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 Mar 28. 2021

홀로됨에 대한
불안과 강박을 넘어서 - 4편

4편 -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안을 실현시켜버리는 사람들

이 글은 3편에서 이어지는 4편입니다.
홀로됨에 대한 불안과 강박을 넘어서 - 3편 (brunch.co.kr)




철수성 강박 :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조차 패배를 선언하다 


제가 세 번째로 다루고자 하는 강박의 유형은, '철수성 강박'입니다. 철수성 강박을 가진 사람의 테마는 '체념'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절망적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이 사람은 결국엔 나를 떠날 거고 영원한 인연은 아무것도 없어", "어차피 인생 혼자 사는 거야", "나를 이해해 주는 진정한 친구는 절대 만날 수 없어", "나는 혼자 살다 죽을 거야. 인생은 혼자니까", "보증 서 줄 것도 아닌데 가족같은 친구가 어딨어"…. 사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친구들을 제일 화딱지 나게 만듭니다. '아니 인간관계가 그렇게 덧없고 허무하다고 생각할 거면 지금 나는 왜 만나고 있는 거야?' 듣고 있으면 정말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죠. 규정성 강박이 모든 것을 주지화(intellectualization)시켜야 안심하는 억지 다큐멘터리이고, 접근성 강박이 걱정거리의 정반대로 행동함으로써 불안 속에 살아가는 억지 희극이라면, 철수성 강박은 걱정거리가 나에게 줄 충격까지 두려워한 나머지 걱정이 실현되기도 전에 그 실망과 아픔을 온 몸에 치덕치덕 바름으로써 온 인생을 우울에 빠트리는 억지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울 성향, 우울증, 무망감, 이상한 데서 잘못 배워 온 허무주의 인생관과 세계관, 그리고 심각한 상실의 기억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물론 이러한 개인적인 일화들이 영향을 미쳤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철수성 강박을 단지 우울한 마음의 한 방식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관되게 우울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도, 오직 절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버블티를 좋아하시나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단지 한 종류의 타피오카 펄을 끓인 커다란 솥에서 국자로 똑같은 펄만을 퍼내는 것이 아닙니다. 홍차 버블티를 끓이면 홍차 맛만 나오고, 우울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우울한 생각만 나오고 하는 것일까요? 저는 아마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단지 우울한 생각, 단순히 기쁜 생각은 없기 때문입니다. 직관과 감정에 대한 통속적인 믿음과 다르게, 감정을 비롯한 모든 개별 생각들에는 분명한 논리와 근거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감정은 아예 판단력의 일부입니다. 이것은 조금 과학철학적인 이야기인데요, '논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그리고 '판단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습니다. 저의 제안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행동의 기준에서, '감정 = 느낌 = 논리 = 사고 성립한다.


우리가 흔히 '파충류 뇌'와 '포유류 뇌'라고 약간은 멸시하면서 부르는 뇌간과 변연계는 주로 우리에게 그다지 달갑잖은 감정적인 격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주로 분노, 짜증, 혐오, 멸시, 식욕, 공포, 갈망, 폭발적인 성욕 같은 것이지요. 이런 자극이 없을수록 인생이 편하겠지요. 전쟁도 없었을 거고요. 그러나 이것이 왜 이렇게 진화했을지를 되짚어 볼 때, 아무리 진화심리학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뇌간과 변연계의 저 추동 기능들은 상동기관을 지닌 동시대의 생물들에서조차 너무나 명백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도대체 왜 여기에 형성되었을지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요. 이들은 유기체가 살아남기 위해 가장 유용한 방향으로 추동을 걸어 주는 일종의 생체 아두이노(코딩교육용 미니 컴퓨터)였던 것입니다. 이 기관이 원시적인 방식으로 매우 정교한 '논리'를 구사하여 유기체를 행동하게 만드는 예를 들어 봅시다. 이 기능은 여전히 인간에게도 남아 있는 것인데, LHPA축(limbic-hypothalamic-pituitary-adrenal axis, LHPA axis)이라고 불리는 매커니즘입니다. 변연계 → 시상하부 → 뇌하수체 → 부신을 따라서 명령이 전달되는 신경전달 구조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변연계의 편도체가 감각정보를 중심핵으로 전달하면, 중심핵의 입력을 받은 시상하부는 CRH(코티코트로핀 방출 호르몬)를 방출하고, CRH를 받은 뇌하수체는 ACTH(부신피질 자극 호르몬)를 방출, ACTH를 받은 부신피질은 코르티솔을 분비하게 됩니다. 그 코르티솔이 바로 우리가 분노, 긴장, 두려움, 불안을 느낄 때 방출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이지요.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몸은 맥박 · 호흡 · 혈압 · 감각의 예민함 · 근육 긴장이 증가하고, 염증반응과 내장으로 가는 혈류는 줄어들어 전투 준비가 완료됩니다. 


분노, 긴장, 두려움, 불안. 이 네 가지 단어는 분명 감정입니다. 모두가 통속적으로 아주 동물적이고 본능적이라고 치부되는 것이 분명하지요? 그러나 보십시오. 우리의 몸이 얼마나 일관적인 가준에 따라서, 심지어 다 밝혀진 매커니즘을 따라 정확한 분노 · 긴장 · 두려움 · 불안을 일으키는지 안다면, 그리고 특정한 자극에 따라 이 네 가지 반응을 즉시 이끌어내는 매커니즘이 수천만년간 통계적인 선택을 받아왔는지 안다면,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생체 알고리즘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우리의 '논리적인' 판단들이야말로 비일관적이고, 편견과 무지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흔합니다. 



서로 다른 기전들도 결국은 행동으로 수렴된다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지성화(intellectualization)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지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공격적인 정치 논리들이 논리와 합리라는 껍데기로 자신을 포장하는지 보십시오. 2010년대의 중반,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재조명되기 시작했을 때 저는 놀라운 대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여성 학우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의 남자친구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페미니즘을 하고 싶으면, 그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논문을 정리해 와서 논리적으로 주장해"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논리'라는 개념이 얼마나 오남용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그 순간 그 남자친구는 진정으로 자신에게 치고 들어오는 불쾌함과 불편함을 논리적으로 풀어서 다루기보다는, 무비판적으로 숭배받는 논리를 상징하는 관습적 껍데기만을 요구함으로써 오히려 비논리와 저항의 욕구를 드러내보인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페미니즘이야말로 언제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숨겨진 관계를 밝히고 억제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리에 대한 반성 없는 숭배의 역사가 있는 근대주의를 비판한답시고, 실용주의적 근본도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똑같이 숭배하여서는 일기장에나 쓸 만한 주관적 감상평들만 남겨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요는, 인간의 몸 안에서 나타나는, 자극으로부터 반응을 창출하는 연쇄 반응의 사슬들을 논리-비논리 혹은 이성-감정이라고 나누는 것이 실용적으로도 그리고 과학철학적으로도 전혀 타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감정이냐 이성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전전두엽의 고등 인지 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든 LHPA Axis와 같은 내분비계의 연쇄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든 간에, 중요한 것은 각각의 반응의 사슬이 건전하고도 일관된 근거를 갖추고 또한 그 효과가 적실하느냐는 것입니다. 한 유기체의 삶에 있어서 총체적인 복지의 증진에 대하여 말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이 상황에서 빨리 도망쳐야겠다고 '마음 먹고'(인지적 수준), '행동에 옮기는'(행동적 수준) 것이, LHPA Axis의 흥분(호르몬 수준) 때문이든 오랫동안의 인생 경험 때문이든(인지적 수준) 동일한 인지와 행동의 집행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동등한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등하게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홀로됨에 대한 불안과 강박을 넘어서 - 5편 (brunch.co.kr)

Photo by William Daigneault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홀로됨에 대한 불안과 강박을 넘어서 - 3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