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한 것들에 부는 바람, 願

오래 쓰는 육아 일기

by 강물처럼


동철이는 어떤 목표를 갖고 있을까. 금요일이 지났다. 전국 각지에서 동장군이 활개를 치는 시국에 나는 조용했다. 서울역 앞 노숙인들의 기사를 보면서 혀를 찼다. 군산 비응항부터 선유도까지는 그야말로 눈이 폭탄처럼 쏟아졌다. 선생님 1등급 됐다는 간결한 문장이 휴대폰에 찍혔다. 3년이면 적지 않은 시간이다. 그 과정을 거쳐 어딘가에 오르는 아이를 보는 듯했다. 너는 잘 올라가고 있구나...

산이는 아침이 약하다. 어른이 되고서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다. 엄마가 발을 주물러주고 그러고서도 재차 방에 들어가 깨우는 일상이다. 어제 아침은 차들이 전날보다 더 느리게 움직였다. 혹시라도 미끄러질까 조심하는 차들과 출근을 서둘러야 하는 차들이 모현 대교 근처에서 엉켰다. 8시 30분까지는 학교에 도착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학교에 태우고 다니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당사자들은 학교에 늦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운전을 하는 내가 속을 끓이는 것이 과연 맞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태연하기로 했다. 기다리면서 초조해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차에 타는 대로 출발을 하고 애써서 끼어들거나 무리해서 신호등 꼬리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지각하겠다고 그러니, 그제야 산이는 코가 막히니까 병원에 들렀다가 간다고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내겠단다. 그 옆에 친구 아연이는 아무 반응이 없다. 알고 봤더니 전날도 5초 늦었다며 지각에 적혔다고 그런다. 그러고서도 아침에 늑장을 부리고...

나는 그런 것을 술수라고 생각한다. 술수는 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자기 꾀에 당하기도 한다. 꾀를 부리지 않아도 되는 것을, 산이는 어제 아침에 좋지 않은 술수를 하나 부리고 그것을 배웠다. 차라리 지각을 당하고 그리고 깨달았어야 하는데 다른 길을 택했다. 나는 화를 냈지만 저는 불만이었을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만큼 저는 나에게서 멀어졌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가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지 못하게 됐다. 실수를 하더라도 알아서 해야 한다. 잘못하더라도 알아서 해야 한다. 두고 볼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울적한 심사였다. 그 자그마한 산이의 동작과 선택이 자꾸 눈앞을 막아섰다. 나도 실수가 많은 인생이다. 내가 더 사는 일에 장밋빛 희망을 갖지 않고 덤덤한 까닭에는 그런 것이 있다. 사는 일이 죄짓는 일 같다는.

늦잠을 자고 꾸물거리느라 늦은 것을 그런 식으로 피해 가는 것은 자랑이 되지 못한다. 나는 산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내 방식이 절대 옳은 것은 아닌 줄 안다. 그래서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저마다의 인생이 흘러가는 여기는 앞으로 점점 그 풍경이 을씨년스러울 것이니까. 자본과 경쟁은 더욱 첨단화되어 인적 없는 고요가 자욱할 테니까.

서울의 봄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젊은이들이 그 영화를 보면서 심박동 수가 얼마나 오르는지 그 수치를 게시하는 릴레이가 시전 되기도 하는 진풍경이다. 역사가 이렇게 상식적이지 않게 흘렀다니, 시대의 두꺼운 얼굴을 보고 있느라 일찍이 느낀 적 없었을 분노와 답답함을 영화를 보는 내내 경험하고 있다. 그 서울의 봄이 지나 여름쯤이 되었을까. 1987년 6.29 선언이 나올 무렵, 전국은 데모로 한창 어지러웠다. 전주에서도 수많은 인파가 연일 도로를 메우고 호헌철폐! 독재 타도! 를 외쳤다. 고등학교 1학년, 지금의 산이와 같은 나이였던 내가 그 거리에 있었다.

그날, 학교도 서둘러 학생들을 집에 돌려보내면서 담임 선생님은 절대로 데모하는 데 기웃거리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내가 거기 간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는 독재인 것도 몰랐고 억울한 것도 없고 다만 바라보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 그 사람들을 막고 전쟁터처럼 최루탄을 쏘아대는 광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들 모습에 숙연했다가 감동했다가 놀라면서 나도 모르게 한 걸음씩 현장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수덕이가 옆에 있었다. 우리는 열 살 무렵부터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줄곧 같은 장면에서 찍혔다. 만약 세상을 다 찍을 수 있는 CCTV가 있었다면 우리가 같이 보였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나는 저기 올라갈 거니까 너는 여기 있어."

그날 시위는 크게 번지지 않고 그대로 해산되었다. 그랬으니까 다음날 평상시처럼 학교에 등교할 수 있었고 담임 선생님의 교무실 호출에도 아무 생각 없었다. 수덕이 하고 같이 교무실에 가면서도 영문을 몰라, 그저 나쁜 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수덕이는 모범생이었으니까.

"너희 둘, 어제 어디 갔어?"

"왜 가지 말라는 데를 가서 사진까지 찍혔냐?"

먼저 수덕이가 서른 대쯤 맞았고 다음에 내가 맞았다. 수덕이는 종아리를 두 손으로 매만지면서 금방 울 것 같았다. 내 탓 같아서, 맞으면서도 미안했다.

"갔으면 얌전히 구경이나 할 것이지, 거기까지 왜 올라가!"

"담임 잡혀가는 꼴 보고 싶어!"

내 종아리는 튼튼하다. 어릴 적부터 맞을 때 흔들리지 않기로 다짐하는 것이 내 악취미인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선생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그때 알았다. 육교 앞에서 소리치는 사람을 더 잘 보고 싶었다. 인파에 가려 보이지 않는 현장을 더 잘 보고 싶었다. 무슨 말을 떠드는지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좀 더 높은 데서 가까이 보고 싶었다.

"너는 여기 있어."

수덕이 하고 나눴던 수만 가지의 말들, 셀 수 없이 많은 말들 중에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말이 두 마디 있다. 그중에 하나를 그날, 코아 백화점 앞에서 시위 군중들 틈에서, 17살 우리가 나눴다.

그랬었는데, 다음 순간 수덕이는 또 내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찰칵, 우리도 모르는 사진을 찍고 말았다. 우리가 본 적 없는 그 사진은 지금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


산이는 지각을 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제 등굣길에 멈춰 있는 기분이다. 천천히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께 도로가 미끄러워서 늦었다고, 그 말이 소용없으면 그대로 괜찮다고. 코 막힌 것은 내일 병원에 들러보는 것이 낫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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