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에는 산이와 강이가 대견했다. 같은 반 장애 친구가 강이를 의지하고 산이는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는 이야기에 흐뭇했었다. 토요일 새벽,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 일기를 적어 내렸다. 지금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잘 지내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눈 뜨면 우리 또 잘 걸어보자는 다짐도 하면서 긴 일기를 썼다.
그 일기의 첫머리다.
- 날이 밝으면 우리는 지리산에 간다. 하동호에서 삼화실까지 10km 조금 안 되는 둘레길을 거닐러 간다. 아빠는 가난해서 너희와 걷는 것이 전부다. 생각해 보면 지난 몇 년 동안 가난하게 걸었구나. 튼튼하고 값비싼 트레킹화를 신고 다닌 것도 아니고 시설 좋은 펜션에서 머문 적도 없이 무작정 걷기만 했구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 먹는 소떡소떡 하나면 즐거워하는 너희 둘은 참 손이 안 가는 아이들이다. 지난가을에 20km가 넘는 산길을 넘고 건너느라 그렇게 고생했는데 또 가느냐고 묻지도 않고, 오늘 기말시험 끝났는데 어떻게 그다음 날 산에 가느냐고 따지지도 않는 너희를 나는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행복한 줄 모르고 행복한 것이 행복의 얼굴이다. 출발 전날 아내와 나는 공감했다. 우리가 아이들과 다니는 지금이 아마 '절정'이었다고 먼 훗날 이야기하며 그리워할 거라고. 돌이켜 보면 우리가 함께 한 모든 길이 행복이었다. 부정할 수가 없구나. 즐거운 순간들이었다.
산이는 금요일이 다 지나고 1시가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시험이 그렇게 끝났다. 아이가 들어오는 소리에 깨어 줄곧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하나는 내 이야기, 다른 하나는 산이, 강이 일기.
둘레길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새벽에 지도를 보면서 실감했다. 붉은 선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그 작은 발로 이 먼 거리를 오르고 내리면서 너희는 올망졸망했었다. 결코 서두르고 싶지 않은 길이 바로 여기 있었구나. 고맙다는 말이 기도가 된다는 것을 알겠다. 더 바랄 것 없어도 좋다는 마음에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설레었다고 하면 믿지 않겠지? 왜 설레지 않겠냐,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며 오늘은 12월 중에서 제일 따듯하고 좋은 날이라는데. 그런 날에 처음, 그리고 다시 못 갈지도 모를 길에 설 텐데 어째서 두근거리지 않겠냐.
11코스는 경호강을 따라 산청 읍내를 관통해서 성심원까지 걸었던 6코스를 닮았다. 거기를 걸었던 것이 벌써 1년 전, 가을이었다.
當局者迷 旁觀者淸,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수를 더 잘 본다.
그 말처럼 어쩌면 길을 걷는 나는 아직 미혹했었는지 모른다. 가야겠다는 마음은 한 줄기 같았어도 거기 달라붙은 설명하기 힘든 삶의 보푸라기들이 나부꼈을 것이다. 그래서 다 걷고 난 후에 걷는 내가 새롭게 보인다. 걷던 나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앞으로 걸을 내가 가까이 오는 것이 아니라, 허공 같은 삶을 걷고 있는 나를 조금은 알아볼 수 있다. 보는 것도 여러 종류의 시선이 있는 것을 배운다. 다 지난 후에는 이렇게 관조가 되는 삶이었으면 한다. 지난해 가을 걸었던 6코스는 이제 내 안에서 다른 기운으로 나를 돕는다. 길은 잊어도 그 힘은 남아서 나를 지지대 삼고 줄기를 키운다. 줄기가 잎을 펼치면 사람은 맑음, 청(淸)이 된다.
유약한 사람들, 이라고 써놓고 보면 필요한 약이 하나 보인다. 정(情), 맑음을 닮은 따뜻함이 그 사람들과 나 사이에 꼭 하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약이다. 그것은 음악이기도 하고 한 편의 시나 문장, 건네는 커피나 차, 그리고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 나는 산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어에게 지지 마라. 내가 옆에 앉아 있을게.'
진지하지 않아서 문제라며 씁쓸한 맛이었는데 산이도 사실은 고민이 많다고 그런다. 저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힘들어한다고 그런다. 힘들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너에게서 빼놓고 바라봤다고 고해소에서 빌었다. 하동 성당을 밝히는 불빛이 하도 정다워서 망설이지 않고 고해소에 들어가 무릎 꿇고 잘못했던 것들을 빌었다. 너희도 어제 길을 다 걷고 그 밤에 성당에 앉아 미사를 본 것이 좋았다고 끄덕인다. 아, 바이올린 현이 떨고 피아노 건반이 하나 둘, 우리 사이를 건너는 밤이었다.
오늘 아침에 나는 다시 일기를 썼다. 그 일기를 여기 이쯤에서 붙여 놓고 오래 기억해야겠다. 지금 이 글은 언젠가 우리가 지리산 둘레길을 다 완성했을 때 아빠가 선물도 만들 거라고 그랬다. 너희들 일기는 따로 너희들 둘에게만 전하기로 하고, 하루하루가 구슬프게도 허전하게도 건강하게도 지나고 있다. 2023년 12월에 우리는 흔들리며 흔들리지 않는 꿈을 꾼다. 삶이 꿈이었다는 비밀을 언제 귀띔해 줄까······.
일요일 오후 말끔히 씻고 외출하려는 산이를 불렀다. 신을 신으면서 예, 대답을 한다.
"산이야, 엄마하고 아빠는 너를 좋아해."
"저도 그럽니다."
日記 - 9시가 다 되어 출발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코스다. 9.4km 둘레길 12코스, 하동호에서 삼화실까지는 난이도 하에 속하고 4시간 정도 예상 소요 시간이 떴다. 여태 익산- 장수 간 고속도로를 타고 대전 -통영 고속도로를 올라탔었는데 어제부터 방향이 바뀌었다. 앞으로 우리는 지리산 둘레길이 끝나는 날까지 전주 - 순천 간 도로를 달릴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하동에 왔다. 그렇게 다시 지난 추석 연휴에 걷기 시작했던 삼화실 주차장 앞에 도착했다.
어제는 도착 지점에 차를 주차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턴으로 택시를 불러 우리가 출발점으로 이동했다. 하동호수, 지난여름에 힘들게 도착했던 곳을 보면서 벌써 다 잊었다. 힘들었던 것은 까맣게 잊고 반가워했다. 그때 그랬었는데, 그런 말들로 지금과 그때를 잠시 귀엽게 이었다.
산이는 결과적으로 시험이 만족스럽지 않아 기운이 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면 부모도 속이 상한다. 어떻게 길을 걸으면 좋을까. 팍팍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나도 한숨이 샜다.
만약 둘레길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시원한 청암면 들판에서 맞았던 바람이 없이 하루를 보냈더라면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애꿎은 담배만 더 피웠을지도 모른다. 아이 표정이 무거운 것을 등으로 느껴가면서 평소처럼 앞서서 걸었다. 내가 덩달아 좁아지고 깎아지고 거칠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시골 풍경이 살살 건드려주는 듯했다.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 같은 빈 들판과 개울과 하늘이었다. 대숲에 바람이 크고 우람찼다. 동작이 커서 대숲 만나고 가는 바람은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하고 어쩐지 생김새도 성격도 다를 것 같았다.
잘 속는 일, 우리 부모는 나에게 잘 속았던 분들이다. 그 생각이 난다. 산이가 시험을 보고 날 때마다 나는 우리 부모가 생각이 난다. 부모는 죽어서도 자식에게 이런 순간 도움을 주는구나. 더 그러지 마라, 막 하지 말고 지나가라. 살아생전에 듣지 못했던 말씀이 12월 빈 공간에 현수막처럼 펼쳐져 펄럭였던 것은 아닐까. 나 같은 자식도 끝까지 가르치려고 애썼는데 내가 내 자식을 보듬지 못하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장사가 안 되고 당신들이 나이 들어가는 것이 절실했을 때도 오롯이 두 분이서 의지하고 거기를 지나오셨다. 나는 한 번도 두 분의 고단함을 내 것으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 어제는 그 생각이 많이 났다.
길이 짧아도 산이 있고 산으로 오르는 고개가 있고 가쁜 숨이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편안함도 성취감도 잔잔한 냇물 소리도 모두 있었다. 길 옆에서 봤던 마당 너른 집은 어쩌면 저렇게 아기자기하냐. 길가에서 마주친 고양이들도 시골 정취가 있어서 친근했다. 길을 한 시간쯤 더 걸어도 좋을 것 같은 순간에 삼화실, 우리 차가 보였다.
정겨운 말투의 택시 기사 아저씨가 추천해 준 식당은 다음으로 미루고 저번에 들렀던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산이는 간장게장에 밥 두 그릇, 잘 먹어주는 것이 또 고마웠다.
어두워진 하동 읍내에서 성당을 찾아갔다. 하동 성당에서 토요일 저녁 7시 미사에 참석했다. 오늘은 경계를 잘 지켜 흐트러지지 않았던 날 같다. 조금만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화나고 싫고 억울했을 것이 편안했으며 다행스러웠고 감사한 마음으로 흘렀다. 길은 종교 같고 종교는 길 같다. 사람이 거기를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