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14코스

걸으면서 든

by 강물처럼


하동 송림은 울창했다. 겨울 한때를 지나고 나서 소나무의 푸르름이라더니, 늘씬하고 자연스러운 뻗침을 실컷 누리는 소나무들의 세상이었다. 곁에 섬진강을 두고 그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개나리를 간지럽히고 돌아가던 봄바람의 뒷모습 닮은 겨울이 거기 있었다. 까불거리는 겨울이 있었다. 강가의 소나무 숲은 선한 인상으로 이제 막 걷다가 온 사람들을 맞는다. 우리가 할 것은 걷는 것뿐인가 싶다. 강물도 소나무도 화폭에 담고 그 위에 한 줄 시라도 적으면 누군가의 따뜻한 밥이 될 것 같은 풍경. 그 식탁에 우리가 둘러앉은 기분이다. 식기 전에 어서 저 고실고실한 밥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으면 싶은 것이 어릴 적 동무들을 생각나게 한다. 배고픈 것도 정겹다. 하마터면 거기 오두막을 짓자고, 푸른 초원 위가 아니더라도 여기서 이슬 먹고살자고 고집을 부릴 뻔했다. 아내는 강이가 쓴 시만 좋아한다. 다른 시들은 거의 외면한다. 특히 내가 쓴 시는 이게 뭐냐고 곧장 찌른다. 설명할 수 없다고 그러면, 이런 식으로 사람 무시하면 안 된다고 나무란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냐고 또 찌른다. 찔린 데를 다시 찔리면 죽은 척한다. 혼자 여기서 맨날 시나 적고 살아봐, 그러면 누가 알아주기나 할까 봐, 나야 얼싸 좋지, 밥 안 해도 되고, 어깨춤을 추었을지도 모를 사람이, 싱그러워진다. 자연에 안기면 순해지는 현상을 나는 어떻게 기록할지 몰라 사진을 찍어도 보고 뒤를 따라가면서 스케치한다. 크로키를 바쁘게 해 두고 어딘가에 넣어둔다. 내 기억의 창고, 인생이라는 거기에.

애들하고 애들처럼 떠든다. 셋이 나란히 걷는 것을 자주 보고 지낸 세월이다. 이 길이 다 끝나면 내 전성기도 지나갈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직 우리에게 내일이 남았고 그리고도 7개나 되는 둘레길이 있다.

고운 한지에 붓을 긋고 삐치는 동안에 여기를 지나가는 누군가가 그 밥을 먹고 우리의 그림을 돕는다면 남쪽 하동으로 새들이 날아들 것만 같다. 보고 싶었다. 송림에서는 하룻밤, 하루 나절을 우두커니, 장승처럼 지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보기 좋았다고 그럴 것 같다. 그래, 재미는 좀 봤더냐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묻지 않고 지나가는 이가 그 숲에는 흔할 것 같다. 내가 본 재미는 무엇이었는지 나도 적지 못한다. 적을 수 없을 뿐이다. 말이 궁색한 것을 손에 모래 한 줌을 쥐고서 손가락 사이로 흘려가며 달랜다. 시를 쓰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내 솜씨가 그 만한 것을 하동이나 송림, 화개 같은 곳에서는 변명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문다. 감탄사도 잠재운다. 이쯤에서 시인인 척 구는 것도 그만하기로 한다. 손바닥에 탁탁 침을 뱉어 몇 번 비비고 나면 피가 돈다. 소나무에 그 손을 대고 이렇게 만나서 좋다는 고백을 아무도 모르게 속삭였다. 매듭달 그믐날은 밝날이었다 (12월 31일은 월요일이었다)

순천에서 해돋이를 보고 우리는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해오름달 하루는 한날(1월1일은 월요일), 한 해를 시작하기에 매듭이 잘 지어진 인상이다. 무엇인가 맞갖은 기분이다. 마음까지 환해지는 옷, 네 마음에 꼭 드는 사람, 하나의 순간에 열쇠처럼 들어맞는 시어(詩語), 우리가 바라는 것은 11시 59분과 12시 사이에 찾아오는 자유. 이것저것이 맞아떨어지면 흥이 난다.

어제저녁을 편안하게 쉬었고 오늘 아침은 아이들과 처음 해돋이를 봤다. 새해 아침에 떡국을 순천 사는 지인에게서 얻어먹고 길을 나선 참이다. 배낭에는 맛 좋은 빵도 잔뜩 들었다. 산에 가는 우리를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정이 고마웠다. 마을 사이에는 강이 흐르고 사람 사이에는 정이 흐른다. 그 풍경이 살풋한 보조개 같아서 보기 좋다. 겨울에도 복사꽃이 필 때가 있다. 이루마의 피아노 곡이 도로에 물결친다. River flows in you. 너를, 세상을 흐르는 것들에 축복.

내일과 다음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 티베트 속담

아침에도 이다음까지 적고 잃어버렸다. 정말이지, 그 문장은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렇듯 뜻밖의 것들이 일부러 그러는 것보다 더 정교하게 삶을 방문한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는 내일의 어제들. 삶의 시제(時制)는 복층구조를 유지하고서 나아간다. 과거와 미래가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져 통하는 집에서 나는 산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렇듯 모두 유기적이다. 내 탓이며, 탓의 탓이 나다.

나는 내일과 다음생 중에 어느 것을 손에 쥐고 길을 걷는다.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이 길이 끝나는 곳에 묻기로 한다. 내가 고른 것은 내일도 아니고 다음생도 아닌 것을 안다. 그래서 기다린다. 기다리는 일을 잘하기로 마음먹는다. 겨울 공기를 입이 미어지게 먹었는데도 배가 고픈 저녁에는 내가 묻은 것들의 이름을 적는다. 추억은 무슨 맛일까. 엄마는 외계인일까,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일까. 항상 날아가 버린 문장들이 더 마음에 든다. 떠난 것들과 지고 난 것들이 예뻤던 것도 어쩔 수 없다. 시절도 그렇고 길도 그렇고, 사람은 애처롭다. 생겨나기를 마음을 갖고 생겨났으니, 어쩔 수 없다. 마음은 채워지지 않고 채울 수도 없는 허상인 것을, 그것은 늙지도 않아서 내가 다스릴 수도 없는 것을, 도대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평생을 살아도 모르겠는 것을. 내일과 다음생으로 가는 문은 그 마음으로 여는 것을.

둘레길 14코스는 대축에서 원부춘까지 짧은 길은 8.5km, 길게 돌면 10.2km다. 1코스부터 대축까지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었다. 14코스에서는 거꾸로 검은색 화살표를 따라 걷기로 했다. 빨간 표시는 난이도 상, 반대로 걸으면 난이도 중이라고 둘레길 사이트에 잘 설명이 되어 있었다. 오늘 걷고 나면 내일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도 고려해야 한다. 놀자고 걷는데 죽자고 덤비면 안 된다. 대신 오늘도 실컷 시간을 들여 세월아, 네월아 그러면서 오르고 내려올 것이다. 천천히 가야 산 것과 죽은 것들이 다 눈에 들어온다. 미추(美醜)는 속도가 정하는 개념인지도 모른다. 내게 어울리는 속도로 다가오는 인연들이 얼마나 신기한지,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잘 보이는 속도로 다가가는지, 세상은 신비의 연속이다. 하늘이 높았다.

길마다 특색이 있다. 길은 누구의 얼굴인가. 내 얼굴은 어느 길에 가까운가. 길을 잃기 좋게 작게 난 샛길로 이어지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바닥에 페인트로 표시한 흰 화살표가 없다면 영락없이 미로에 갇히게 되는 지점이었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목 같아. 지금부터 아기자기하겠습니다, 그러는 거 같지? 그 길로 들어섰다. 조릿대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오르막이 펼쳐졌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오르는 길은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평온함을 건넨다. 길을 잃지 않을 것이며 외롭지 않을 것이고 그러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계곡이 작은북을 두드리며 사람을 돕는다. 오르라, 나를 딛고 여기 올라라. 희생 아닌 것들이 없었다. 쉰 살이 넘을 때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내 앞에 근심하고 내 뒤에서 웃어줄 인연들에게 절. 깨끗한 것을 보고 있으면 - 갓난아기의 손가락이 그렇지 않던가 - 나를 잊고 낮아지고 싶어 진다. 온몸으로 절하고 싶어 진다.

물소리는 지혜를 이루는 분자들이다. 물소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악성(樂聖)이 되고 시성(詩聖)이 된다. 지혜로운 노래와 시는 사라지지 않고 마음을 채운다. 마음이 먹는 양식은 물소리를 닮았다. 돌에 낀 이끼를 살살 다루는 사람이 되었다. 산속을 거닐면서 내가 함부로 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아이들은 기껏해야 '백 년'이란 말을 자주 들으면서 걷는다. 화장실은 미리미리 다니자고 약속한다. 겨우 백 년 사는 우리가 건방지게 굴어서야 쓰겠냐고 우리끼리 작아진다. 스스로 작아지는 일에 재미를 붙이면 강이처럼 '나무님'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산이도 제 이름이 이제는 편하다고 그런다. 그렇게 걸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짊어봐야 아는 무게가 있고 혀로 맛보고 뱃속에 담고 지녀봐야 그 영양가를 체감할 수 있다. 목마름도 배고픔도 그리움도 나를 통과하며 걸러지고 남은 감각들 아닌가. 삶도 사리를 남긴다. 삶이 남긴 사리가 모이면 그게 길이 된다. 길에서는 감각이 몸뚱어리를 희구하고 육신은 영혼에게 연애를 건다. 제가 가꿀 수 있는 최고의 몸짓으로 영감을 불어넣는다. 그리스 신화 속 뮤즈를 어떻게든 불러 모은다. 축제를 열고 불을 지피며 술을 따른다. 걸으면서 우리는 인간이 되었음을 안다. 걸으면서 우리는 신(神)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지기를 소망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는 말씀은 공허한 바람이 아니다. 그것은 약속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신의 약속, 길이 그 약속이다. 언약이며 반지다. 순례는 육화(肉化)의 길이다. 예수는 그렇게 아 땅에 태어났고 머무셨다.

감각을 소중하게 모아서 한 점이 되는 일, 기도하며 걷는 것보다 황홀한 것이 있을까. 어떤 가지 하나가 조물주의 신비에서 벗어나 자랄까. 가시나무의 가시에도 하늘의 손길이 닿는다. 오르막에서는 가쁜 숨도 기도가 된다.

원부춘 마을 자체가 높다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옛날에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을 것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그래도 이름이 부춘이다. 부춘(富春).

한참을 올라왔는데 그리고 겨우 고개를 넘었는데 그 이름이 '아랫재'다. 그렇다면 '윗재'는 얼마나 높다는 것이냐. 다음에는 그 길로 가야 할 텐데, 세상을 오래 산 나는 미리 걱정이다. 큰 고개는 령(嶺), 그보다 규모가 작으면 치(峙), 오늘 우리가 넘은 작은 고개는 재(岾), 사실 내가 하는 이 구분은 전혀 근거가 없다. 다만 고개가 앞에 있으면 넘어서 왔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나는 고마워했다. 지리산 둘레길 14코스, 원부춘 마을에서 아랫재를 넘어오는 길에서도 많이 고마웠다. 너희들 덕분에 내가 유람한다. 이 깊은 산중을 호령한다. 야야야야야야야야호호호호호호.

말이 난 김에 넷이 발을 한 데 모으고 사진 한 번 찍자. 처음으로 그런 제안을 했다. 어? 뭐지, 이 복고 감성은? 산이 신발이 가장 해졌다. 산에 올 때는 낡은 것이 편하다고 일부러 신고 왔던 신발인데도 안 돼 보였다. 산이에게도 적당한 등산화를 사줘야겠다. 강이는 신발 깔창을 따로 만들어서 신고 다니는 터라, 지금 그대로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 된다.

또 말이 난 김에, 동영상도 하나 찍자.

4년 동안 송학동 성당에 계셨던 우리 신부님이 곧 다른 곳으로 옮겨 가신다. 마지막 환송 미사에서 신자들이 준비한 영상을 다 같이 볼 예정이다. 우리도 지리산에서 외쳤다.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올라간 만큼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세월은 상식적이고 공정하다. 감히 세월을 흉내 내려하는 정치가 비상식적이고 불공정하다는 것은 누구나 실감하는 세상이다. 아주 오래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는 것이 통 고쳐질 줄 모른다. 길을 걷지 않고 길을 떠드는 탓이다. 정치를 하기 전에 길부터 좀 걷고 시작했으면 좋으련만.

- 왜 고독한 것일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높은 곳, 성공과 성취를 위해 진짜 높은 곳은 다들 피해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허약하고 미약하고 병약하다. 진짜 높은 곳을 다녀본 적 없어서 현기증이 도는 것이다. 여기 말고 진짜 높은 곳, 그곳이 어딘 줄이나 알까. 오호(嗚呼) 애재(哀哉)다.

산을 내려오다 들어선 마을이 입석마을이다. 거기서는 평사리 들판이 눈에 들어온다. 저 건너편 산에서 대축마을로 내려오면서 바라봤던 가을날 그 노랗던 들판이 텅 비어 있다. 저 산에서 이 산으로 넘어오는 동안 계절도 바뀐 것이다. 그 가을에 걷지 못했던 들판을 오늘은 한복판으로 가로질러 걷는다. 부부송이 멀리서도 모습이 근사하다. 저기까지 간다. 석양이 지고 산 그림자가 내려앉는 평사리 들판을 앞에 셋, 뒤에 내가 걷는다. 이쯤 되면 영화의 한 장면이다. 소설에 나오는 대목이어도 어울릴 것 같다. 잘 걷는구나, 너희들.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영화를 보고 나와도 그 영화를 본 소감은 제각각이다. 우리는 늘 거기에 닿는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나는 강을 다 건너지 못하고 중간쯤에 멈추고 그는 저 강을 다 건넌다. 연암은 한밤중에도 열하를 몇 번이나 건넜던가. 그릇의 크기만큼, 타고난 재주만큼 우리는 세상을 겪는다. 그리고 산다. 나는 그것을 감수성이라고 말한다. 삶은 즐기는 사람의 것이다. 즐기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다. 그렇다면 얼마쯤 즐길 것이냐는 물음이 남는다. 어디까지, 얼마만큼 그대는 삶을 바라보는가. 그대가 바라보는 곳에는 과연 어떤 색이 펼쳐지고 있으며 그 화면은 무엇인가.

평사리 들판을 걸어가면서 내, 우리의 감수성이 활발해지기를 빌었다. 욕하는 친구가 많더라도 정치가 별로더라도 우리는 예쁘게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리고도 힘이 남으면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약속대로 택시 기사님이 오셨다. 새해 첫날, 그리고 세 번째 만남, 다음 코스에서는 하동이 아니라 구례 택시를 타야 한다. 나도 약속이 하고 싶었다. 제가요, 지리산을 걷다가 그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길에서 얻은 것들을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차(茶) 한 잔 나누시지요. 기사님은 그날 어떤 기분이었냐고 차를 마시며 물어보는 모습이 벌써 또르르 맺히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원부춘 주차장에서 정답게 악수하고 헤어졌다. 우리, 이쪽으로 올랐었는데·····.

아쉬움도 배우고 보람도 배우고 또 하루를 배운 하루였다. 그럼 됐다. 밥 먹으러 가자,

남원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밥집이 있다.