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파는 찻집

오래 쓰는 육아일기

by 강물처럼


치유를 파는 찻집


가곡 한 곡 듣는다면 어떤 곡이 듣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지금 이 순간이라면 '별'

바람도 서늘도 하여, 그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11월도 다 저무는 날에 아무 맥락도 없이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저 별은 뉘 별이요, 그래 나는 별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거기 나오는 '뉘'가 그리운 것이다. '뉘'가 있어야 다음 가사가 이어지는 탓이다. 내 별 또 어느 게요. 나는 '내'가 그리운 것이다. 별을 헤어 보느라 서성이던 그 사람이 궁금한 것이다.

이번에는 노랫말 없이 클래식이든 뭐든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피아노 소리가 듣기 좋은 'for Dori'를 선택해 본다. 아직 커피가 끓기 전이니까 가볍게 거실을 거닌다. 창에 하얗게 서린 것들에 손을 대본다. Dori를 상상하고 나도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된다. 차가운 것이 손바닥 아래로 뭉클, 창이 훌쩍인다. 온기를 나눴다. 바깥에는 그래도 하늘이 있어서 안심하고 바라보기 좋다. 오늘 하늘은 누가 닦는지 푸른빛이 살뜰하다.

동요는 무엇이 좋을까.

소풍 갈 때 등장하는 바구니처럼 노래 상자를 하나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바게트도 들어있고 샌드위치나 김밥도 잘 자리 잡고 있는 곳에 토마토, 키위 같은 과일도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바구니를 들고 잔디, 어디쯤에 나가 있을까 상상한다. 가지가 넓은 느티나무를 찾아 거기 아래에 자리를 펼쳐도 좋고 그림 같이 너른 초록 위에 하나 있는 벤치는 어떨까도 싶다. 아니면 저기 약간 언덕이 진 거기 위에도 좋겠다. 바람은 언제나 나에게서 너에게로 부는 날, 그런 날 좋다.

아이들 일기를 쓰려는데 어쩐 일인지 푸른 초원으로 달려간다. 우리는 잔디가 있는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구나. 공원이 좋은 곳이었다. 공원 같은 곳을 찾아 거기 30분, 한 시간씩 시계를 보면서 숨을 고르며 앉아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초록으로 내 눈을 충전하고 나를 채우는 일은 나를 지키는 일 같았다. 여기서 일어나 밖에 나가면 나머지 하루는 이 초록을 나누는 시간이다. 사는 일이 가면을 얼굴에 쓰는 일 같아서 아니면 분장을 하고 나서는 일 같아서 재미있으면서 피곤했던 내 젊은 날들이 어깨 위에 앉아서 발을 흔들고 있다. 양팔을 타고 손으로 내려온다. 잘 미끄러진다.

이제 그 말에 하나쯤 대답을 해둘까 싶다. 왜 글을 쓰느냐고 물으면 늘 궁색했었는데 이렇게 답하는 것이 영 틀린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글을 쓸 때는 착해진다고. 그것이 나쁘지 않다고. 평소 같으면 이렇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행동하지 않겠지만 그래서 텁텁한 것이 가득 차오르는 적이 많지만 글을 쓰는 동안은 어디에 있었는지 '나 같지 않은 내'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생각하고 돌이켜보고 후회하고 멀리 마중도 가고 높이 올라가서는 오래 손을 흔들기도 한다. 내 가면, 그 가면을 얼굴에 손에 가슴에 쓰고 글을 쓴다. 처음에는 가면이 나를 따라오느라 어색했을 테지만 그리고 지금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느라 가끔 서로가 고생하기도 하지만 모든 일은 순해지고 익숙해지는 길을 따라간다. 자주 오래 가면 길이 난다. 글도 길이 난다. 나와 나 아닌 내가 매일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를 따라 미처 되지 못했던 내가 되기로 한다. 착한 척이라도 내팽개치지 않고 그런 체하며 쓴다. 면역억제제는 평생 먹어야 한다. 그러다가 결국 만나는 '나', 반가운 일이다.

16층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서 사신다. 며칠 전이었다.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 먼저 인사를 했다. 두 분은 사이가 좋아 보이세요, 내 인사는 짧고 건강했다.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평소에 안 하시던 말씀을 하신다.

"금슬이 너무 좋아"

득의만면(得意滿面)이란 말을 쓸 기회도 없고 내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대목에서 기억하는 말이 아닌데, 그 순간은 그 말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눈에 눈이 내리는 듯했다. 흰 눈 내리는 날 두 분이서 처음 만났던 것은 아닐까. 표정이 온통 해맑았다. 다른 층 아주머니도 한 분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는데 노부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끄덕였다. 나를 보고 어디에 가는 길이냐고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밖에 나가는 모양인데 차림이 일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물었던 듯하다. 얘들 학교 차 태워주느라고요. 선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하는 작은 일도 선하게 본다. 아, 그러냐고? 눈을 크게 뜨신다. 나는 금방 말을 이어 붙였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요."

이번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대신 1층까지 5초 정도 다른 침묵이었다. 보통의 엘리베이터 침묵이 아니라 질감이 다른 말 없음이었다. 대신 나는 금슬이란 말을 생각했다. 빨리 떠오르지 않았다. 슬, 내가 좋아하는 슬, 술 아니고 슬(瑟). 그래, 거문고와 비파, 그 금슬(琴瑟). 사이가 좋은 것들은 소리가 나고 그 소리는 연주하듯 흐르는구나.

어제 새벽에 일어나 자리에 앉았는데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중학교 1학년 강이가 읽던 책이다.

'치유를 파는 찻집'

지난주에 겨울 옷을 사러 군산에 갔을 적에도 영문 문고를 발견하고 거기 들르지 않냐고 은근히 압박하던데, 아이가 책 읽는 재미를 키워나가기를 바라는 요즘이다.

다른 말 없이 이렇게 책을 반듯하게 컴퓨터 옆에 놓아둔 것이 '꼭' 읽어보라는 신호 같아서 우스웠다. 하루를 보내면서 사이사이 편하게 읽었다. 197페이지까지 읽고 하루가 지났다. 이제 반절 남았는데 그런 생각이 든다. 어느새 아이가 커서 자기 읽은 책을 보라며 소개하는 페이지가 내게 펼쳐졌구나. 사람이 자란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나도 강이가 내가 권한 책들을 부지런히 봐주기를 바랐던 만큼 강이도 그런 마음이겠지·····.

뭉클한 것이 종종 생겨나는 일상이 바람직하다.

거기 밑줄을 한 군데 그었다. 강이 책인데 허락도 없이 색연필로 끼어들었다.

"이것만은 기억해요. 행복은 말이죠, 얻는 게 아니라 깨닫는 거예요."

오늘 날씨는 어제보다 더 춥다. 오늘 밤에는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고 그랬고 내일 그리고 모래까지 한동안 추울 거라고 그런다. 아내는 하필 이번 주에 김장을 한다.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일부러 담으려 하는 것이, 지금은 애틋하고 고마운 생각이 든다. 감기나 들지 않기를, 몸살이라도 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보면 나도 좀 자란 듯하다. 글을 쓴 탓이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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