으며, 내가 나름의 야심을 품고 개인적인 융복합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위해 되고자 했던 개발자 교육에 입과하기도 전에 나를 은퇴시켰다.


정부는 폭력을 독점하는 조직이라 했던가? 그래서 시민이 무력이 반드시 필요할 때만 공동창고에서 빌려서 꺼내쓰는 것이 공권력이나 군사력인 것이고. 무언가의 독점에 대한 그런 허술하고 어색한 해명을 부분적으로 용인해주건대, 그러므로 유비하자면, 이제 Google(Gemini), Antropic(Claude), OpenAI(ChatGPT)와 같은 초거대 AI 기업들은 이제 기술을 독점하는 조직이 된 것이다.


물론 거대 AI 기업이 군사력과 정부를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 역시 시민사회와 의회의 감시 하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또한 그것을 개발하는 자들 가운데 소수는 권력과 지배욕을 부릴 수 있지만, (적어도 1세계) AI산업과 인공지능 개발에 종사하는 집단지성의 평균적 성향상, 그들이 갑자기 하이테크 나치가 되거나 테크노 빅브라더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AI기업들처럼 권위주의와 민족주의에 의한 뇌손상이 오지 않는 이상.




그레이 구(Gray Goo)


하지만 체계론적 · 시스템론적으로 봤을 때, 거대 AI 모델은 마치 스스로 무한증식하여 결국 모든 것을 흡수하여 거대한 회색 구체가 되는 나노봇 가설에 등장하는 Gray Goo(페기 구 아닙니다)의 모습처럼 정보와 데이터를 통합할 것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그것은 체계론의 관점에서 충분히 위협적인 중력과 흡인력이 있는 일자(一者)로의 원심응축기이다.


무림에서 어떤 무기를 개발하든, 관군에게 들키지를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무협지를 안 읽어본 토들러도 아는 상식이다. 쇠파이프 사제총기를 코트 안주머니에 숨기지 않는 이상 정부가 압수해가는 것과 같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어도 귀신같은 비행기가 와서 벙커버스터를 꽂아넣고 것과 같이, 모든 무기와 모든 무력은 어떤 국지적으로 단극적인 존재에 의해 압수당해있다.


정보는 어떤가? 기술은 어떤가? 우리가 기술적으로 무엇을 만들어도, 무엇을 창조하더라도, 그 어떤 정보기술의 성취를 얻더라도 우리에게는 소위 말하는 '지옥의 2지선다'가 주어져 있다. 첫 번째 선택지는, 나의 지식정보와 아이디어를 대낮 저잣거리에 내놓고 집단지성에 의해 계속 발전시키는 대신, 그 설계도를 전세계의 모든 정보를 빨아들이는 디지털 가르강튀아에게 넘기는 것이다. 두 번째 선택지는, 바둑 산신령 문하에 입산하여 10년을 수련하고 하산해보니 겨우 2단 수준이었다는 '기술적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보안과 기밀을 유지하며 지하 연금술을 계속하는 것이다.




자석이 어떻게 나무를 끌어당기겠는가


나는 나름대로의 중간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기술과의 정면승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무기를 쥐고 있는 한, 영토 안에서는 압수의 대상이 되고 영토 바깥에서는 사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둘 모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기 자체를 버리는 것이다. 혹은, 무기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혹은, 남들이 결코 무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으로 무기의 본질과 동일한 실효를 내는 기예를 갖추는 것이다. 항복하는 방식으로 무장하며, 은퇴하는 방식으로 데뷔하는 것이다.


기술이라고 알려진 기술과, 감추어진 기술이 경쟁할 때에도, 기술 바깥의 기술이 존재할 것이다. 지금 정보 시장은, 그것이 정보 그 자체이든 정보를 매개하는 정보기술이든 간에, AI - 특히 정보 블랙홀과 같은 초거대 중앙 AI 기업에 의하여 단극화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들어 기억하는 바가 맞다면, 마하트마 간디가 말한 것과 같이, "아무리 강한 자석도 나무를 끌어당길 수는 없다"


자성들 가운데에서 나무가 된다는 것은, 내가 헬다이버(Helldiver)처럼 뛰어들어 개입해야 할 차원과 내 싸움의 영역 바깥 차원을 구분하는 일이며, 내 실제 삶에서 그 차등의 실천을 실행하는 용기를 가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작업은, 모두가 뛰어들어서 피를 튀기고 있는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어쨌든 뭔가를 '수행하고' 혈전을 벌이면서 "내가 무엇인가 행동에 옮기고 있구나" 하는 위안 받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중력셔플


그리고 오히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관심조차 주지 않는, 펀더멘털 사이트(Fundamental Site)보다도 기저에 묻혀 있는 기반암 지평선(Bedrock Horizon)까지 파고내려가, 오로지 그 근본 채굴층에서만 발굴되는 가치를 필요로 하는 세계시민의 실제 삶의 증진을 위해 가장 근원적인 질문 · 연구 ·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끝낼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의 전체 질량은 변하지 않았더라도, 밀도와 무게중심은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재배열되었다. 모든 에너지가 이제 표층에서 엄청난 중력으로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으는 AI 전쟁에 쏠리게 되었고, 이제 거기에 쏠린 질량들의 중력 공백들이 각 층과 국소에서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 공동(Cavity)에 내가 숨쉴 공간도 있을 것이고, 충격을 흡수하는 에어포켓도 있을 것이고, 시장의 틈도 있을 것이고, 새 생태계가 형성될 그늘막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기회와 아이템들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는 모든 자성체를 끌어들여 짓이겨 농축하는 AI시대에 어떻게 '철분을 대사하는 나무'가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연재에서 긴 호흡으로 다루고자 하니, 앞으로도 나와 함께해주시기를 바란다.





사진: UnsplashHassaan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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