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편지를 건넸다. 나도 처음이다. 편지에는 28년 교직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학부모에게 편지를 받아봤다는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저도 이렇게 답장을 받을 줄 몰랐어요, 선생님. 설렘은 눈동자에서 먼저 감지된다. 내 안의 설렘, 내 안과 밖을 정찰하는 두 눈이 다른 조도와 명도, 채도를 서둘러 준비하고 문장을 대한다. 말하자면 옷을 갈아입고 격을 갖추어 자세를 잡은 것은 것이다. 호흡이 빨라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호흡이 더 느려지는 것도 순한 일이다. 자연에 인연이 더해져서 퍼지는 향이라고 말하면 전달이 될까. 마치 커피를 마시기 전에 잠시 황홀해지는 0. 몇, 몇, 몇 되는 공간에 고깔, 은행잎, 반짝이, 달빛 소나타, 그리고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습니다, 그런 말들이 높은 음자리표를 만들어 깔깔거리는 작은 소란이 진짜였다는 자각.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은 잔잔함이었다.
신기하게도 내 앞에, 아니면 왼쪽 옆자리였다고 할까. 대각선으로 앉았었다면 믿을까. 이렇듯 마음은 차분히 읽히는 것이었구나. 나는 이런 문장을 채집하러 다니고 있지 않던가. 문장이 되는 사람들을 놓칠세라 부리나케 고마워하고 손을 잡고 그 사람들의 인상을 궁금해한다. 여기는 어디가 좋아요? 여기에서 오래 사셨네요. 그러니까요, 그게 쉽지 않은데. 그리고 60쯤 즐겁고 40쯤 부끄럽게 말한다. 제가 책 만들면 보내 드릴게요. 쿠바에 가고 싶다는 소망이 하나 포르르 하늘로 난다. 정말 거기 가면 시가를 한 대 피울 수 있을까, 오해는 못하면서 착각은 자주 하는 내가 또 먼 데에 훌쩍 날아간다. 쿠바에서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경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런 낭패가 하나의 정경이 된다. 내 역사책에는 그렇게 그림책 같은 구석이 많았으면 한다. 다음, 다음 문장들에 선생님이 스쳤다.
이 폰트는 뭐지? 늘 정해진 그대로 받아쓰는 내 노트북도 이런 글씨 써보는 것은 어떨까. 해찰이란 말만 놓고 보면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해찰하다 그러면 동자승들이 까부느라 까치가 일러주는 소식을 다 듣지 못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까르르 웃음이 댓돌을 딛고 마당을 폭 안으며 짓는 아침나절, 그래 해찰하면 건물은 없고 시간이 대신 그 자리에 섰다. 내 머리는 땅땅 울리곤 했다. 마음껏 해찰하다, 구름까지 따라가다 용케 담장을 넘을라치면 거기서 꼭 바지 주머니가 걸리든 신발이 떨어지든, 엄마가 부르든.
머리가 아픈 것보다 애들이 웃는 것보다 여기 그대로, 모두 그대로인 것이 허전했다. 허전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저기 가고 있었는데 왜 여기는 나를 붙잡지 못해 안달이지. 왜 쥐어박지.
- 교사로서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어 학교에 가기 싫은 날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강이가 눈이 커졌다. 젠장, 아니야, 그랬지만 목소리마저 흔들흔들. 나도 정말 나이가 나이가 됐나 보다. 어른들도 흔들린다는 것을 강이는 목격하고 있다. 조금 더 크면 엄마가 울고 아빠가 흐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겠지. 헤어지는 것이 어떤 것인 줄도 알고 마음 아프다는 말도 시원하다는 말도 다 알게 되겠지. 시원섭섭하다는 말은 또 어떻게 마주하게 될까. 이런 것이 보물 상자다. 알아가는 것들이 잔뜩 쌓여 있는 저 언덕이 강이의 보물섬 아닐까. 나는 단 한마디로 강이에게 마음을 전했다.
'강이야, 글이 가진 힘이야, 글이 사람을 돕는다. 알았지?'
미안하다, 어린것에게 이렇듯 무거워서. 아빠는 사실 70은 재미나고 30은 슬픈 그림이 좋아. 그런 그림을 그리려고 사는 것 같아. 너는 어떤 그림이 좋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