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1코스 ㅡ 3

걸으면서 든 것들

by 강물처럼


올레길 1코스를 다녀온 지 보름이 된다. 인적 없는 뒤안길로 사라지는 그의 어깨가 보였다. 순식간에 어둠 속에 잠기는 그를 어쩌지 못했다. 잠깐, 불러 세우려던 내 손이 허공에서 기억을 잃은 듯 멈췄다. 불러도 소용없는 것을 아는 까닭에 입 가장자리가 달그닥거렸다. 빈 그릇을 박박 긁어먹던 조선의 아이들이, 여백이 가득한 묵화처럼 눈앞에 그려졌다. 2023년이 갔다. 가만있어도 밥상이 차려지는 것이 어떤 날은 겸연쩍다. 새해에는 무엇을 하며 세상에 산 흔적을 지울까 궁리하다, 올레를 걸었던 날들을 먼저 적고 있다. 나는 올레길 하루를 3가지 이야기로 적는다. 오름에서 내려와 평지로 향한다. 이 길에서 내가 견뎌야 할 인연들에게 미리 머리를 숙여, 청무 밭 앞에서 나비처럼 노래를 불렀다. 푸르구나, 대지(大地)라는 이름이여.

이 길 끝에서 내가 만날 사람은 보물 가운데 보물이다. 한라산의 흰 눈도 올레길의 신비도 나를 부른 적 없다. 그것은 덤으로 얻어먹는 양식일 뿐 나를 살찌우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부름에 답하는 그리운 정을 나는 추사의 세한도처럼 기억한다. 춥고 난 다음에야 송백의 푸르름을 안다. 그를 만나러 간다. 카바티나, 아니면 오빌리비온, 아니면 이문세의 내 오랜 그녀, 노래가 없다면 이 밀가루 반죽 같은 세상을 어떻게 요리할까. 외롭지 않은 것이 외로웠다. 길이 내 앞으로 계속 펼쳐지고 펼쳐지고 있었다.

서귀포 48km, 성산 6km, 도로 표지판을 건너서 종달리 마을로 들어섰다. 그러니까 여기는 종달리(終達里)다. 시작하고 끝나는 일이 시흥리에서 종달리의 이름이 된 듯하다. 도로는 직선, 마을은 곡선을 자랑으로 삼고 산다. 길을 잃고 싶은 사람은 곡선으로 들어선다. 불안한 사람은 직선을 따라가면 되는 이치가 살갑다. 곡선을 돌다가 직선을 만나면 반갑고 직선을 긋다가 곡선으로 들어서면 바람이 따사롭다. 둘 다 사람을 돕는다. 나는 그 경계를 아낀다. 행여 놓칠세라 조바심을 내기도 하면서 아스라이 따라가고자 한다. 산에서는 바다를 바다에서는 산을, 어디에서도 살지 않고 어디에서나 머물기 바라는 것이 영 고집스럽다. 제주는 그런 나를 달래기에 좋아 보였다. 너를 내가 많이 몰랐다. 결국 나는 내 탓이었구나.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이렇게 모여 살아요, 자랑하는 듯한 살림들이 펼쳐졌다. 책 약방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던가. 책에게도 약방이 필요한 것을 그 앞에서야 끄덕였다. 나무를 살리느라 건물이 틀어진 곳 뒤로는 도자기 공방이, 바다는 안 보여요 카페는 또 어떠냐. 얼마쯤 걸었을까. 아침 7시부터 움직이고서도 아직 흐트러지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시 군대라도 가야 하나, 허튼 농담이 샜다. 거기가 커피를 파는 곳인 줄 모르고 젊은 아가씨 둘이 사진을 찍고 들어가는 것을 따라 들어갔다. 커피 향이 우쭐거리는 곳, 가부키 극장 같은 첫인상이 신선했다. 천장은 높고 공간이 장식되어 있는 공회당에서 30분 등짐을 내려놓고 쉬었다. 거기 놓여 있던 책은 노란 표지에 '신영복의 언약'이라고 아래에 적혀 있었다. 신뢰를 주는 이름, 반가웠다. 딱 한 페이지, 아무 데나 펼쳐서 그 문장을 오늘 지지대로 삼아야겠다는 의지가 돋았다. 여행이 근사해지고 있었다.

-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싹을 틔우는 한 알의 씨앗입니다. 비록 추락이 이상의 예정된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이상은 대지(大地)에 추락하여야 합니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민들레는 슬픔입니다. 91p.

성탄과 이스라엘, 하마스가 절묘하게 겹쳐지는 데칼코마니를 연상시키는 문장이었다. 문장을 틔우는 그것이 씨앗이 되게 하는 추락을 상상한다. 내게도 추락이 있다면 나는 그럴 수 있을까. 풍장(風葬)이나 추락이나 만행(萬行)은 일목요연하고 깔끔하다. 푸르른 빛이 도는 것이 색감이 있다. 인연은 비취색으로 그리는 그림이니까. 색을 구하러 가는 길, 내 이상을 그쯤에 두고 수행하는 것은 또 어떨까. 화공을 구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이는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종달리에서는 딸아이가 생각났다. 좋아하겠구나. 이런 길도 있었냐며 좋아하겠구나. 어린것이 부모를 따라 얼마나 많이 걸었던가. 산속으로 산속으로 가자는 아비와 어미는 너를 많이도 고생시켰구나.

종달리를 벗어나면 긴 해안 도로가 나온다. 바다가 왼편에서 찰랑거린다. 오래 그 길을 걷는다. 해가 지는 것도 거기에 있고 고급 승용차가 너무 많다는 사실도 거기에서 알 수 있다. 걷는 만큼 성산 일출봉이 가까워진다. 우도에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바다에다 줄을 긋는다. 저기에서 저기는 집게와 엄지로 4cm 반.

길가에 오징어를 말리는 곳을 지나면 그때부터는 풍경에서 감상이 빠진다. 거리를 재고 시간을 보고 하늘을 보면서 걷는다. 걷는 것도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인생을 닮았다. 어떤 사람은 젊은이 못지않게 걷고 어떤 사람은 벌써 나이 먹은 걸음걸이다. 나는 꼭 내 나이, 그대로다. 산에 다니는 사람이 그것밖에 못하냐고 그럴 수 있지만 이만큼 하는 것도 그 덕인 것을 내가 알고 아내가 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서로를 격려하는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어디야, 정말로!'

성산리 입구에서 공중전화박스를 배경으로 성산 일출봉을 찍었다. 기억하는 전화번호가 없다. 옛날 번호만 몇 개 나부꼈다. 사람이 없으면 기억도 금이 간다. 흙 바람벽에 드는 것은 차가운 겨울인가, 한여름의 소낙비인가. 성산에 오면 보고 싶은 이가 있다. 나는 더 걷지 않고 해변으로 간다. 걸어도 걷지 않는 걸음을 내디딜 때, 사람은 쓸쓸한 것을 안다. 허공을 걷듯 실감 나지 않는 무게와 거리와 현실. 광치기 해변에서 그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는 어제도 교대 근무를 서서 잠을 자야 하는 사람이다. 가능한 올레를 다 걷고 그러고도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저 공중전화로 달려가 받고 싶은 전화가 가끔 울릴 때가 있다. 이제 일어났다는 목소리가 잠겼다. 형, 형이라고 부르는 그는 7살 같았다. 7살에 산이를 데리고 와서 여기에서 봤던 그가 나를 부른다. 형, 형, 어디에요, 어디 계세요.

이 시집을 바다에 묻힌 가난한 사람들에게 바친다

머리말

햇볕이 쨍쨍 쪼이는 날 어느 날이고 제주도 성산포에 가거든 이 시집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일출봉에서 우도(牛島) 쪽을 바라보며 시집을 펴면 시집 속에 든 활자들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시집에서 시를 읽지 않고 바다에서 시를 읽을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이 시집의 시를 읽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시를 읽는 것입니다. 성산포에 가거든 이 시집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차마 시를 펼치지 못하고 머리말을 읽다가 멈췄다. 차오르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일출봉 위로 달이 뜨는 무색무취한 풍경이 피곤을 덜어냈다. 내 어딘가에서 나를 퍼올렸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자꾸 가벼워졌다. 저기 달려오는 트럭이 나를 알아보고 깜박였다. 나도 그게 무엇인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듣고 싶었던 말들, 보고 싶었던 말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 사방이 왁자지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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