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은 거기

某也視善

by 강물처럼


겨울 장갑 두 켤레 중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져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편한 장갑을 끼고 밖에 나섰다. 2주 만에 가는 함라산이다. 변함없이 우진이 아빠가 동행하며 이번에는 남해로 운행을 다녀와야 한다며 이것저것을 묻는다. 거기 다리가 하나 더 생겼더라고 일러줬다. 남해대교는 옛날 말이 됐다고.

정상이라고 해봤자 250미터밖에 되지 않는 산이지만 그 위에서 느낄 수 있는 정취는 꽤 깊고 다양하다. 서쪽으로는 금강이 충청도 서천 들판과 전라도 이쪽 사이를 서운하지 않게 달래면서 흐르고 있다. 금강은 보고만 있어도 좋다. 사시사철이 다 보기 좋은 강이다. 그러다가 동쪽으로 돌아서면 멀리 미륵산이 보인다. 미륵산과 함라산 사이에 마을이며 길들을 천천히 조망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을 달래는 구석이 있다.

무엇보다도 정상에 자라는 벚나무들은 그 모습이 정답다. 거기 닿을 때마다 나무가 건강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꽃이 피면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기를 가볍게 원한다.

그 장갑을 두 번인가 껴본 것이 전부인데 어제 함라산에다 놓고 왔다. 거기 의자에 앉으면서 얌전하게 옆에 벗어서 겹쳐 놓았는데 일어서면서 챙기는 것을 잊었다. 그리고 중간쯤 내려와서야 알아챘다. 혼자였다면 다시 돌아갔을 것이다. 동행도 있고, 집에 장갑이 하나 더 있다는 생각에 어물쩡거리다 그만 내려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새것이어서 그랬는지, 마음에 들었던 것이라 그랬는지 집에 와서도 생각이 났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서 문득 이런 것도 인연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서 다시 맞이하는 아침이 인연이구나 싶었다. 사실 그 장갑은 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실력이 신통하지 못했다. 장갑을 꼈어도 손가락 끝이 차가웠다. 물론 내 몸이 차가워서 더 그런 것인데....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눈이 내리는 한겨울도 아닌데 이 정도도 감당이 되지 않나 싶어서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인연이었던가 보다. 인연이었어도 그 인연을 잘 풀어가지 못했다는 아쉬운 맛이 났다. 사실 처음 장갑을 끼고 나갔다가 왼손 집게손가락 아랫부분 솔기가 터질 것 같아 거기를 아내에게 꿰매달라고 부탁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물건을 형편없이 만들었다며 불쾌했을 것이 먼저였는데 그날따라 마음이 달랐다. 잘 고쳐서 더 오래 써야겠다. 더 잘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마음에 그런 빛이 번지는 것은 인연이 색을 칠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어떨까. 모든 인연에서 어떤 인연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말이다.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날개가 돋아 하늘로 날아갈 듯한 우화등선(羽化登仙) 말이다.

다음 주에 함라산에 오르면 첫걸음부터 장갑을 떠올리며 걸을 것이다. 12월이 한층 그윽해져 있을 것 같다.

내려오던 길에 아저씨 한 분이 우리를 스쳐 올라갔다. 아마 정상, 우리가 앉았던 의자에 앉을지도 모른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는 두 개뿐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앉았던 자리가 금강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여서 누구나 좋아하니까.

"아저씨, 죄송한데요. 지금 정상에 오르시는 길이시죠?"

"혹시 거기에서 검은색 장갑 한 켤레가 의자 끝에 있거든 그거 살짝 의자 아래에 놓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장갑을 깜박 잊고 거기 두고 왔거든요."

그 말이 입에서 달싹거렸다. 아저씨가 한 걸음씩 다가오는데 정말이지 옆을 지날 때는 옷자락을 붙잡고 싶었다. 그런 말 얼마든지 건넬 수 있는데 왜 나는 마지막 순간에 가만있었을까. 내가 인연을 대하는 자세는 거기에 있는 듯하다. 오래전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고 장갑보다 몇 천 배는 더 귀한 것을 두고도 아무런 말이 없이 서 있던 적도 있다. 나는 무슨 이유로 이런 사람일까. 내가 믿는 것은 어떤 것일까.

거의 믿어주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 하나를 꺼내놓자면, 십여 년 전에 영암 월출산에 갔을 적에 조릿대 숲에서 선글라스를 잃어버렸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데에서 소변을 보느라 모자 위에 씌운 선글라스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때도 한참 길을 가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순전히 짐작할 뿐이었지만 거기 말고 다른 곳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년에, 내년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면서도, 내 입에서 흩어진 말은 '내년에'였다.

정말이지, 그다음 가을에 나는 혼자서 거기를 찾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확히 1년 전 내가 걸어 들어갔던 그 조릿대를 헤치며 걸어 들어갔던 것이다. 여기가 거기라는 확신은 전혀 없었다. 5분도 채 들이지 않고 조릿대 이파리가 낙엽처럼 쌓인 속에서 선글라스를 건져냈다. 가능한 일인가?

가끔 자전거를 타고 농사가 다 끝난 들판을 달릴 때 그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더 소중하거나 더 아끼는 것도 아니다. 믿음이 있다. 인연이 숭숭 구멍이 뚫린 고무공 같은 거라면 그 구멍에 하나씩 찾아들어가 고무공을 통통 튀게 하는 것이 믿음일 거라고 믿는다. 모든 인연이 같은 운명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선글라스를 산에서 잃어버리면 대부분은 영영 그것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인연에 생기를 불어넣는 믿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믿음은 아닐 것이다. 잘 될 거라고 믿어, 나는 너를 믿어, 그렇게 희망적이고 밝은 믿음이 아니라 '올 것은 온다'라는 믿음, 결국 '이것도 다 사라질 거'라는 그런 순수한 결정을 향하는 믿음이다. 차원을 따지지 않는 믿음이 세계를 관통하고 세계를 꿰매준다. 그런 믿음을 가끔 마주치면 궁금해진다. 보고 싶고.

장갑은 거기 없을 것이다. 장갑이 거기 있었다. 나는 벌써 아무래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내 신호는 구조를 포기한다는 말도 구하러 간다는 말도 담지 않았다. 어쩌면 장갑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줄도 모른다. 장갑은 물을 것이다. 너는 내게 인연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너를 어느 숲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가. 나는 장갑의 손님이었다. 짧지만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금강은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