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 Nov 27. 2020

아침형 인간이 되자

또 그 소리야? 또 그 소리 맞다. 지겨운 주장 한 번 더 들어보시라.

세간에는 이런 말이 돌아다닌다.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차이는, 아침형 인간들이 지나치게 우쭐하다는 것뿐이다." 아니다.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아침형 인간이 여러모로 더 낫다. 오늘은 아침형으로 살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에 관하여 알아보자.


1. 아침형 인간은 음주를 할 수 없다. 


올시즌 중 우리 코칭스태프들은 절대 술자리를 갖지 않겠다. (…) 선수들에게 항상 몸 관리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경기에 지장을 줄 정도로 밤 문화에 시간을 보내지 말라는 당부다.

 - 2015, LG 양상문 감독 (출처)


아침형 인간은 음주를 할 수 없다. 당연한 이유가 있다. 음주는 일과가 끝난 저녁에 이루어진다. 저녁 시간이 술로 채워지면,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다시 밤으로 새벽으로 미뤄진다. 아침형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술자리를 거절해야 한다. 술자리를 거절하면 술을 마실 수 없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음주로부터 오는 여러 해악들로부터 면제된다. 술은 인지력, 절제력, 판단력, 수면의 질을 떨어트리고, 간을 포함한 전신 장기 손상을 유발하며, 장기적으로도 그러하다. (출처 1출처 2) 단 한 잔의 술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발암 효과를 나타낸다. 우리는 이른바 '발암물질'을 두려워한다. 스테인리스 연마제(탄화규소), HPV바이러스, 전자기파 같은 것들은 발암 가능성이 있거나 의심되는 2군 발암물질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발암 확률이 있다고만 하면 아득바득 회피하면서도 자기 목구멍에 술은 잘 털어넣는다. 술은 WHO IARC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이다. 술은 자신이 지나는 모든 길의 세포를 손상시킨다. 구강, 위장 점막, 혈관, 간, 뇌... 우리가 두려워하는 물질 가운데 어떤 것도 술만큼 확실하게 암과의 인과 관계를 가진 물질은 없다.(출처


술만 마시는가? 우리에게 존재하는 술을 마시는 친구들의 습성은 어떠한가? 담배도 핀다. 폭식도 한다. 그것도 기름지고 해로운 안주들로 먹는다. 술안주로 생오이에 삶은 양배추 먹는 사람 없다. 술값과 안주값은 언제나 높게 책정되며, 당연히 그 모든 것은 경제적인 비용이기도 하다. 술과 담배와 같은 향정신성 약물을 하는데 정신이 멀쩡하기는 더욱 힘들다. 게다가 술자리에서 내년에 쓸 논문이나 올해 말까지 딸 자격증처럼 생산적인 이야기를 할 시간은 많지 않다. 정신이 빙빙 도는데 t-test의 신뢰구간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머리에 들어올 것이고, 정치적 반대파가 하는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을 어떻게 열린 마음으로 숙고해 보겠는가? 욕이나 하지. 그렇게 돈을 쓰고 몸과 마음을 망치는 데도 시간이라는 한정된 인생도 낭비된다. 결국 서로서로 끌어안고 추락하는 것이다.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술을 거절한다면, 술과 함께 딸려오는 수많은 해악들이 면제된다. 시간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 그것 자체로 아침형 인간의 삶은 더 길고 건강하며 행복하다. 


술 거절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술 친구는 = 인생 망치는 친구다. 술 마시는 것이 안 좋다는 정도의 판단력도 없는 친구와 함께해서 함께 좋은 일이 일어날 수는 없지 않은가. 술 냄새도 맡지 말고 그런 사람 근처에도 가지 말라.



2. 아침형 인간은 홀로 바로서서 다른 인간으로부터 초연하다.


인간 관계가 낭비가 되거나 상처가 될 때, 그 까닭은 대부분 자신이 먼저 바로서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바로선다는 것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로, 자신이 세계를 위하여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둘째로, 스스로를 반성하며, 셋째로, 사람을 거절해도 내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2-1.

내가 세계를 위하여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우리가 물리적인 실체로서 우리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산업을 유지하는 데 참여하여 그 이익금을 통장에 채울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이익이 많은 산업에 참여하는 데에는 상대적인 경쟁도 거세지만 절대적인 요구 준비량도 상당하다. 수능영어 1등급을 굳이 맞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영어 그 자체'는 할 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의미있는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의외로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같은 진보주의자들이라든지 좌익이신 선생님들은 '노력해야 한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맑시즘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 익숙하다. 단지 자본가의 노예가 되기 위하여 자본가가 HRD와 R&D에 투자해야 할 비용을 노동자가 부담하는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 그것이라면, 물론 그것 역시 당연히 사실이고 시정되어야 하겠으나(왜 토익950을 넘기길 바라면서 해커스인강 수강권을 끊어주지 않는 것인가? 왜 그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가?), 여기서 우리가 그것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근대주의는 Hustle 해서 Flex 하자는, 혹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자는 '과로의 이념'이다. 맑시즘도 근대주의적 정신의 산물이며,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경쟁은 치열하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무능한 자는 좌천된다. 자본주의는 고사하고 민주주의가 발명되기도 전인 1000 년 전, 3000 년 전 문헌을 뒤져 보아도, 여러가지 경전을 뒤져 보아도, 열심히 살라는 말이 있지, 놀고 먹고 배 째라는 말은 없다. 인류의 정신 전체가 최대화와 최적화를 추구하는 영원한 '과로의 이념'이며 바로 그 이념이 이 번영하는 세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후변화도...)


<맹자>에 나오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는 말은 그 이념의 정수이다. 자신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생산력 또는 생업이 있어야, 자신의 마음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출처) 생산력을 갖추면 타인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고, 마음도 자립할 수 있으며, 그제서야 진정 타인의 색과 섞이지 않은 자신만의 감정과 사상 그리고 사유방식의 톤을 찾을 수 있다. 거절하고 싶은 사람을 제때 거절할 수 있고, 접근하고 싶은 사람에게 제때 접근할 수 있다. 이 모든 혜택들이, 이 세상의 수요자들에게 좋은 것을 생산해서 공급하기 위하여 혼자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시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수요자들이 지불하는 요금 또는 수요자들과 맞바꾸는 생산물이 당신을 의존에서 벗어나 홀로 단단히 서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자유와 자존의 맛이다.


2-2.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은 대부분 고요한 밤이나 이른 새벽에서야 나온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타인으로부터 차단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다소 신경쓰인다. 마치 둥지속에 들어온 새가 지저귀듯이, 타인의 관점과 입장과 의견은 우리 마음속에 그 입이 통째로 들어온 것처럼 계속해서 울려퍼진다. 물론 맞는 주장도 있고 틀린 주장도 있겠지만, 그것이 마음을 두드리는 끊임없는 노크 소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들리는 소리를 반복하는 앵무새가 아니다. 모든 주장과 사실들을 숙고하는 인간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고요 속에서 내 무의식이 잠잠해지고, 내가 보고 들었던 것들을 다시 차분히 곱씹어 보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타인의 표현으로부터 차단될 때, 우리 마음이 그 말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에는 게걸스럽게 달라붙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는 전투적으로 칼날을 세우는 근접 방어 체계도 수그러든다. 방어 체계가 수그러들때, 사실 나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기뻐하는지,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 어떤 것이 나를 기쁘거나 아프게 하는지 드러난다. 마음은 잘 보이지 않는 암실과 같고, 타인의 말은 손전등의 빛과 같아서, 그것에 반응하는 나의 마음을 부분적으로 밝히고 때로는 그 밝음이 찌르는 듯이 눈부시기도 하다. 그러나 내 내면의 방 전체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충분히 긴 어둠이다.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윤곽을 알아낼 수 있다. 세상과의 상호작용이 드러낸 밝은 부분이, 아무리 자극적이었을지라도 내 방의 한 부분에 불과했음을 알고 거리를 둘 수 있다. 때때로 부서진 것 같았지만 상처받았음에도 여전히 통째로 존재하는 이 마음의 갤러리를 둘러보는 시간, 내가 한 점으로 압축된 일부가 아니라 여러가지 면면을 가지고 있는 전인격이라는 사실을 음미하고 기뻐하고 지켜보는 성찰의 시간은, 우리를 치유하고 더 나아갈 용기를 준다. 더 나아지기 위한 반성의 힘과 더 나아가기 위한 희망의 힘은 바로 내 마음의 암실에서, 어둠에 점점 적응하며 드러나는, 암흑 속에서 말갛게 빛나는 윤곽으로부터 직관되는 것이다.


2-3.

거절 연습, 혼자 있기 연습, 권총처럼 작고도 확실하게 몸에 꼭 붙어 있는 능력의 장전, 자신이 심지어 홀로 내던져지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본인 생산력을 증명하는 포트폴리오, 방공호처럼 흔들려도 부서시지 않는 - 아무리 침해당해도 거짓말처럼 존재하는 내 전인격의 존재, 그것을 고요 속에서 지켜보는 연습, 글과 일기를 쓰는 습관…. 그 모든 것은 내가 죽지 않음을, 내가 의존하고 크게 생각하던 것에 의탁하지 않아도 죽지 않음을, 내가 홀로서도 죽지 않음을 알려주는 일이다.



3. 아침형 인간들은 밤에 잠이 온다.


밤에 잠이 온다는 것은 축복이다. 다들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잠은 잡으려 할수록 달아난다. 의식할수록 달아난다. 늦게 일어나면 매일의 할 일을 그만큼 밀린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그런 만큼 중요한 일들이 뒤로 밀리면서 12시, 1시, 2시까지도 일을 소화하면서 깨어 있게 된다. 그 때까지 신경써서 일을 하면 당연히 정신은 각성되고, 특히 전자기기의 청색광 조명은 수면의 질을 크게 저하한다. 


많은 연구에서 이러한 유형의 노출은 수면 시작에 중요한 멜라토닌 생성을 현저히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잠이 들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길게 만들고 수면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 출처


할 일을 다 끝냈다고 해서, 바로 노트북을 덮고 휴대폰 화면을 끄고 씻고 누워서 자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도 해 봤는데, 안 된다. 우리는 모든 할일들을 To-Do list 대기열에 올려놓고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Sims4 게임의 '심'들이 아니다. '심'들은 집에 친구 심을 초대해서 오디오 틀어놓고 춤추기를 하다가도 수면 바가 다 닳으면 집 마당에서라도 잘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종의 플로우와 리듬을 타는 인간이며, 다음 일정은 최소한 6시간 전부터 예비되기 시작한다. 할 일을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쯤에는 당일분을 매듭지어 놓는다면, 물론 주간 계획과 월간 계획 그리고 장기 계획이 여전히 있겠으나, 적어도 저녁에 필수업무에 매달릴 일은 줄어든다. 원리는 간단하다. 저녁에 할 일을 아침에 해 두면 저녁에는 잠 올 일밖에 없는 것이다. 간단하고, 이것은 정말로 탁상공론이 아니다. 논리적으로도 정합하지만 실제로 해 보면 진짜 이게 된다. 이게 되네?



4. 아침형 인간들은 하루를 관리하고 집행하는 능력이 굳건하다.


앞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서, '다음 일정은 최소한 6시간 전부터 예비되기 시작한다'는 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좀 다르게 말하면, 잠 잘 시간은 저녁식사에, 저녁식사 시간은 점심식사에, 점심식사 시간은 아침에 결정나므로, 이미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취침 시간이 결정난다.


이것은 마치 돌고래 떼가 점프하는 것과 같다. 첫 번째 돌고래가 수면 위에 떠 있을 때, 두 번째 돌고래는 수심 아래에서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고, 세 번째 돌고래는 잠수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수면 위에 떠올랐다고 사라진다고 해서 돌고래가 마치 컴퓨터 그래픽처럼 존재하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돌고래의 멋진 점프는 헤엄이라는 연속된 행동상의 한 상태일 뿐. 우리가 행하는 각각의 행동도 이와 똑같다. 밥먹고 일하고 씻고 하는 모든 일들은 저마다의 완결된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그 사이클을 충분히 예열하지 않고 급발진시키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 행동이란 드러나고 드러나지 않는, 또는, 행동되고 행동되지 않는 만큼의 가시성 차이가 있을 뿐, 행동 파트와 예비 파트라는 두 단계를 갖는 하나의 이어진 순환주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이클을 인정하고 예열기간을 존중해야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저녁식사 시간은 점심식사 시간에 결정된다. 뭐를 좀 한다고 점심을 15시에 먹었는데 저녁을 18시에 3시간 만에 먹을 수는 없다. 그렇게 되어서 저녁을 20시에 먹었다면, 22시에 칼같이 자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에 저녁식사를 21시에 했다면, 그것은 잘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24시부터 허락된다는 뜻과 같다. 저녁식사가 22시에 이루어졌다? 01시나 02시가 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다. 그러면 내일 출근해야 할 경우 잠이 짧아져서 수면 부족에 의한 심신 손상을 감수해야 하고, 출근하지 않더라도 10시는 되어야 일어나기 때문에 또 하루 일정이 줄줄이 밀리는 것이다. 


일찍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오전에 일을 다 해치운다고 하더라도, 모든 자기통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은 우리에게 그날의 할일과 완벽한 완성에 집착할 것인지 도전적인 질문을 건넨다. 글을 거의 다 썼는데, 이 영감이 남아 있을 때 좀 더 쓰고 잘까? 이 페이지까지만 하고 잘까? 썸타는 사람과 카톡이 너무 재밌는데, 이 얘기만 마저하고 잘까? 넷플릭스 한 화만 더 보고 잘까?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모든 것들을 진정 내 것으로 갖고 사랑하는 사람과 진정으로 건강한 삶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복을 움켜쥐기 위해서는, 오늘 목전에 닥친 이 일을 마저 완벽하게 끝내자는 집착을 놓아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내일도 기회가 있다.


놓아버리는 연습이야말로 스스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능력의 완성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삶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무시무시한 흐트러짐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미련이라는 손잡이를 놓아버려야 한다. 놓아버리는 것이야말로 움켜쥐는 것이다. 자기관리의 모든 근원이 시간관리에 있음을 안다면, 역으로 말해, 시간만 잘 관리한다면 다른 자기관리가 자동으로 된다는 것을 명심하면, 핵심을 보존하기 위하여 쭉정이를 털어버릴 수 있게 된다. 그 날의 일을 완벽하게 끝내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두세 시간 더 이야기 나누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날의 시간을 엄수함으로써 인생 전체에 가장 큰 이익을 주도록 스스로 설계한 스케줄과 루틴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좋은 일이다.


다음날 일정 때문에 지금 자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큼 믿음을 주는 말은 없다.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다. 시간을 지키기 위하여 일을 제때 착수하고 제때 놓아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다루는 자이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자기 자신을 다루는 자이다. 이것이야말로 존경의 원천이다. 대상이 변경될 수 있는 애착을 통해 사랑받으려 하기보다는, 대상이 교체될 수 없는 존경을 통해 사랑받으라. 



5. 차고 넘치는 통계적 근거들


시도해보라. 말로만 듣던 아침형 인간을 시도해보라. 손해볼 것이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나긴, 요즘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하면 백 년도 훨씬 넘는 시간동안 스스로를 대상으로 종단 연구를 한다. 다른 수백 년간의 연구들과 메타연구들로부터 100% 확실히 이득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몇 가지의 변수를 추가하는 것은, 매일매일의 그래프를 금새 바꿀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본 시간 통제의 이득들은 막강하다; 규칙적인 생활(출처), 안정된 일주기 리듬(출처), 자기통제(출처 1, 출처 2), 알아차림과 놓아버림(출처)…. 한 번 실험해보라. 실험해보고, 좋은 결과가 있고 마음이 동한다면 댓글로도 남겨 주거나 사람들에게 많이 권하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은 마음 속에 선(善)의 씨앗을 가지고 있어서, 단지 건강하기만 하더라도 그 씨앗으로 정글을 만들 수 있다. 건강의 씨앗은 선의 씨앗이니, 건강을 전파하는 것이 세상을 더 낫게 하리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hoto by Joshua Earle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근거중심 자신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