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談

by 강물처럼


올 11월은 유난히 가라앉았다. 담배를 피우더라도 한 갑이면 한 달을 다 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왜 이러고 서 있을까 생각했다. 감정 때문이다. 언제나 동일한 색채로 떠오르는 물 아래에 머무는 낯설고 익숙한 것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떠오르고 가라앉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해석하기 어려운 그것은 담배 연기 속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담배를 피우면서 마주하는 그것을 나는 핍진이란 말로 바꿔 써본다. 솔직히 핍진이란 말도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 직한 것을 택하는 편이 낫다.

현실이라고 하면 또 거창해져서 번거로운데, 내 일상에서 내가 뱉어내는 숨은 거의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의 확인과 재확인의 연속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를 지나고 한 달, 일 년을 살아도 좀처럼 만나지지 않는 환상의 빛이다. 그럴수록 내 변명은 무참하다. 담배를 피우면 '불가능하지만 있음 직한' 것들을 떠올린다. 희망을 갖는다는 뜻이 아니다. 희망이 멀찍이서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저것이 그거였다는 실루엣을 어슴푸레 감각하는 것이다. 그 순간 내 감정은 나를 떠나 나를 주시하며 나는 3인칭이 되어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결코 나는 담배 중독은 아니다. 담배가 맞는 체질도 아니고 여럿이 어울려 담배 피우는 것도 싫어한다. 나는 혼자서 그리고 가능한 먼 데를 찾아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숨을 쉬고 돌아온다.

그러니까 올 11월에는 그 바람이 더 불었던 것이다. 계획이 없었다. 쓰고 싶은 마음이야 늘 제멋대로 자라나는 잡초 같은 것이지만 마음이 그렇다고 글이 써지는 것인가. 글은 사뭇 냉정한 구석을 가졌다. 그것은 마치 여러 개의 팔을 흔드는 힌두의 신 같다. 나는 그 팔 하나를 붙잡고 감격해하는 인도의 깊은 촌락에 사는 개다. 멍멍 꼬리 치는 개였으면 한다. 그럴 것 없이 대놓고 말해버리는 것은 어떨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11월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고. 가만히 담배를 피우는 것도 힘들더라고.

따로 준비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근 7년 동안 여기저기, 이것저것 쓴 것들이 차고 넘쳤다. 문제는 쓸 만한 것을 찾으러 들면 죄다 어정쩡해서 누구 눈에 띌까 손으로라도 가리게 된다는 것이다. 상념 같은 자식들이다.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살았던 아이들을 하나씩 찾아봤다. 너도 세상에 나가보고 싶으냐고 물어도 봤다. 정작 써보고 싶은 소설은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실컷 문장을 써댔다.

十年摩一儉 霜刃未曾試

십 년 간 칼을 갈았으나 서리 같은 칼날을 아직 시험해 보지 못했다.

그 유명한 '퇴고'의 고사로 유명한 중국 당 시대 시인 가도(賈島)가 쓴 '검객'에 나오는 일 절을 내게 빗댈 수 있을까. 터무니없다. 나는 칼을 갖지 못했다. 내가 고른 글은 '길'이다. 길은 너무 넓고 길고 멀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항상 동경만 한다. 가본 적 없는 길을 그리워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한숨으로 탑을 쌓아도 좋을 것이다. 단단하지 못한 사람은 겁을 내야 할 때 겁을 몰라 난처해지고 겁내지 말아야 할 때 식겁하여 일을 도모하지 못한다. 나는 글을 쓰기에는 거짓되고 삶을 살기에는 무르다. 차라리 내 삶의 칼이 되기로 한다. 글이 쓰는 칼은 어떤 춤을 출까. 못내 아쉽다. 진작 그럴 줄 알았어야 했다.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속이 좋지 않으니까 안 된다던 아내가 - 아, 금요일이어서 그랬구나! - 남원 막걸리라고 쓰여있는 것을 한 병 들고 왔다. 어쩐 일이냐고 선수를 쳤다. 시도 썼으니까, 대답에 인정이 묻어났다. 알아주지 않는 것을 알아주는 이는 고마운 존재다. 거기에 막걸리면 그만이다.

몸이 좋지 않아서 좋은 것은 한 잔에도 사람이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가벼운 것이 좋다. 물에 뜨는 돌이었으면 한다. - 아, 이번에는 부석사에라도 가봐야 할까? -

그런 말이 나올 때 나는 물결을 탄다. 생각했던 말이 아닌 다른 말이 나올 때, 그러니까 그러려고 그러지 않았는데 그 말이 나올 때 나도 거기에 집중하고 듣는다.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사는 것이 신기해, 나는 문학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래도 등대 같아서 좋아. 바다를 비추는 등대가 누구 것은 아니니까, 그 불빛을 보고 달려가는 사람이 등대 임자잖아. 글을 읽고 쓰려는 마음 한 종지만 있어도 삶이 살아지는 것 같아, 그래서 고마운 것이 있어."

나이 든 아내는 옆에서 끄덕여 준다. 부부로 살아도 다 알지 못하는 속이란 것이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는 일, 그 속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끄덕이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나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또 고마운 생각이 든다.

글이란 것이 나에게 그렇지 않았던가,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구박하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고 그저 내 안에 자리를 지켜줬던, 글이란 것.

능력이 없어도 아내를 사랑할 줄 아는 것처럼 11월에는 글을 써 보냈다. 오래된 안부를 묻듯이 그렇게 부쳤다. 잘 있느냐고, 건강하냐고, 아직도 글 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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