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고 듣고 싶었다.
내가 꺼내든 말들은 화려하지 못하고 강렬한 구석도 없다. 그것은 의미를 갖기 이전의 형태로 흐물거린다. 나에게서 분화되지 못하고 둥글둥글 맴을 돈다. 수많은 동그라미들이 나를 토닥거린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그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세월은 사람의 말을 먹고 산다. 내 입에 포도알처럼 알알이 열렸던 말들, 그 맛은 시었을까, 달았을까. 둥근 흙집을 두드렸던 손이 멎었을 때 주위는 고요했고 해가 지고 있었다.
말이 주인인지 내가 말의 주인인지, 우리는 서로 따지지 않는다. 거기서 거기니까. 그게 그거니까.
한때는 '말을 못 한다'라는 말이 나를 대변했다. 그 말을 듣고도 '말'을 잘하지 못했다.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지 아니면 그럴 줄 몰랐던지·····. 그래서 나는 안다.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 '싶은'이라는 말이 붙는 그 마음이 전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싶은' 것은 찾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눈 덮인 한라산이 보고 싶다고,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내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겼다.
크리스마스이브, 세상에 축복이 내리는 날에 비행기를 탔다. 어둠 속에서 내가 빌었던 것은 평화였다.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Tiger in the night가 흘렀다면 어울렸을 것이다.
눈이 내려서 가보고 싶었지만 그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한라산은 전면 통제였다. 내게 주어진 날은 성탄절 하루, 그 하루가 지나면 아침 일찍 돌아가야 한다. 공항 근처 숙소에서 내가 가야 할 항로를 수정했다. 한라산에 못 가면 올레길에 가자, 제주도는 오래전에도 걷고 싶었다. 그때는 아직 올레길도 없었고 포장마차가 탑동 방파제를 따라 길게 이어졌었는데 이제는 '포장마차'라는 말도 드물어졌다. 탑동에서 용두암을 향해 걷던 스무 살 나는 무엇이 그렇게 만만했을까. 제주에 올 때마다 그때의 나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나를 발견했다. 숙소 유리창을 활짝 열어놓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버려 둘 거야. 정말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정체 모를 자신감이다. 내 여행의 시작, 출발지는 여기 제주였다. 제주에 혼자 날아왔던 그날 이후로 나는 나그네가 되어 갔다. 멀리 샌프란시스코 해변에서 맡았던 바다 냄새,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에서 들었던 시타르의 떨림까지 내 호흡을 이루었던 공기와 물, 그리고 길들. 그 모든 인연들이 인동덩굴처럼 겨울을 품고 나를 감아 오른다. 특별한 한 해의 끝이다. 뭐라고 인사를 할까. 올라~
중국 대륙에 가보고 싶어졌다. 거기를 지나 티베트의 언덕 위에서 덜덜 떨어야겠다. 차가워진 몸뚱어리를 신전에 바치고 한 줌 온기를 비는 꿈을 꾼다. 제주는 내 자신감의 원천이 솟는 곳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오면 가슴 한편이 차오르는 것이 꼭 '오름' 하나를 내 속에 품고 키워내는 듯하다. 10년 만이라니, 내가 좀 무심했다. 그 사이에 여기도 나도 얼마쯤 변했다. 이제는 샌드위치도 반 조각만 먹고 고기 국수도 절반을 남기고 용두암까지 무턱대고 걷자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제주는 알록달록 해졌다. Fancy, 팬시라고 하면 그 모습이 더 잘 그려질 것 같다. 고급 노트를 팬시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조금 여유롭기 시작할 무렵, 품질이라는 말을 거들떠보는 일상으로의 전환을 기억하는가. 팬시점 앞을 서성이던 여학생들과 거기서 팔던 예쁜 편지지며 펜, 다이어리 같은 것들 말이다. 그 말을 꺼내어 제주도 앞에 장식처럼 꾸며놓았다. 사람들은 그 말이 '~ 하고 싶은'이라는 동사라는 것을 알까. want, like 가 아니라, fancy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말과 함께 환해지는 동작을 알아볼까. 그런 느낌이 쏟아졌다. 먼 기억 어디에선가 징글벨이 울리고 크리스마스였다. 그때도 지금도 Merry Christmas.
마음을 뒤에서 밀며 일어섰다. 마음이 슬쩍 웃는다. 웃으면 잘 된다. 오, 나의 파트너,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7시 정각, 숙소를 나섰다. 지난밤에 잠을 설쳤다. 제주도는 조용했는데 나 혼자서 이러쿵저러쿵 잠을 못 잤다. 모든 일이 그렇듯 자기가 늘 문제다. 주위는 아무 말이 없는데 말이다.
노란빛이 섞인 오렌지였다. 유난히 밝아서 그 앞에 멈췄다. 기껏 샌드위치 가게가 이렇게 환하다니, 내 첫인상을 믿고 안으로 들어섰다. 뜻밖에 마주친 수많은 포스트잇, 색색이 조화로웠다. 샌드위치를 주문했지만 거기에는 관심이 없이 하나씩 소원들을 읽었다. 돌로 소원을 쌓고 두 손으로 소원을 빌고 펜으로 쓴 소원들, 길에서는 사람들의 소원을 만난다. 들을 수 없었던 소원을 듣고 볼 수 없는 소원도 구경한다. 그리고 같이 빌어준다. 잘 읽어주는 일, 그게 내가 하는 일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 21, 4,7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앞으로도 오겠지만 항상 옆에서 응원하고 감사하고 더 웃게 만들겠습니다. ks ♡ jh.
2025年 5月 Camino를 위한 아름다운 여정을 만들어가 보자. 금자 언니와 함께여서 가능한 멋진 人生.
23, 10, 14 하늘에 구름이 낮게 뜬 날. 그만 싸우고 행복하자! ♡113♡
<제주여행 8,7~8,9> 우리 채 가족 사랑해. 건강만 하자!! 진짜 사랑해 ♡
커피가 잠시 식을 동안을 유쾌하게 기다릴 수 있는 방법이 거기 있었다. 심심하면서 심심하지 않고 잊어버릴 것이 분명한데 맛이 나는 10분이었다. 가장 재미난 것은 이것이었다.
- 남친으로 와서 남편이 되어 올라갑니둥~ 행복 제쥬 ♡ 이젠 결혼기념일마다 와야지 ^-^ BK ♡ GC
함덕 가는 버스는 어디에서 타느냐고 주인에게 물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한 마디쯤 주고받고 싶었다. 이런 조명과 이런 메모를 아끼는 사람은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까. 어떻게 말을 할까. 미안한데 샌드위치를 다 못 먹었습니다. 제가 수술을 한 사람이라서요. 그런데 다음에 또 뵐 듯합니다. 그게 내 인사였다.
버스 안에서 나도 메모를 적었다. 가게 안에 무지개가 핀, 그 인상이 오래갔다.
바람, 願
하루만 더,
그 말이 가득할 때가 있습니다
좋아했다는 말도 그것으로 대신합니다
그렇게 머물고 가기로 합니다
하루 더 편안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볼펜과 수첩을 챙겼다. 휴대폰 메모 기능을 잘 활용하는 편이지만 벌써 두 번째, 거기에 적어놓았던 문장들을 다 잃어버렸다. 휴대폰을 바꾸면서 메모까지 챙기지는 못했다. 밴드나 은행에 관련된 앱, 카카오톡에 신경 쓰느라 살면서 얻었던 말들을 다 날려버렸다. 5년이나 쓴 것들인데 어디에 가도 찾을 수 없게 됐다.
함덕에 가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하는 노선이었다. 아파트 단지가 보이지 않으면 거기서부터 본모습이다. 도심을 벗어나자 제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창 밖으로 비구름마저 영화 속 풍경처럼 흘렀다. 어제저녁에 버스에 올라타면서 부끄러운 것이 있었다. 차비가 얼마인지, 카드는 되는지, 그리고 탈 때와 내릴 때, 두 번 찍어야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바쁜 기사 아저씨에게 연거푸 말을 거는 것이 미안했다, 중앙로 사거리는 눈치껏 노선도를 보고 벨을 눌렀다. 더 성가시게 굴지 않기로. 이번에는 렌터카도 없이 그리고 택시도 타지 않기로 했다. 혼자 나서는 길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보람되게, 그것이 내가 지키는 원칙이다. 대신 진하게 냄새나는 발걸음이 되기를 소망하며 걷는다. 글을 한 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걷는 일은 마치 바람에 소원을 다는 일 같아서 좋다. 힘들수록 좋다. 어쩌면 오체투지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좀 용기가 있든지 바보스럽든지, 하느님은 그것은 내 알 바 아니다며 모르쇠다. 네가 알아서 하라는 말은 명령인지, 체념인지, 부탁인지.
ㅡ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