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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an 04. 2021

뼛가루 알레르기

나루시선, 29

뼛가루 알레르기


                                        서나루




성당에도 더 이상 나갈 수 없었습니다. 부검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삶, 상상할 수 없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낍니다. 그러다보니 그저 착하게 잘 살면 죽은 뒤 좋은 세상 간다는 식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지지요.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가급적 냉정한 시선으로 사체를 만나려 하는데, 아직도 감정을 처리하기 쉽지 않아요. 특히 제 딸 또래의 아이를 만나면 더욱 힘들죠. 이 일을 하는 한 어쩔 수 없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아닌가 싶습니다.

- 한길로 법의관 *



미세먼지가 폐에 쌓인다. 하얀 분이다. 뼛가루

군대 갔다 오면 세상일이 쉬워 보인다는 언니 말처럼

새로 산 냄비를 닦으려고 베이킹소다를 물에 풀면 얼마나 잘 녹는가?

고무장갑을 끼고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냄비닦이를 하고 있으면

인생이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사람의 뼛가루를 녹이는 용매는 없다.


앞 유리 나방처럼 들러붙은 가루자국을 퇴근길

와이퍼로 아무리 긁어 봤자 벗겨지지 않는다. 눈을 비비면 

미세한 상처가 눈을 더 나빠지게 하듯 들러붙은 진실에서

개 처럼 끌려다니는 진실은 석면처럼 용해되지 않는다


아무렴 진실이 석면보다야 단단하지 않겠는가?

사건은 뒤늦기도 전에 끝났고

영정은 언제나 뒤돌아 서있다. 항아리는 언제나 비어 있다


끔찍한 기사를 허겁지겁 찾아읽고 쓴다

겨우 남은 날의 졸부들, 추모란 

살아남은 사람들의 과시 행위가 아닌가









* 신동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팀과의 4박5일>, 황일도, 2002

Photo by Isaac Quesad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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