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마지막 날, 12월 31일이었다.
깃발을 들어 올린다면 아마 용(勇)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용감했다.
모든 일에는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길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 같다. 물과 길이 만나서 하나의 일이 되고 그것이 세상을 굽이굽이 감싼다. 사연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축축함이었던가. 물기가 모아지면서 방울이 되고 방울이 모여 한 줌의 물이 되었다가 그것이 서로 끌어당겨 하나의 세(勢)가 될 때를 기다려 쏟아지는 것이 어디 하늘에서만 이루어지는 신비일까. 사람들 사이에서도 구름이 끼고 그 구름이 무거워지면 홀가분하게 비가 내린다. 12월 31일에 우리는 근사한 시작을 했다. 끝에서 꿈틀거리는 태동, 1년 만에 송학동 성당 마당에 섰다.
성체 성가를 읊조리듯 따라 불렀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어떤 모양을 그리면서 이 운동장을 빙빙 돌았던가 떠올렸다. 교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따로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학교를 벗어나지 않기로 했다. 학교 울타리를 따라 쭉 다녀보고 싶었다. 담장 아래를 밟아보고 싶었다. 사시사철 그늘이 진 거기에 이끼며 나뭇가지들, 비닐봉지며 아이들이 놀다가 잃어버린 테니스공 같은 것들이 더 날아가지 못하고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바람이 멎으면 지면에 가라앉아 해를 따라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가 짧게 줄였다가 제 모습에 만족하며 다음 생을 이야기하곤 했다.
귀에 들어와 머리로 통하는 길에는 무슨 색의 어떤 커튼이 펼쳐져 있을까. 그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들이 간혹 보일 때가 있다. 다물고 있던 입술 사이로 그 소리가 흔들렸다. '수고하는 자의 위로며 굶주린 이들 양식, 내 근심을 주께 맡겨 영원히 주 안에 살리라' 지난 1년 내가 다녔던 지명과 그 지명을 앞자리에 이름으로 내어준 성당들이 필름처럼 감겼다. 바로 지난주에는 제주, 조촌 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보면서 이 성가를 불렀는데 - 그때도 내가 지고 다니는 배낭과 물병을 앞에 세워두고 이렇게 여기 와서 두 손 모으고 있는 것에 많이 감격했었다 - 다시 똑같은 성가가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이번에는 산이도 엄마 옆에서 미사를 드리고 강이는 의젓하게 종을 울리고 있었다. 성당을 돌아다니면서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언덕을 이루고 있다. 욕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올려다본 희미한 수분 덩어리들, 작고 작고 미세해지면 공기처럼 얇아서 안개도 되고 구름도 되는 저 물 분자들은 나다. 내가 바라는 이야기들이며 내가 다녀온 곳에 피었던 꽃들이다. 가을에 불었던 솔향이었으며 다 잊어버린 지난 추억들이다. 나에게 떨어지지 못하고 한 걸음쯤 앞에 추락했던 1994년 여름 빗줄기, 내가 놓친 지하철 3호선, 운 좋게 알아버린 그녀의 마음 같은 것들, 파랗고 붉고 하얗던 마음이 먼 곳을 돌아 내 앞에 찾아오는 착시. 성당을 다녀보는 여행이 하고 싶다. 크로아티아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마주치는 성당에는 모두 앉아서 스케치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 옆에 와서 물을 것 같다.
'좋아 보여요.'
나는 배우기를 멈추고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도인(道人)이 다 되어 간다기에 일러줬습니다. 그것이 길이야, 길을 오래 걸으면 도인이 될 수밖에 없어. 길은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길 위에 성당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나는 거기에 들렀다가 일어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그림이 마음에 들면 내가 주고 싶습니다. 그가 말한다. 지금 그 모습 전부를 눈에 넣고 싶어요. 그럴 수 있을까요. 우연히 만난 이가 날개를 감춘 천사일지도 모른다던 말에 그동안 배운 도술을 부릴 것이다.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나와 함께 걷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 이름을 내 여기에 얹고 길을 가고 싶습니다. 도술에 걸린 그 사람은 이름을 커다랗게 달아준다. 나는 풍선처럼 떠오른다.
任重而道遠, 임중이도원,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그러나 내 짐은 가볍고 내 길은 한없다. 사람들은 책임을 지고 나는 나를 짊어진다. 사람들은 오래가고 나는 아예 떠난다. 그래서 성당 안에서 울고 성당 밖에서 웃는다. 많이 웃은 날에는 많이 울고, 웃지 못한 날에는 울음도 참는다. 성당 안에 세상이 있는지, 세상 안에 성당이 있는지 가끔 스스로 묻기도 잘한다. 미사를 마치고 우리는 산으로 갔다.
착한 것을 따르기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고, 從善如登 종선여등. 나쁜 것을 따르기는 담이 무너지는 것처럼 순간이다, 從惡如崩 종악여붕. 딸아이가 또 묻는다. 아빠는 왜 걸으려고 하냐고. 나는 작아서 걷는다. 작아서 잘 흔들리고 휩쓸리고 뒤집어진다. 아빠, 왜 걸어? 이기적이지 않으니까. 로또도 생각나지 않으니까. 담박하다는 말은 아는지 물었다. 담백한 맛은 뭐지? 짜지도 맵지도 않고 심심한 맛, 너는 심심한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심심하냐, 재미있냐? 둘 다 아니란다. 둘 다 아닌 것에 둘 다 '긴 것'이 숨은 걸 너는 아느냐, 꼬마야. 여기 재미난 사투리 만화 한 컷이 있다.
- 군대에서, 전라도 고참과 경상도 졸병들 사이에 분위기가 심각한 바로 그때.
전라도 고참 : 기어 안 기어?
경상도 졸병 : (눈이 커지고 두리번거린다)
전라도 고참 : 기어 안 기어? 인마!
경상도 졸병 : (후다닥 땅에 엎드려 긴다)
일동 : ㅋㅋㅋ
淡泊明志 담박명지, 담박해야 뜻을 밝힐 수 있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너도 마셔라, 아이야. 바람이 부는 산골짜기에서 차가운 물을 따라 마시는 너에게 나는 장난이 심했던 것을 밝힌다. 이해해라, 내가 설익은 사람이라 그랬다. 그 물은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면 네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물을 담을 수 있는 맛을 담박이라고 쓸까 한다. 그래도 될까, 잠시 생각했다. 이렇게 깊은 이치가 나에게는 어림이 없다. 이제 그만 사실을 밝히자. 그 유명한 삼국지의 제갈량이 아들 첨을 깨우치기 위해 지은 책에 실린 말이다. 나도 그대로 흉내를 내보자.
「비담박무이명지(非澹泊無以明志) 비영정무이치원(非寧靜無以致遠)」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다다를 수 없다. 많이 알려진 문장을 산이, 강이에게 들려주는 이 인연에 삼가 고개 숙인다. 오늘 이 길에서 너희를 만나 제갈량의 말을 전하는 나는 우주 만물이 서로 당기는 힘을 실감한다. 내가 원해서 이 순간이 이루어졌겠는가. 셀 수 없이 많은 우연이 부싯돌처럼 반짝이며 불꽃을 일으키는 지금을 잘 타오르는 것 외에 그 무엇이 있을까. 담박하지 못하면 자신이 뜻하는 바를 분명히 알 수 없고, 몸과 마음이 정하지 못하면 원대한 꿈을 실현할 수 없다. 사람이 담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물을 거푸 마셨다. 이 길을 걷고 나면 담박에 닿을 수 있을까. 지난가을 어느 날에 우리는 서당 마을을 지났었다. 이 앞을 지나 저쪽 위로 난 길을 따라 악양으로 넘어갔던 날, 그날에도 담박했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다시 선 것은 그때 물든 담박함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바람 부는 날, 12월 31일에 구름 낀 골짜기를 팔을 휘둘러 걷고 있지.
적량(赤良)은 무슨 뜻일까. 하동군 적량면 우계리에서 하동읍까지 7km, 2시간 산책이다. 물론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 우리는 강이가 걷는 속도로 걷는다. 친구들이 그런 데를 왜 따라가냐며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대꾸하기 힘들었다는 강이. 영화 보기로 약속했던 것도 다음으로 미뤘다는 아이에게 걸음을 맞춘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했던 지점은 어디였을까. 아, 그것은 누워서였구나. 그날 일정을 다 마치고 순천에 가서 해 뜨는 것을 기다리던 밤에 넷이 누워서 그랬었구나.
'길이 키웠네, 길에서 컸네'
12월 31일에 짧게 따로 난 둘레길 13코스를 걷고 다음날 해 뜨는 것을 보고 대축에서 원부춘 14코스를 걷기로 한 계획이었다. 그러고 나면 7개가 남는다. 둘레길 7개 코스를 돌면 5년 동안 걸었던 길이 완성된다. 가만있을 수가 있나. 5년이면 초등학생이 고등학생이 되는 세월이다. 나는 5년이 얼마나 좋고 긴 시간인 줄 안다. 지난 5년 동안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세상을 떠났던가. 지리산을 걸으면서 숨이 차오를 때마다 빌었다. 발바닥이 아파서 더 땅을 딛는 것이 힘들 때에도 빌었다. 해가 지는 데에서,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은 곳에서, 감나무 숲에서 밤나무 밭에서, 햇볕 속에서. 산 사람들의 이름과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도처럼 외웠다. 그리고 빌었다. 불쌍히 여기소서, 가엾이 여기소서. 기억하소서. 우리 아이들은 정말이지, 길이 키워줬다. 네 사람 모두 그렇다고, 그런 거 같다고 웃었다.
둘레길 있는 안내 표지판은 검은색과 빨간색이었지만 여기서 다른 색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알아맞힐까. 어느 쪽이든 녹색, 녹색으로 되어 있다. 금방 서당 0.8km, 하동읍 6.2km라고 쓴 표지가 나왔다. 반듯하게 길가에 서서 양손을 펼치고 있는 자세가 믿음직스러웠다. 율곡 마을이었구나. 장승이 서 있는 집을 지나서 벽에 그림 지도를 그려놓은 데까지 금방이었다. 그 동네 뒷산 구재봉이 그려져 있고 그 뒤로 천왕봉이 그려져 있다. 우리는 바람재를 따라 걸어가야 한다. 바람재 윗길은 돌땡이라고 쓰여있고 바람재 아래는 밤봉, 그 아래는 율곡지라는 못이 있는가 보다. 그래, 바람재를 다 오른 지점에 구재봉 등산로 안내판이 있었다. 거기서 길이 갈렸다. 우리는 반대편이다. 물 좀 마시고 숨도 고르자. 무슨 맛? 살겠다는 저 표정들을 보니 살아 있다는 것이 이런 거다 싶다. 어떤 산이든 힘들다. 거기가 어디든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 하지만 힘들고 싫은 것만 가진 것은 또 없다. 누구나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리산에 비하면 너무나 넓고 광활하다. 거기에는 거대한 동력이 든다. 큰 덩치가 움직이는 데 소모되는 것들이 여기 지리산에 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어지럽고 심란하고 두렵다. 이기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이겨야 한다. 목욕탕에 들러 목욕을 하고 나오는 것처럼 지리산에 들렀다. 곧 때가 묻고 다시 더러워질 것이다. 피곤하고 졸릴 것이다. 그때 우리는 목욕하면서 산을 걷는다. 여기서 씻고 밖에 나간다. 학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돈을 번다. 내가 받는 돈에 산 내음을 묻힌다. 돈 썩는 냄새만큼 견디기 힘든 것이 없더라는 어느 경찰관의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13코스는 바람재를 넘어서부터 하동 중앙중학교 나오는 길목이 볼 만하다. 바람도 다르게 분다. 아주 오래된 비석을 하나 길가에서 만났다. 글자도 지워지고 옆면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두 글자, 대정(大正)3년. 그렇다면 일제강점기다. 이 무덤은 얼마나 됐을까? 세 사람 다들 엉뚱한 곳을 가리켰다. 1912년이 大正 1년이다. 그러니까 1915년에 생긴 무덤을 보고 있는 거야. 백 년이 넘은 것이지. 지리산을 걷다 보면 이렇게 오래된 비석들이 있다. 그런 그림, 1800년대에 그려진 아이들을 보면 - 그것도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어린 자매들 - 내가 살아있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림 속에 있는 아이들이 살아있고 사실은 천장이 내려다보는 그림이 나에게도 보이는 어떤 세계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살아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다. 알지 못하지만 그 사람들이 사람들이었다는 것만으로 거기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 미안한 것이다. 있었던 사람들이 이 땅을 걸었을 것이다. 그 땅에 내 발을 대어 보는 것이다. 땅이 기억하는 무게와 자취와 질감이 저마다 다를 것이다. 사람을 읽는 대지의 눈금을 나는 어디에서 알아볼 수 있기를 소원한다.
어디에서 보든 마음에 드는 강, 섬진강. 섬진강이 흐른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하동에 오니까 그것이 좋다. 강이 옆에 있다. 산길을 따라 왼편과 오른편 양쪽으로 강이 흐르는 곳은 아마 거기밖에 없을 것이다. 하동읍으로 내려가는 걸음이 슬슬 아까워졌다.
택시 아저씨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한 번은 우연, 두 번은 노력, 세 번은 인연이다. 지난번에 삼화실에서 하동호까지 우리를 태워줬던 기사님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사탕을 두 개씩 주는 친절한 기사님, 그분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아, 어떻게 연말인데 오셨다며 금방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하동읍 우체국 앞에서 한가한 하동읍 거리를 둘러보다가 택시에 탔다. 다시 서당 마을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우리 여기에서 출발했었는데....
내일 또 부탁드리겠다며 인사했다. 하동에서 봐야 할 소나무 다섯, 그중에 하나 '송림'을 보러 갔다. 내일은 악양의 '부부송'이다.
寧靜致遠 영정치원, 고요해야 멀리 이를 수 있다. 제갈량의 말로 끝을 맺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멀리 왔던가. 그 먼 곳은 어디를 말하고 어디에 있는가. 다른 날보다 적게 걸었다. 그러나 다른 날보다 더 걷기도 했다. 우리는 공부를 하며 걸었다. 공부는 고요한 것들을 자기 안에 쌓아 가는 과정이다. 고요한 것은 소리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 것이다. 눈이 쌓이는 소리, 세월이 흐르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 아이가 자라는 소리. 고요는 소리다. 소리로 된 소리, 그래서 맑다. 맑은 것이 쌓이면 편안함이 돋는다. 새싹은 걱정이 없이 평온하다. 세상을 떠나는 이도 그랬으면 한다. 둘 다 멀리 가야 하는 영혼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먼 곳은 고요가 지나는 어떤 곳이다. 진실로 고요한 지점에서 우리 만나기로 하면, 잊을 것도 잊힐 것도 없을 것이다. 좋은 날, 12월 31일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