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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Mar 28. 2021

홀로됨에 대한
불안과 강박을 넘어서 - 1편

1편 - 인간관계에 대한 우리 마음의 구조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글은 A4용지 32페이지 분량입니다.
저는 글이 길어져도 가급적이면 게시물을 나누지 않는데, 왜냐하면 전달하는 정보가 촘촘하지 않은 게시물들이 공백으로 뻥튀기 된 채 온라인을 가득 메우는 경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쓴 글은 분량이 너무 길기 때문에 나눠서 올리지 않으면 오히려 읽기 불편하시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각 단락의 주제에 따라 적절히 나누어서 업로드 하겠습니다.
다소 긴 글입니다만 그만큼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을 수 있으니 즐겁게 읽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들어가며


오늘은 홀로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봅시다. 홀로됨은 외로움과는 조금 다릅니다. 외로운 사람도 홀로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외로움이라고 하지 않고 홀로됨이라고 한 까닭은, 외로움은 그냥 혼자만 있어도 외로운 것이지만 홀로됨은 지금 홀로가 아닌 사람에게 찾아올 수 있는 시련, 혹은 계속 홀로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여럿임 에서 홀로됨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럿인 사람들은 홀로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것은 의미의 지평에서는 상실이고, 감각의 지평에서는 박탈이기 때문입니다. 



자극물로서의 인간


행동심리학의 언어를 빌리자면, 인간에게는 다른 인간 역시 일종의 자극물(Reinforcer/Punisher, 무언가에 의하여 행동이 줄어들거나 증가하기 때문입니다)로 작용합니다. 아주 소수의 선천적으로 인간에 무심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리고 인간보다 돈을 더 좋아하는 인격이 손상된 환자들을 제외하면, 인간만큼 다른 인간에게 강력하고 절대적인 자극물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대하여 보이는 반응은, 쥐가 코카인 섞인 설탕물에 반응하는 것과 거의 비슷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통속적인 사례를 들어 볼까요? 전세계의 데이트 앱이 돈을 긁어 모으는 수익모델을 들여다봅시다. Tinder나 Amanda 앱을 켜서 끈질기게 스와이프하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어둠의 트위터나 어둠의 에브리타임 혹은 아라곤 왕국에서요(하하, 귀여운 인간들이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지 다들켰죠?). 좋은 사람은 오직 소수입니다 그러나 있기는 있지요, 랜덤하게. 단 한번이라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면, 대부분은 내 스타일 아니라도 그런 사람 또 만나기 위해 계속 스와이프 합니다. 혹은 계속해서 소개팅에 나가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해보시기 바랍니다. 괜찮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다만 랜덤하죠.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이 별로라고 해서 앞으로 소개팅 안 나가시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것을 심리학자들은 '변동-비율-강화-계획(variable ratio reinforcement schedule)'라고 부릅니다. 랜덤한 시행횟수 이후에 보상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설계미스들

 

변동비율강화계획은 동물에게서 '끈질기고 미칠듯한' 반응을 만들어냅니다. 언제 나올지 모르고, 가끔은 연속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큰 보상을 위해 강하고, 빠르고, 끈질긴 행동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캡틴 아메리카처럼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이것은 무서운 기술입니다. 계몽시대의 흑마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도박이나 게임의 랜덤상자에 그대로 적용되는 중독성의 원리이며, 맨날 개같이 굴다가 가끔 잘해주는 폭력적인 애인에게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한 번 잘해주는 게 그렇게 달콤하거든요. 


왜 정상적인 행동이 그토록 달콤하게 느껴질까요? 제가 나중에 노동시장 이야기를 할 때도 말씀드리겠지만 모든 동물은 가치를 다른 것에 대한 비교우위로 판단합니다. 쓰레기더미 속에서는 정크푸드도 소중합니다. 그 작은 정크푸드를 얻기 위해 사귀는 내내 개고생을 했다면 그 가치는 더 커집니다. 자, 여기에서 발행하는 심리적 착시들이 벌써 몇 개입니까? 매몰비용효과, 몰입상승효과, 자기정당화효과, 게인-로스 효과, 기저 효과, 단순노출 효과, 대비 효과…. 작은 보상을 얻기까지 자신이 투여한 자원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어 합리적인 교환이 불가능해지니, 이런 보상적 착각들이 횡행합니다. 이처럼 변동비율강화는 보상에 비해 터무니없는 투자비용을 강요하고, 보상에 대한 객관적 판단에 지장을 주며, 의존성과 불안을 만들어 내고 최종적으로 인생을 고갈시킵니다. 이것처럼 동물의 계획 능력을 완벽히 교란시키는 흑마법은 없습니다. 진심으로 경고하겠는데 랜덤한 것들에는 근처에도 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측불가능한 것은 상대 프로토스의 스타팅 포인트가 몇 시 방향인지 정도로 충분합니다. 인생에는 예측불가능한 것이 적을수록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더 들어봅시다. 소거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동물에게 무언가를 수여함으로써 행동을 늘이거나 줄이는 것이 정적 강화/정적 처벌이고, 무언가를 박탈함으로써 행동을 늘이거나 줄이는 것이 부적 강화/부적 처벌이라고 할 때, 이것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5번째 학습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소거'입니다. 이것은 간단합니다. 아무것도 안 해줌으로써 빈도를 줄이는 것입니다. 연락을 나누던 누군가의 연락을 언젠가부터 안 받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계속 예전처럼 연락을 하다가, 답장 빈도가 점점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메시지 송신을 점점 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외 상황이 발생합니다. 


자니…?

우리가 술(처)먹고 0230에 전 애인에게 "자니…?" "자나부네…" "잘자…." 3콤보를 시전해버리는 참사가 바로 그 예외입니다. 동물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학습된 행동을 계속하다가 모든 것을 똑같이 수행하는데도 갑자기 원하는 것이 산출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얻을 것 하나 없는 무익한 행동을 점차 줄여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소거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다들 애인이랑 헤어져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 소거라는 것이 얌전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들은 자신의 행동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것을 보면서, 혹은, 내가 보내는 신호에 상대가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점점 실망하고 지쳐 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폭발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술먹고 전애인에게 '자니?' 한발 빵!!! 


그것이 소거 발작이죠. 다른 용어로는 '행동 폭발', '소거 폭발', '소거 격발'이라고도 합니다. 영어로는 Extinction Burst입니다. Burst라고요? 무슨 『던전앤파이터』 스킬 이름이 아닙니다. 아니 도대체 심리학 용어에 이렇게 과격한 게 있다고? 있습니다. 다들 겪어 보셔서 아실 것 아닙니까. 저희 교과서에는 소거발작에 관련된 반응의 양상 중에 '감정적인 반응'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감정적인 반응… 그렇게 점잖고 우회적인 표현이 또 있겠습니까. 여러분께서는 휴-먼이 소거발작을 일으키는 꼴을 볼 일이 없으시기를 빕니다. 제가 한국어 맞춤법에도 없는 느낌표 3개를 사용한 것은 이 글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술먹고 휴대폰 잡고 인스타 켜서 소거발작 한발 빵!!!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모든 인간에 대하여 인간이라는 대상이다


모쪼록 이와 같이, 스키너 상자 안에서 그리고 행동심리학의 실험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인간 관계 - 특히 애착과 유대 그리고 성행동이 얽혀 있는 이성 · 동성 · 기타 예외적인 성별들 간의 애정 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두 가지 통찰을 제공합니다. 첫째로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대단히 애틋하고 간절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로는, 인간은 다른 인간을, 여타의 떡볶이나 세탁기나 스승님과 같은 하나의 대상으로 파악한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저는 언제나 자주 주장하는 바이지만, "'성적 대상화' 가 나쁘다" 라는 말은 정말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낭만주의적인 낭설에 불과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모든 인간은 모든 세계를 대상으로 파악합니다. 대상화가 아니면 인간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두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와 합일에 이르는 플라토닉 러-브 라도 생각하셨나요?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프로토스 집정관도 그렇게는 못합니다. 두 명의 프로토스 정신이 합체한 집정관은 자신을 '우리'라고 말합니다. 영혼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현실에서 혹은 머릿속에서 영혼의 표상을 떠올려 '보았다면', 그조차도 영혼을 대상화하여 파악한 것입니다. 성을 포함한 모든 속성을 하나의 대상(object)으로서 파악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인지입니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성적 '물건화' 입니다. 인간 인지의 기초적 원리인 대상화가 문제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건 취급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을 사고 팔고 고깃덩어리 보듯이 하는 짓거리들은 대상화가 아니라 물건화입니다. 물건화에 대한 저항을 제외하면,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나 튀어나올 것 같은 영혼의 일치성 같은 낭만주의의 산물을 찾지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이 아니라 뇌입니다. 우리 인간은 개와 고양이를 보듯이 다른 인간을 봅니다. 개와 고양이가 털이 부드럽고 살갑지 않다면 반려동물로 삼을까요? 반려동물로 박쥐를 키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박쥐는 인간과 너무 달라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돕는 봉사자들처럼, 때론 그 이유가 자기 자신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하나의 사랑 대상에는 하나의 사랑할 이유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2020년대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는 의미로 '대상화'를 사용한다면, 역설적이게도 가진 것 없는 타인에게 헌신하는 이유를 자기 안의 열정에서 찾는 자원봉사자야말로 타인을 제맘대로 가치부여하는 대상화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치면, 차라리 돈이 있는 사람을 돈이 있다는 이유로 존중하는 영혼 없는 인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존중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대상을 사랑할 이유가 내가 아니라 대상 자체에게 있으니까요. 낭만주의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대상을 사랑할 이유는 대상 안에 있기도 하고 내 안에 있기도 합니다.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여자건 남자건 상대방 보고 좀 꼴려도 괜찮습니다. 그게 인간이고 그게 당신 자신입니다. 떡볶이 보고 배 안 고프십니까? 관건은 대상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면 됩니다. 먹을 거로 장난치지도 말고요. 아, 채식을 하신다고요? 미안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게 비건 떡볶이라고 합시다….



인간관계의 그림자 : 불안과 강박


아무쪼록 그렇습니다. 인간은 타인에게 하나의 대상이고, 그것도 열렬하게 추구되는 대상입니다. 사랑과 애착과 유대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고 그것이 샘솟는 원천이자 도착하는 바다입니다. 그래서 우리 행동의 거의 모든 부분은 다른 인간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중력이 당연해도 많은 과학자가 오늘도 중력파를 연구하고 있는 것처럼, 심리학 종사자들에게도 다른 인간 존재와 관련되는 인간의 행동이라는 주제는 멈출 수 없는 관심사입니다. 평범한 중력 안에 우주의 방정식이 있듯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인간들 간의 역동에도 인간 마음의 단서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려고 하였던 불안과 강박도 이와 같습니다.


인간관계와 불안 · 강박이 관련없었던 시대는 아마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혀와 설탕 간의 관계가 관련없었던 시대가 없었듯이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에 대하여 굉장히 특징적인 정서적 반응을 나타냅니다. 불안, 강박, 초조는 사실 병도 아닙니다. 마치 아무도 죽음 그 자체를 병으로 보지는 않듯이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죽음과 대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평균 수준의 분노와 의심도 병은 아니지만 분명 그것과의 싸움은 걸어 볼 가치가 있고 이겨낼 가치가 있는 대결입니다. 그리고 거시적으로 그 '평균 수준' 이라는 것을 점차 낮출 필요가 있는 관건입니다. 우리가 평균 수명을 점점 높이려고 노력하듯이요.


그렇다면 강박에 대한 이야기로 먼저 운을 떼 봅시다. 사실 제가 불안과 강박이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강박적인 행동은 사실 불안과 꼭 붙어 있는 한 쌍입니다. 불안이 먼저 있고, 그것을 지우고 잊기 위해서 강박적인 행동을 되풀이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나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 개입할 때, 개입이 가능한 영역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불안이 아니고 행동으로 드러나는 강박이기 때문에, 오늘은 강박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에 대한 세 가지 정도의 강박적인 반응을 꼽아 보고 싶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홀로됨에 대한 불안과 강박을 넘어서 - 2편 (brunch.co.kr)

Photo by Adrian Swanca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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