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1코스 ㅡ2

걸으면서 든

by 강물처럼


제주 올레길 1코스 이야기 2부


서두를 것이 없으면 마음이 배를 띄운다. 그 배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누가 알까.

세상 만물은 평안함을 얻지 못할 때 운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

그러고 보면 여기가 다 바다 아니었을까, 나는 문득 그 바다에 뜬 배인 듯싶다가 섬인 것을 억지 쓰는 것은 아니겠지? 스스로 묻고 있었다. 성당에 가고 싶었다. 아기 예수님에게 경배라도 할 수 있다면 어디냐 싶었다. 마침 조천읍에 성당 하나가 있다고 인터넷이 알려줬다. 망설일 것 없이 벨을 눌렀다. 마침 정류장 옆에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였다. 언덕 위에 성당이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성당이었다. 이 바다는 광활하다. 나는 오늘 물 만난 고기다.

바다는 광활해 물고기 뛰어놀고 하늘은 높아 새들이 날아오른다(海闊憑魚躍 天高任鳥飛)

미사는 한 시간 넘게 남았다. 다시 언덕을 내려와 마을로 들어섰다. 모르는 길, 처음 가는 길이 골목으로 이어졌다. 바닷가 집들은 지붕이 낮다. 서해에서도 그랬고 남해에서도 그랬다. 제주를 다 걸으면 -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제주를 다 걷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 것이, 이 느낌은 내가 되겠구나. 조천읍 조용한 마을 끝에서 파도치는 바다에게 그 느낌을 건넸다. 그리고 말을 던졌다. 내내 바다를 보면서 걸어야겠어! - 나는 얼마쯤 바다 냄새가 풍길 것 같았다. 살면서 멀미 날 때 그런 냄새가 사람을 도울 거란 믿음 같은 것이 보였다. 산 내음, 바다 내음, 바람이 맡아지는 삶을 목표로 삼아도 좋을 듯싶었다. 길에 손을 얹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땅에 엎드려 온몸으로 닿게 되는 거구나.

성탄절 미사는 차분했다. 내 취미는 작은 성당이다. 딱히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작은 성당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족되는 어떤 것이 있다. 마당을 거닐어 보고 기다란 의자에 앉아 보고 가끔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정면으로 십자가가 있는 곳에서, 어떤 소설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대화를 한다. 칼날이나 다른 것들 위에서 돌아가셨다면 지금처럼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일이 가능하겠냐며 웃는다. 비웃음이든 유머든 아니면 어떤 메시지든 별 상관없다. 십자가는 내 이름보다도 무겁고 깊고 다정해서 그 어떤 말로도 흠을 내지 못한다. 태양이 빛을 잃더라도 빛은 꺼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나그네를 대하는 모습을 즐기는 편이다. 나는 나그네가 되는 연습을 하면서 산다. 그 두 사람은 부부였던 듯하다. 항상 자기 처지에서 무엇이든 판단하고 믿는다. 얼마나 많은 비극이 거기에서 생겨났는지 모른다. 수많은 이야기들은 거기를 아프게 다룬다. 사이가 좋은 부부겠거니, 타인을 경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가능한 옆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배낭도 걸리적거리지 않게 잘 세워놓았다. 영성체를 하면서 알았다. 남자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는 사실을. 손을 떨고 서 있는 자세도 구부정했다. 여자가 남자 뒤에서 부축하고 한 손을 잡고 걸음을 밀고 나갔다. 저런 배도 있구나. 이 바다를 둘이 지나고 있구나. 여자가 비로소 내게 편안한 시선을 보냈다. 나도 내 앞에 서라며 자리를 내줬다. 처음에는 나이 먹고 발을 떠는 버릇이 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여자가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거라고 여겼다. 남자 무릎에 손을 대고 진정시키는 것이 보였다. 남자가 부르는 성가는 낮았지만 정확했다. 마치 옛날에 내가 잘 불렀어, 그러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혼자 부르라고 나는 입을 닫았다. 영성체를 모시고 난 뒤에는 내가 잘못 봤다고 오해였다고, 당신들 옆에서 미사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나도 성가를 따라 불렀다. 평화를 주소서, 그 부분이었다.

떡 한 조각을 선물로 받았다. 제주에서는 자꾸 무엇인가를 받는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언제든 제주에 오면 여기에 들러 미사를 보겠다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겨울 바다 바람이 탄산수처럼 온몸으로 흩어졌다. 가벼웠다.

버스를 내렸던 곳에서 시흥리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올레길 1코스는 시흥리에서 시작한다. 이름도 그럴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서귀포의 시작, 시흥리(始興理) 마을 이야기가 올레길 첫 출발점에 적혀 있었다. 여기 옛 이름이 힘센 사람들이 많아 '삼돌(力乭)' 마을이라고 했단다. 나도 어깨를 펴고 힘깨나 쓰는 사람처럼 걷기로 했다. 으흠, 험험!

올레 1코스를 간단히 적으면, 시흥초등학교 - 말미오름- 알오름 - 종달리회관 - 종달리 소금밭 - 성산갑문 - 광치기 해변, 총 15km 거리다. 오후 1시, 적당하다. 모든 순간이 나를 위해서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마음만 챙긴다. 국숫집에서 국수는 다 먹지 못했지만 따뜻한 보리차를 한 병 얻은 것이 왜 그렇게 든든하던지, 그대는 알려나? 떡 한 조각, 보리차 한 병으로 내가 이루는 기적, 만족이다. 자, 가자.

걷자마자 당근밭이 나왔다. 푸른 잎을 달고 땅에 누운 주황색 통통한 살들, 저 벌거벗은 건강함이 두 줄로 늘어섰다. 오, 홍당무! 흙냄새와 당근 냄새가 섞여 싱싱했다. 볶음밥은 당근과 파란 파 이파리가 생명이다. 두 색이 합하면 무엇이든 보기 좋다. 맛있어 보인다. 겨울에는 당근을 뽑는구나. 제주도에서 당근을 키우는구나. 정겨운 돌담이 쭉 이어졌다. 덤이라고 하기에는 오래된 골동품이다. 그 돌 하나하나를 다 감상해도 좋을 것 같았다. 나, 짧은 인생을 짊어진 가볍고도 건방진 존재가 그대들을 삼가 지나칩니다. 어리석은 것이 한이 없습니다. 해량하소서.

저것이 두산봉, 말미오름이다. 저기에 오르면 성산포 들판이 펼쳐져 있고, 정면에 성산 일출봉, 그 왼쪽에 우도가 있다. 땅끝에 있는, 걷다가 배운 것이 있다면 어디든 땅끝이었으며 거기가 땅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름은 사람을 덮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입는 것으로 충분하다. 땅끝에 섰던 이는 그 땅끝만 가진다. 내 땅끝은 너무도 많아서 어디를 말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땅끝이 나를 좇는다. 그의 땅끝이 되어줄까 싶다. 숨이 가빠지려 할 참에 끝이 보이는 오름이다. 그거 아는가, 나는 지리산을 다니고 있다. 지리산을 먼저 돌고 올레에 이르면 올레가 훨씬 사랑스러울 것이다. 한 번쯤 내 말을 듣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겨울 햇살은 살가운 구석이 있다. 사람을 고백하게 만드는 것도 햇살, 실수하게 만드는 것도 햇살이다. 그날 햇살은 구름 뒤에서 그리고 바람 뒤에서 애를 태우는 아낙 같았다. 보드라웠다고 전한다. 풍광이 사람을 살린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여 그 경치를 사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것일 때, 가치가 값으로 매길 수 없이 풍부해지는 법이다. 누구의 것으로 귀속된 자연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어서 맥을 못 추고 빛을 잃는다. 저 갸륵한 성산의 들판을 누가 차지하려 덤비는가. 저 바다를 가져야겠는가. 저 하늘에 구름이 영원과 순간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 풍경 속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숨밖에 없다. 마지막 숨을 쉬듯이 깊이 담아보는 일, 그마저도 채 1분이 다 되지 못하는 것을 사람들은 어디에 숨어서 밥을 먹고 삶을 살고 있는지. 바다와 하늘과 땅을 하나의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 나는 여기에 오길 정말 잘했다. 걸음에 날개가 돋는다. 내리고 오른다. 알오름에 오르면서 지리산 둘레길이 생각났다. 이 푹신푹신한 갈대로 지리산 어디쯤에 난 길을 깔아주면 좋을까. 가난하고 힘들 때부터 고생을 같이 겪어온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는다. 지리산에서 배운 덕을 제주에서 쓰다듬었다. 제주에 한 번 와 본 적 없는 강이도 생각났고 어머니가 더 앓기 전에, 그 생각에 잠시 넋을 놓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머니는 어느 만큼 정신이 없으신 걸까. 내 가난한 사람들이 물기 어린 하늘에 비쳤다. 저기로 내려간다. 저기로 가면 그리운 바다가 있다. 성산포 앞에서는 그 시를 읽을 것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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