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7일.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그날 나는 5년, 1825일을 끝에서부터 살아보자며 일기를 쓰겠다고 그랬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그때 시작하면서 했던 말 중에 '운이 좋으면'이라고 했던 말. 그 말은 그렇게 쉬운 말도 아니고 다정한 것도 아니고 슬프지도 않더라. 잠시 앉아보는 소파 같았다. '소파'는 얼마나 편안하고 포근한가. '앉다'는 친근하고 '잠시' 그것은 어떻게 흘러가는 시간인가? 세상에서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은 '같았다'로 막을 내릴 것이다.
모든 순간은 지금이었고 그것은 잠시였으며 하나의 은유로 피었다가 직유로 시들어가는 순환 주기를 가졌다. 씨를 뿌리고 그것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일, 사람이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여정, 처음이었을까, 과연 우리의 처음은 처음이었고 마지막은 마지막이 될 수 있을까. 감상적이지 않아도 좋다. 이 길에 난 것들은 모두 '성장'의 한 형태니까.
첫발은 얼마나 가느다랗던가. 그것을 믿었던 적은 없다. 그 연한 것을 믿기에는 숨소리는 너무 작고 길은 늘 멀다. 첫, 그것이야말로 무념무상이다. 이름도 없고 희망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존재하는 일. 거기에 신성 神性이 받쳐 든 혹은 스며든 '카르페디엠'이 있다. 지금을 잘 살라는 말에는 염원이 담겨 있다. 거기 밖에 있는 것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말라는 오랜 기도가 거기 안에 있다. 첫, 그것은 늘 '첫'이었다. 그러니까 2023년 12월 21일도 2023년 12월 27일도 첫 장이다. 동시에 내 영원한 끝이다. 맞닿은 그 둘 사이에 내가 머문다. 둘 사이가 긴밀할수록 나는 숨이 막히게 존재할 것이다. 가쁘지 않은 숨을, 무호흡의 호흡은 심장을 없애고 피부에 맡겨야 한다.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심장.
세월이 지나는 자리는 어디나 바늘이 함께한다. 그 바늘은 냉정하고 빈틈이 없어서 해와 달도 가차 없이 그 뜻을 따른다. 바늘이 지나간 자리에는 흉터가 남는다. 지나가는 것들 아래로 난 길들, 큰 배가 지나고 난 자리가 스르르 아문다. 바다도 아니고 배도 아니고 그 흔적도 아니고 여전히 자라는 이것은 무엇인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 '각각'이라는 말이 버석거렸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그 말이 눈꺼풀 어딘가를 찌르는 거 같았다. 손가락으로 눈을 비벼도 개운하지 않아서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K 선생님은 악성이니까 서울 큰 병원에 진찰받아보라고 해서 다녀오는 길이라며 표정이 무거웠다. 시의원 K는 의사 사위를 자랑하더니 자기가 앞장서서 관리소 직원들 내년 임금 인상분을 대폭 깎았다고 떠들었다. Y 소장은 일을 그만 둘 작정으로 동 대표를 직격 했다고 한다. 무슨 사정이 있었길래 저 순한 사람이 악다구니를 쳐댔을까. 버스 기사 C는 집 하나 장만하려는 것도 일이 많다며 한숨을 지었다. 입주해서 들어간 아파트가 부도가 날 지경이란다. 아이가 아프다는 집, 아이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집, 테슬라하고 포스코 주식 이야기로 열을 올리던 L.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 선배와 후배. 나는 그 사이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다.
눈밭에 엎드려 사진을 찍는다. 내 일기는 그 위치, 그 자세였으면 한다. 추웠으면 하고 더웠으면 하고 선선했으면 한다. 가는 곳을 모르고 갔으면 한다. 아내는 눈길을 헤치고 전주에 다녀와야 한다. 다녀오려면 오전에 다녀오라고 건넨다. 눈이 더 거세질 거 같으니까, 길이 미끄러울 텐데 가지 말라는 말 대신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고 산다. 제 각각이다. 다음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도록 바랄 것이다. 처음과 끝이 딱 붙어서 말라버린 내가 굴러다니는 꿈을 꿨다. 문영이가 무섭다고 소스라치는 아내를 보면서 내가 서 있는 곳이 살풍경해서 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깼다. 버석거리던 것이 아니라 내리 눌리던 것이었다. 어디로 가면 숨을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서 숨을 데를 찾지 못할 것 같다. 숨소리가 뜻밖에 차분한 것이 끝에 다 온 듯하다. 수고했다, 1825번, 受刑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