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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민기 minki Oct 19. 2024

'굴현고개' 넘으며...

지상의 방 힌 칸...

                                                         *굴현고개: -창원 소답동에서 북면 넘어가는 고갯길



벨튀 사건 이후, 나는 쉽게 어두워지는 골목끝을 닮아갔다.

작은 일에 상처 입고, 의미 없는 말 한 마디에 끙끙거렸다.

담요 아래 묻어둔 밥그릇처럼, 방구석에 엎디어 있는 것이 편안하다고 여기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학교를 안 가는 날들이 생겼고,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라

담임도 관심 밖에 두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난한 살림이었음에도 늘 학년의 선두에 있었고, 조례대 위로 오르내리며 전교생의 부러움을 받던 부산 시절은 아득해져 버린 기억이었다.

그런 날들을 생각하면, 마산에서의 하루하루를 견디는 일은 더 힘들기만 했다.

그때,

반찬을 챙겨 누이들의 자취방을 찾아온 엄마는 기억 속에 딱 한 번이다.

내 기억이 여물지 못한 탓인지, 정말 엄마가 찾아 온 것이 딱 한 번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한 번, 그 애가 탔던 한 번의 기억은 지금도 고스란히 재되리만치 선명하게 남았다.

그날 나는 학교를 마치고 골목길에 들어서다가 꽃무늬 펄럭치마를 입은 엄마를 보고 ‘와앙~’하고 울어 버렸다. 엄마의 블라우스 아랫단이 내 눈물로 축축해질 때까지 엄마는 그렇게 한참을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게 나를 달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어쩌면 엄마의 눈물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엄마의 배꼽쯤에 닿았던 내 머리 위로 두어 방울 뜨거운 눈물의 기억이 선연한 까닭이다.     

시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거나, 냉랭한 시어머니의 지청구를 들으며 저녁 밥상을 차리거나,

소여물을 삶고 침침한 백열등 아래 구멍 난 양말이라도 꿰맬 양이면,

엄마의 외출 아닌 외출은 가히 일탈에 버금갈 만한 것이었으리라.

그런 엄마의 치맛단 끝에서,

“엄마 내가 라면 끓여 줄테니 하룻밤 자고 가~”라고 매달렸던 아홉 살의 나를 기억한다.

풍을 앓던 할아버지와 늘 쌀쌀맞던 할머니, 권위적인 성격에 고된 시골의 삶에 지쳐버린 아버지...

그들 사이에서 엄마의 하루하루가 어떠했을지는 나중에서야 헤아려 보게 되었지만,

그때 그걸 헤아리기엔 난 너무 어렸다.

기껏해야 ‘라면 하나’로라도 엄마의 치맛단을 붙들어야 한다는 절실함만이 가득했던 아홉 살이었다.     

엄마가 골목끝을 빠져 나가던 순간에 내가 울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환한 대낮이었음에도 엄마가 사라진 그 골목 입구가 골목안만큼이나 어두운 잔영으로 남았을 뿐이다.

내 나이 서른, 혹은 서른 하나 즈음에 문득 엄마와 그날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엄마는 그날의 기억에 대해 세세히 전해주지 않았지만, 그게 기억에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난 알아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내가 회상하는 몇몇의 기억들과, 이후의 추리들을 조목조목 바로 잡아주고 수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엄마의 음성으로 나직이 혼잣말처럼 되뇌었던 말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굴현고개를 구불구불 흙먼지 날리는 버스를 타고 오르는데, 저 고개 아래 그 많고 많은 집들 중에 어찌 식구들 다같이 모여 살 집 한 채가 없었을꼬...’


어린 누이들에게 더 어린 외아들을 맡겨 둔 채, 갑작스런 시부모 봉양과 고된 노동의 일상으로 맘 졸였을 당시 엄마의 나날살이는 어떠했을지 감히 가늠해 볼 엄두를 낼 수가 없다.

가난했을지언정 그래도 부산이라는 도시의 살림이 하루 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진 날들...그 속에서 엄마는 하루하루 그렇게 시들어 갈 수밖에...               




<지상의 방 한칸>

                         -김사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 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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